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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Jan 21. 2020

p e r s o n a

나의 진정한 모습인가, 아님 수많은 가면 중 하나인가.

P E R S O N A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사람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며 여기서 그림자와 같은 페르소나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 면이라고 말했다. 자아가 겉으로 드러난 의식의 영역을 통해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내면세계와 소통하는 주체라면 페르소나는 일종의 가면으로 집단 사회의 행동 규범 또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페르소나는 종종 영화감독 자신의 분신이자 특정한 상징을 표현하는 배우를 지칭한다.

▲ 출처_영화사전






명절 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
집 안 어른들로부터 많이 활발해졌다는 말.
알고 있었다.


새해가 되어도 나는 아직 2018년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즐기고 있었던 그 1월 1일을 나는, 즐기지 못했다. 아직까지 불안정 했다.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2월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가라앉았다. 의도치 않게 붕 떠 있었기에 밝아졌던 그 성격을 유지한 체. 나는 가라앉았지만, 나는 본래의 내 모습을 묻혀두기로 했다.



검정
모든 빛을 흡수하는 색. 이미지는 무거움, 두려움, 암흑, 공포, 죽음, 권위 등을 상징한다. 성직자, 수녀 등과 지배자, 간부들의 색이나 죽음을 애도하는 색으로도 사용한다. 심리적으로 편안함과 보호감, 신비감을 준다.

▲ 출처_색체용어사전



나는 밤을 더 편하게 느꼈다. 어두컴컴한 색이 하늘을 가득 메우면 뿜어져 나오는 그 잠잠함을 좋아했다. 낮보다는 적은 빛도, 네온사인이 가득한 길거리도 좋아했다. 더불어 밤만 되면 찾아오는 창작 소재를 굉장히 기다렸다.  그 정도로 밤은 내게 신비하고 아득한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검은색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큰 착각이었다.



무슨 색깔 좋아해?

검정.



무슨 색깔을 좋아하는지 묻는 질문에 나는 항상 검은색이라고 답했다. 왜 그랬을까. 뒤늦게 알게 된 나는, 검은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그저 존재하기만 하는 색깔이었다. 또 뒤늦게 떠올랐다. 어릴적의 나는 노란색을 참 좋아했다.



지금은 무슨 색깔 좋아해?

노랑, 분홍다홍연보라코랄주황초록푸른 …….



지금은 내게 좋아하는 색깔을 물으면 손가락 하나하나를 접어가며 대답을 해야 한다. 좋아하는 색깔이 많아서 잊어버리지 않고 모두 말하기 위함이다. 위에 나열한 것 외에도 많은 색깔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 조금 나와 안 어울렸던 색깔은, 분홍!



나는 분홍색을 좋아하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거부감이 들었다. 아, 내가 유치원 때, 한창 감기로 고생할 때 먹었던 가루약 색깔이 분홍색이었다. 정말 쓰고 먹기 싫었다. 그러면 그때 아마 분홍색에 거부감이 들었나 보다.
입시가 끝나갈 무렵 영화 포스터 하나를 봤다.



사진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포스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

포스터를 보는 순간, 눈부셨다. 분홍색이 이리도 예쁘게 쓰여진다니. 다시 재개봉 한다 하여 보고 싶었지만 나는 아직 만 18세였다. 그리고 다짐했다. 스무살이 되면 꼭 봐야지. 그때도 충분히 TV로 볼 수 있었지만 저 영화 만큼은 제 나이 때 보고 싶었다. 그것도 제일 편안할 때. 나 스스로와 조건을 정했을 정도로 분홍색이 가득한 저 영화 속에 빠져서 헤엄치고 싶었다.



사진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포스터 / 분홍색



낯설었던 색깔과 친해질 정도로 나는 다양한 사람이 되었다. 햇살이 가득 비추는 낮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저마다 다른 소재를 내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너무 늦게 알았다. 나는 밤보다는 아침을 좋아하며, 밤하늘을 좋아한다는 게 검은색을 좋아하는 줄 착각했다. 아침이 되면 햇빛이 가득 비추는 곳으로 가서 앉는다. 그리고 오롯이 받아들인다. 모르고 있었던 햇빛의 따스함을. 잠이 들며 기다린다. 따스함을 머금은 햇빛을.



의심이 들기도 했다. 밝아진 내 모습에. 진정한 내가 맞을까. 저번처럼 가면이면 어쩌지. 억지로 끼워맞춘 가면을 쓴 내 모습이면 어쩌지.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지금의 나는 또다른 페르소나에 불과한가.



곰곰이 대답을 생각했다. 저번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런 내가 싫지 않았다.

낯가림을 숨기는 내가 싫지는 않았다.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갈 길 가는 내가 싫지 않았다.

더 둥글둥글해지고 더 너그러워진 내가 싫지 않았다.

대신, 똑같이 화내면 같은 사람이 된다라는 말을 들어도
딱,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가 당한 만큼만 돌려 주는 
내가 싫지 않았다.

조언은 오래 기억하고 싫은 소리를 구분하여 누가 들어도 싫어할 만한 소리는 저절로 잊는 내가 싫지 않았다.

나는 지금의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



결론을 내렸다.



나는 지금의 내가 참 좋다.



지금 이 모습 또한 하나의 페르소나에 불과할지라도 이 모습 역시 나, 자신이었다. 가면이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 없이. 무슨 모습이든 그 뿌리는 나, 자신이었다. 이제야 찾았다. 그덕에 이제 휘둘리지 않는다.


누가 그랬다. 화가 나서 똑같이 하면 똑같은 사람이 된다고. 나 역시 익히 들었다. 그리고 판단했다. 뻔히 상처 받은 내 모습을 마주하느니 똑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내게 상처 준 사람과 나는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똑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 같은 행동일지라도 의도는 확연히 다르기에. 그리고, 내게 상처 준 사람처럼 나 역시 나를 지킬 권리가 충만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열심히 나를 지켜야 한다.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상처로부터.


대학교 수시를 지원할 때도 그랬다. 수시 접수비 대신 내주실 것도 아니면서, 라는 생각으로 조언과 영양가 하나 없는 경험담, 그리고 싫은 소리를 구분했다. 선생님들과의 상담으로 충분한 도움을 얻고 있었던 나였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과 나는 나의 수시 접수에 대한 영양가 없는 소리들을 많이 들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쯤, 기분이 이상했다. 접수비를 대신 내 주실 것도 아닌 사람들의 말에 왜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까.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나를 너무 아껴 주셔서 그래.

다들 나를 너무 아끼셔서 하나라도 더
알려 주려 하시는 거야.



나는 그게 편했다. 그 덕에 모두 흘렸다. 그리고 기억하지 않는다. 아, 이때부터인 것 같다. 내가 사람들의 말을 구분하여 기억한 것은. 면역이 생긴 걸까, 익숙해진 걸까. 무엇이 되었든 그것은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터득한 방법이겠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들었던 싫은 소리들을.

나는 기억한다.

내가 들었던 조언들과 좋은 말씀들을.



지금 내 모습이 페르소나일지라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 모습 역시 이기에.



그러니 그대도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다른 가면을 써서 그 페르소나에 지쳐서

본래의 자신을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속에는 혹은 그 자체로 온전한 당신이 존재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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