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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Jan 21. 2020

너랑 나는 많이 닮았어

그렇지?

살찐이와 함께 살면서 지인들로부터 많이 들은 말이 있다.



너는 점점 살찐이를 닮아 간다.



개기일식.



살찐이는 울음 소리를 내지 않는다. 모든 움직임이 많지도 않다. 살찐이가 우리에게 보내는 여러 의사소통 중 하나의 방식은, 눈으로 말을 전한다.


살찐이의 눈은 보고 있노라면 우주가 떠오른다. 동그란 동공을 감싼 금빛 선. 마치 해를 품은 달, 개기일식이 떠오른다. 이 작은 아이는 알까. 저의 눈이 얼마나 눈부신 우주를 품고 있는지.


살찐이는 자신의 우주를 우리에게 보여 주며 말을 건다. 살찐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눈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그 우주 속에 풍덩, 빠져야 한다. 자그마한 몸이 건네는 무한한 우주. 우리 역시 그 우주에 답한다. 살찐이가 하는 것처럼. 눈 맞춤으로 우리의 우주를 건넨다.


비언어적 표현 중 나는 목소리, 손짓 그리고 눈맞춤을 많이 사용했다. 특히, 눈맞춤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대화의 기교보다는 눈맞춤을 통한 존중을 중요시 했다.


살찐이를 만남으로써 눈맞춤에 대한 중요성을 더욱 깨닫는다. 진심으로 보여 주는 살찐이의 우주 덕에 나 역시 눈으로 진심을 전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나는, 살찐이를 닮아 가고 있다.



깨워서 미안해, 살찐아.



살찐이의 목소리는 ‘눈’이다.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마주친 무한한 우주 속으로 빠져 헤엄쳐야 한다. 드넓은 우주 만큼 다양한 감정들이 이 눈 속에 담겨 있다.


벨소리가 울렸다. 잠을 자고 있던 살찐이가 깨어났다. 복합적인 살찐이의 감정이 사진을 뚫고 나오는 것이 느껴지 듯하다.



살찐이가 다시 포근하게 잠이 들 수 있도록 옆에서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잠시 쉬고 있어.



살찐이는 적당한 쉼을 만끽한다. 살찐이는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 밑으로 들어가 쉬는 것을 좋아한다. 다리를 편하게 뻗은 모습. 그 모습이 편안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런 살찐이를 보노라면 덩달아 편안해진다.



햇빛 죻아.



살찐이를 따라 나의 취미 생활 하나가 생겼고,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생겼다. 베란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드리워지는 곳, 거실 바닥. 베란다 창문 바로 앞 바닥에는 햇빛이 가득 들어온다. 살찐이는 그 공간을 좋아한다. 햇빛이 쏟아지는 그 공간을 좋아한다. 살찐이를 따라 그 옆에 누웠다.


햇빛이 살에 닿는 순간 따뜻함이 온 몸을 감쌌다. 지쳤던 몸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그 날부터, 햇빛이 닿은 곳에 누워있고 싶어졌고, 나의 취미 생활이 되었다. 광합성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 생활.


살찐이 덕에 나는 햇빛을 통해 치유 받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집에서 햇빛 아래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쉼이 되는지.


그때부터인가, 내가 아침을 더 좋아하는 게 된 순간이.





눈동자에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얘기들. 살찐이는 눈맞춤으로, 눈동자에 담아둔 목소리를 들려 준다.


사람보다 훨씬 작은 이 존재로부터 배운다. 존중을 표현하는 법을. 눈맞춤이 가장 정직한 존중이라는 것을. 이 작은 아이가 내게 존중을 표한다. 어쩌면 사람도 귀찮아할지 모르는 눈맞춤, 그 사소함이 얼마나 큰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지. 작은 존재로부터 배운다.


살찐이의 우주는 나보다 거대할 테지. 살찐이의 우주를 내게 기꺼이 보여준 만큼 아직 보지 못한 더 큰 우주를 담고 있을 테지.




살찐아, 고마워.

무한한 너의 우주에 나를 담아 주어서.


늘 살찐이에게 말한다.



살찐아, 우리 가족과의 만남을 너가 ‘복 받았다.’
, 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어.



나에게는 커다란 복이다. 살찐이와의 만남이. 나는 복 받았다. 살찐이를 만날 수 있었으니.


나는 살찐이와 더 자주 눈을 마주쳐야지. 작은 존재가 품은 무한한 우주를 헤엄치기 위해. 그리고 보여 주어야지. 너로 인해 나의 우주가 얼마나 환해졌는지.



사람들이 그랬다. 원래 반려동물이 같이 사는 사람을 닮아 간다던데, 너는 오히려 너가 반려동물을 닮아 가는구나. 어느 순간부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되었다.



살찐이를 똑 닮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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