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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Jan 21. 2020

잠깐이라도 기뻤으면, HAPPY!

썬캐쳐가 가져다 준 햇빛의 파각.

썬캐쳐
SUN CATCHER. 
햇빛을 받아 어두운 기운을 몰아내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부적.



드림캐쳐보다는 썬캐쳐를 좋아한다.

꿈보다는 현실을 살아가는 만큼

햇빛과 친해지기 위해.



나는 밤보다 아침을 좋아한다. 아침이 되면 서서히 얼굴을 보여 주는 햇빛도, 햇빛이 들어오는 곳에서 가만히 있으면 느껴지는 따스함을 유독 좋아한다. 집에 있으면 나의 움직임은 햇빛의 자국에 따라 변화한다.


처음에는 문득 걱정이 되기도 했다.



주근깨 생기면 어떡하지……?



이 걱정은 파괴석과의 만남으로 뿜어져 나온 무지개 더미들을 본 순간, 사라졌다.





세상에. 우리 집 안에는 순식간에 일곱 빛깔 가득한 무지개들이 여기 저기서 피어났다. 조각처럼 생긴 무지개, 길쭉한 무지개. 그 속에 파묻히고 싶었다.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만 만날 수 있는 무지개의 향연에 시선이 빼앗겼다. 너무나 예뻤던 무지개. 이 무지개들을 오래 보기 위해서는 햇빛이 맞닿는 곳에 두어야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해의 위치가 변화할 때마다 썬캐쳐의 위치도 변화했다. 옮기고 옮겨서 해가 질 때까지 무지개 속에 파묻혀 있었다.





살찐이의 다리와 얼굴에도 무지개가 피었다. 살찐이는 고개를 돌리며 무지개를 자신의 눈에 담았다. 내 손에도, 우리집 벽에도, 입고 있는 옷에도. 모두 무지개가 피어 있었다.


신경이 쓰였다. 무지개를 오래 보고팠던 마음에 썬캐쳐를 이리저리 옮기느라 창문에는 손자국이 났고, 그 손자국이 보기 싫어서 자국이 날 때마다 닦았다. 빛을 만들기 위한 나의 노력을 지우는 순간이었다. 밤이 되니 허무했다. 하나씩 사라지는 무지개들. 그러다가 이내 모두 사라진 무지개 더미들. 내 손 위에 내려 앉은 무지개들, 옷에 피어난 무지개, 벽에 그려진 무지개들. 전부 사라졌다. 남은 것은 형광등에서 뿜어져 나온 인위적인 빛들 뿐.


나는 무엇 때문에 빛을 따라 부적을 옮기며 무지개를 그리워했을까. 밤이 되면 사라질 것도 알았다. 햇빛이 없으니 당연히 무지개를 볼 수 없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악착같이 빛을 잡아 무지개를 피우려 했다.





어릴 적 내게 무지개는 늘 신기한 존재였다. 무지개를 보고 싶어서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프리즘을 만들기도 했다. 나는 비를 좋아했다. 그리고 비 내린 후에 피어나는 무지개도 좋아했다. 어쩌면 무지개를 보기 위해 비를 좋아한 건 아니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추적추적 내린 후에 축축함만 가득한 비를 좋아했던 이유는 무지개 때문이었을지도.


무지개는 비가 그친 후에 나타난다. 그만큼 항상 볼 수 없었고, ‘비’라는 특수 장면이 끝난 후에만 볼 수 있다. 그것도 구름이 연할 때. 자주 볼 수 없었고, 특수 장면 후에만 나타나는 무지개였기에 내가 신비롭게 여길 수 있었겠지. 덕분에 내가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다음날부터 나는 해를 좇아 부적의 위치를 바꾸지 않았다. 이상을 쫓아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기 위해서. 빛이 나면 나는 대로, 안 나면 안 나는 대로 유연하게.

햇빛이 가장 환하게 비추는 곳, 가장 무지개가 많이 태어나는 곳에 썬캐쳐를 걸어 두고 해의 움직임의 따라 변화하는 무지개를 눈에 담았다.


잠깐 무지개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제는 기쁘다.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무지개의 개수도 반갑다. 잠깐이라도 기뻤기에, 그 자체로 행복했다. 오늘을 살아서 이 무지개를 보았으니 행복했다.


내 모습 그 자체로 썬캐쳐가 되면 좋겠다. 내가 햇빛을 가득 담아 수많은 무지개를 피워낼 수 있도록. 한 움큼의 빛을 모아 수 만 가지의 갈래로 무지개를 뿜어내고 싶다. 조금의 빛으로 더 커다란 빛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이 바람만으로 그런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꿈은 간직하되 해와 달이 비추는 오늘을 살아야지.


꿈은 수 많은 삶의 이유 중 하나가 되어 삶에 힘이 되어 준다. 그 꿈을 이루려면, 마냥 바라 보기보다는 눈을 뜬 오늘을 살아야 한다.


눈 앞에 그려진 어여쁜 풍경들은 우리의 오늘을 응원하는 알 수 없는 존재들의 응원이 아닐까. 그리 믿고 싶다. 그 응원을 받아 이 기쁨을 전해주는 썬캐쳐가 되어야지.


잠깐이라도 기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오늘을 살아 그 풍경을 눈에 담아서 다행이었다.


오늘을 살아온 우리, 오늘도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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