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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Jan 21. 2020

꽃덕에

고마워

꽃이 모두 져버린 줄만 알았던 어느 날. 꽃을 보고 싶었다. 벚꽃을 봐야겠다는 마음에 사로잡혔다.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벚꽃을 보기 위해. 아직 남아 있을 벚꽃을 보기 위해.





공원 앞에 섰다. 세상에. 아직도 벚꽃을 활짝 피어 있었다. 햇빛이 화창했던 덕에 꽃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기뻤다. 무언의 신고식 하나를 치른 기분이었다.


나는 벚꽃을 보고 싶었던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친구들이 모두 벚꽃 구경을 갔을 때, 나는 집에서 쉬는 게 우선이었다. 집을 더 좋아했다. 스무 살이 되고, 새로운 동네에서 새로운 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는 지쳤다. 이제야 한 달이 넘어가는데, 지쳤다. 벚꽃 구경을 다녀온 친구들이 많았다. 그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도 바뀌어 있었다. 활짝 피어 있는 벚꽃 옆에서 찍은 사진들로. 예뻤다.


벚꽃이 보고 싶었다. 벚꽃에 안겨 분홍빛으로 가득한 거리를 거닐고 싶었다. 처음이었다. 벚꽃이 그토록 보고 싶어 진 순간이. 과제에 치이고 치여 미뤄고 미뤘더니 끝 무렵이 되었다. 꽃이 다 져버렸겠지, 생각했다. 이번 해에도 벚꽃 구경을 못 하는구나. 내심 속상했다. 속상해서 친구에게 말했다.



벚꽃이 너무 보고 싶어.



친구가 말했다.



보러 가자!



다 지지 않았을까, 하는 나의 우려에 친구가 해 준 말이 있다.



그래도 가 보자!
어쩌면 많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



우리는 벚꽃을 보러 갔다. 정말 늦게 벚꽃 구경을 갔다. 가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듬성듬성 피어 있지는 않을까, 사람이 많을까. 도착하고 나니 그 걱정들을 왜 했나 싶었다.





꽃이 만개했다. 아직도 환하게 웃어 주고 있었다. 울컥했다. 단 한 번도 보고팠던 적 없던 벚꽃 구경. 오는 여정 동안 남몰래했던 걱정의 결과는 눈부셨다. 넘겨짚으며 꽃이 다 졌으리라, 단정 지었더라면 후회했겠지.


한 가지 우려가 더 있었다.



사람이 많지는 않을까?



조용한 곳에서 벚꽃을 보고 싶었다. 공원에 도착하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꽃과 더불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수많은 꽃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이 많은 곳을 그리 좋아하지는 내가,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이 많아서 다행이다.



사람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벚꽃의 어울림 덕에 비로소 벚꽃 구경을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설렘, 그 자체였다. 사람이 적으면 꽃을 보는 데에 더 집중했겠지만, 구경이 아닌 사색을 하러 온 장소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사람이 많으면 비록 정신은 없지만, 활기가 가득한 덕에 축제 느낌이 난다. 사람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만약, 그 걱정이 정말이었더라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했던 걱정이 그대로 이 공원에 일어났더라면, 나는 어떠했을까. 듬성듬성한 꽃을 보며 과연 실망했을까,  아님 그 마저도 좋아했을까.






동물 친구들도 많았다.





햇볕을 만끽하며 낮잠을 즐기고,





무엇하나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그물망 너머로 자신을 구경하는 사람을 보고,





눈 하나를 쇠 사이에 간신히 맞춰야 보이는 풍경을 보고,





햇볕을 등지고 가만히 누워 있어 보고,





사람이 주는 당근을 받아먹고,





자신들을 보는 두 눈들을 가득 맞으며 그렇게 그 속에서 살아간다.


독수리 한 마리가 마음에 걸렸다. 옆에 어느 어르신이 계셨다. 라이터를 꺼내시더니 대뜸 독수리에게 던지려는 시늉을 하셨다. 행동이 지속되자 독수리도 화가 나는 듯했다. 날개를 서서히 피려 했다. 어르신은 그제야 시늉을 멈추시고는 무서우셨는지 뒤로 물러나시더니 곧 걸음을 옮기셨다.


굳이 독수리에게 그러하셨던 이유가 무엇일까.








봄을 배웅해 주고 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많은 얘기도 나누었고, 많은 생각도 했고, 날리는 벚꽃만 보아도 환하게 웃으며 축제 기분도 느꼈다. 가득 피어난 벚꽃과 함께. 집에 오는 길에 생각했다. 스무 살이 되어서야 본 첫 번째 벚꽃 구경은, 봄을 향한 배웅이었다. 다음 해에 다시 올 봄을 향한 설렘이기도 했다.


열심히 봄의 끝 무렵까지 같이 걸어 주며 다음에 올 때도 조심히 와, 하고 배웅했다.


잘 가, 봄.
또 와, 봄.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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