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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Jan 21. 2020

이제는 본래의 나로.

억지로 쓴 가면은 넣어두기로.


우리 대학교는 공동체를 좋아하는 듯 했다. 다같이 어디를 가는 일정이 드문드문 있었다. 그 드문드문이 나에게는 자주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지 않았다.


나는 발표하기를 좋아하고, 낯선 사람들에게도 말을 잘 걸었다. 누가 봐도 외향적이고 낯가림이 없는 아이로 비춰졌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러 갈 때는 주섬주섬 새로운 가면을 썼다. 사실 나는, 꽤 소심하고 낯을 가린다. 특히 다같이 가서 몇 박 며칠 자고 오는 그 일정을 싫어한다. 소수의 여행만 좋아할 뿐, 마냥 공동체를 추구하는 성격은 아니다. 이런 나를 숨겨야 했다. 사람들을 만나면 늘 웃고 친절하게 대했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 속은 겁으로 가득했다.


내가 말 걸면 대답해 줄까, 먼저 말을 걸어도 될까.


몇 번씩 고민하고 말을 걸었다. 얼마나 만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너무 친절했다. 그러다 보니 진정으로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남들에게 그 힘을 모두 써 버렸기에. 남들에게 비춰질 내 모습을 너무 신경쓰느라. 나는 알고 있었다. 누가 가장 소중한 사람들인지. 한창 입시에 신경쓰고 있었을 때, 나는 내 가면을 벗고 마음 깊은 곳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원래 내 모습으로 시작했다. 친구가 인사를 받아주지 않으면 다시 인사해서 받아주면 그제야 마음을 놓았던, 그런 나를 이제 숨겼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 없음을 마침내 인정했다. 입시에 지쳐 있을 때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 사람들이 내게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내가 진심을 다해 대해야 할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나를 좋아해 주면 고맙고, 나를 싫어하면 그만이다. 그 시선들에 신경 쓴 내가 못나게 느껴졌다. 거절을 잘 못하던 나는 거절도 하고, 쓴소리를 못하던 나는 우리를 위해 쓴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 후에는 꼭 응원을 했다. 나만의 철칙이었다.


모두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그렇기에 내가 그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반드시 어루만져 주기로. 그 누구도 내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없듯이 모든 사람들도 그랬다.


이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 나는 인연에 연연하지 않았다. 꽤 냉정했다. 헤어짐을 분명히 했다면 더더욱. 내게 상처를 입힌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 선을 긋는 과정은 슬펐다. 내 기억 속에 오래 있었던 사람과의 그 헤어짐은 더더욱.


초, 중, 고. 학교를 다니는 동안 뵈었던 선생님들께 감사함이 컸다. 지식만이 아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셨고 다양한 얘기들을 해 주셨다.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 감사함에 내가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선생님들께 안부 인사 드리기. 그 덕에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과도 계속 연락을 하고 있다.


선생님들께 연락을 드리면, 잊지 않고 연락 줘서 고맙다, 라는 말씀을 종종 해 주신다.
그 말씀들에 나는, 저를 기억해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받은 감사함이 커서 선생님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에도 주소록에 계신 모든 선생님들께 소식을 전해드렸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다. 늘 그랬듯이 앞으로도 나는 주소록에 계신 모든 선생님들께 연락을 드려야지.



제자로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학교 합격 발표가 슬슬 나올 때, 한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합격 소식이었다.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친구의 합격이 정말 기뻤다. 나에게는 어느 대학교에 붙었냐고 묻길래 나도 알려 주었다.


그때, 친구의 반응이 아직도 생생하다.


읽고 나서도 한참 후에 왔던 답장, 축하해. 끝이었다.
고맙다는 내 답장 이후로는 우리의 대화는 공백이었다. 오랜 친구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만난 친구였는데. 마음이 공허했다. 굉장히 허무했다. 내가 고작 그런 존재에 불과했었나. 예전 같았으면 그 친구의 반응에 도리어 걱정했겠지. 내가 자랐나 보다.


자라난 용기 덕에 나는 내 의견을 말할 수 있었고, 선택 사항이지만 다수가 참여하는 행사라도, 선택 사항이라는 명분으로 불참을 택했다. 스트레스 받을 게 뻔했기에. 그 스트레스를 견디기보다는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좋았다.


그런 행사들에 참여하지 않아도 친해질 친구들과는 다 친해졌다. 의외로 그런 행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혼자만 가고 있다고 생각한 그 길은 사실 혼자가 아니다. 그 길을 가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고 있었다. 더불어 그런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과 함께였다.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반응이 다양했다. 그 중에서도 알 수 있었다. 누가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는지, 될 수 없을 거라 타박하는지.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 없듯이 우리 역시 모든 사람들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다. 상처를 입혔다면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그 정도의 친절함, 딱 그 정도만. 나, 그리고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친절함은 진심으로 그래야할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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