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했다. 드디어 종강을 했다. 사실 몇 주 전에 했지만, 종강을 만끽하느라 이제야 타자기 앞에 앉았다. 한 학기 중 절반 가량의 시간은 철도 위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시간은 또 나뉜다. 학교에서의 시간과 나의 시간으로.
나의 시간
학기 중 나의 시간은 현저히 부족했다. 많은 것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 보면, 마음에 와 닿는 일은 없었다. 과제를 끝내고 나면, 시간이 조금 남았다. 그 시간은 잠을 자기 바빴다. 주말이 되면 나는 잠을 자야 했다. 부족한 잠을 주말에 몰아서 자는 습관을 갖고 있기에 더더욱. 부족한 잠을 주말에 몰아서라도 자야 다시 평일을 보낼 수 있었다.
많은 글을 썼다. 전공과 교양 시간 때 모두. 많은 글을 썼다. 전공 시간에 썼던 모든 글에는 애정이 없다. 전공 시간에 썼던 열 편이 넘는 글에는 애정이 없다.어떤 평가를 받을지 걱정하지 않았다. 어떠한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그냥, 그냥 썼던 글들에 불과했다. 진심을 다해서 그냥, 그냥 썼다. 제출만을 목적으로.
애정을 가득 담은 쓴 글은 단 두 편이었다. 두 개의 강의에서 각 한 편씩. 모두 교양 강의였다.
첫 번째
어느 한교양 수업에서 중간고사 대체 과제를 받았다. 드라마, 영화, 80년대-90년대 노래 등과 관련한 자신의 글을 쓰는 과제였다. 장르와 제한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대학교에 와서 받은 작문 과제 중 처음으로 얼른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영화 관련 문제에서 나는 소설을 썼다. 교수님께서 제시해 주신 영화들 중에서 한 영화를 택하여 글을 써야 했다. 그 영화들 중에서 나는 랍스터를 택했다.
더 랍스터 -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작품 -
영화 ‘ 더 랍스터 ’ 포스터
영화의 주제를 활용하여 글을 썼다. 넓은 주제로 ‘사랑’으로 정의했다. 그다음, ‘사랑의 형용에 대한 기준’으로 주제를 좁혔다. 그러고 나서 글을 시작했다. 진심을 다 해서. 그 글이, 흰동가리 이다.
흰동가리를 다 쓰고 나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대학교 와서 쓴 글들 중 처음으로 애정을 가득 담은 글이었다. 애정을 가득 담은 만큼 내 글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에 대해서도 계속 걱정했다.
대학교에 입학 후 들은 강의들 중 처음으로 대학교 수업이라고 느꼈던 강의에서, 처음으로 애정을 가득 담은 글을 썼다.
두 번째.
두 번째 강의에서는 자신의 삶 일부분을 소개하는 글을 써야 했다. 쓰고 싶은 대로 써 보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정말 마음 편하게 글을 썼다.
내가 쓴 글을 읽었다. 여기저기서 피어난 웃음들이 퍼지고 퍼져, 강의실은 순식간에 웃음으로 가득 찼다. 웃음소리를 들었다. 군더더기 없이 기뻤다. 그 자체로 기뻤다. 짧은 시간 동안 나의 일부분을 담은 글이었다. 일부분을 담는 동안 애정도 고스란히 담겼다.
마지막으로 강의실을 나서며 안녕히 계세요, 인사했다.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글을 너무 재밌게 잘 써요.
대학교에 입학 후 들었던 몇 없는 칭찬들 중 최고의 찬사였다. 연신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렸다. 억지로 글을 쓴다는 기분이 가득했을 때, 그 말을 들었다. 교수님께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