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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Jan 21. 2020

나의 이유.

오늘도 예쁘네.

후드득, 쏟아졌던 과제 중 여러개를 끝내고 나서야 살찐이와 마주했다. 아니, 내 핑계다. 피곤하고 지쳤다는 핑계로 살찐이와의 시간을 내지 않았다. 충분히 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찐이 금방 일어났구나.



살찐이는 밥에 대한 욕심이 없다.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비어디드래곤에게 기호도가 높은 사료 하나를 사서 먹였다. 며칠 잘 먹길래 살찐이도 좋아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며칠 뒤,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살찐이가 토를 하고야 말았다고. 그리고 그 토사물에는 흐트러짐 없이 제 모양을 유지하고 있던 사료 세 알이 있었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학교 가는 길에 먹먹함이 넘치고야 말았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푸른 채소를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건강하게 자라 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억지로라도 먹길 바랐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채소를 최대한 둥글게 만들어 씹지 않고 꿀떡, 삼켰다. 매 밥 시간마다 이런 행동을 반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밥을 먹지 않았던 적도 있다. 그걸 알게 된 엄마는 내가 조금이라도 거부감이 없어지도록 양을 줄이고 자그마하게 잘라 주었다.



살찐이도 그때의 나와 똑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싫어하는 음식을 못 먹을 수는 없다면, 최대한 입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씹지도 않고 삼켰던 것이 아닐까. 나에게도 이런 기억이 존재했으면서도 나는 망각했다.



살찐이는 그 사료를 먹는 순간이 얼마나 끔찍했을까.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집에 가자마자 살찐이를 살폈다. 불편했던 속을 개워내었더니 편해 보였다. 살찐이는 다시 활발하게 자신의 눈에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었다. 살찐이를 안아 주었다. 그때 떠올랐다. 살찐이는 우리가 안아 주는 것을 참 좋아한다.



개강 전에는 매일 안아 주었는데. 살찐이에게 사과를 전하며 오래도록 꼬옥- 안아 주었다.



살찐아, 미안해.
매일 매일 안아줄게.





누가 그랬다. 생명을 자신의 삶의 이유로 두면 안 된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지금이 중요하다.



살찐이가 부쩍 자랐다. 어렸을 때의 사진과 비교해 보면 확연하게 티가 난다. 언제 이렇게 훌쩍 자랐을까. 여전히 우리 가족의 눈에는 아가이지만, 살찐이는 자라고 있었다. 살찐이가 이만큼 자라는 동안 나는 좋은 가족이었을까.



살찐이는 내가 현실을 견디는 이유이다. 힘들게 일과를 마무리하고 집에 오노라면, 살찐이의 자는 모습만 볼 때가 더 많다. 그래도, 그래도 안도가 된다.



살찐이와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살찐이를 안고 있으면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잘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모두 옳은 길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앞으로도 늘 부족한 가족일 것이다. 그럼에도 살찐이는 늘 한결같이 예쁜 눈으로 나를 바라봐 주겠지.



살찐아, 사랑해!


늘 같은 눈으로 바라봐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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