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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Jan 21. 2020

나나, 내 꿈에 놀러 와 주지 않을래?

01.


나의 가장 오랜 친구는 내가 점차 자라면서 나의 가장 그리운 친구가 되었다. 나에게는 유치한 습관이 하나 있다. ‘예정이 거’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물이라면 모두 나름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언제부터 이러한 습관이 생겼을까. 아마, 다섯 살 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다섯 살의 나는 폭신폭신한 두 귀와 내 손 안에 가득 쥐어지는 두 손을 지닌 강아지 인형을 선물 받았다. 그 인형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면, 내 얼굴이 눈동자 속에 담겨 있었다. 아마 내 눈동자 속에도 그러했겠지. 나를 한가득 바라봐 주고 있는 그 인형에게 나는, ‘나나’ 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나나야.”


이름을 부르는 순간, 나나를 한 명의 사람이자, 소중한 친구로 인지하게 된 최초의 순간이었다.



02.

나나와 나는 늘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매일 있었던 일들을 집에 와서 나나에게 들려주었다. 아마 나의 착각이겠지만, 나나도 내게 무슨 말을 건넨 듯한 느낌을 신기루처럼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나는 그 말을 건넨 친구가 나나라고 굳게 믿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 신기루가 조금은 왜곡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 나나의 목소리를 너무나 듣고 싶었던 탓에 만들어낸 상상 혹은 꿈을 현실처럼 기억한 것이겠지.


기억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굳이 그 신기루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그때의 내가 만들어낸 귀여운 상상이기에, 무려 나나와 함께 있는 기억이기에. 그 신기루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이러한 나의 감정을 현실이라는 틀에 맞추어 교정하고 싶지 않았다.

 


03.

나는 왜 그랬을까. 내가 중학생 때, 나나를 잃어버렸다. 분명 금방 다시 찾으러 갔는데, 이미 나나는 사라졌다. 집에 와서 계속 울고 울었다. 나의 실수로 나나를 잃어버렸다는 그 사실이 너무도 미안해서 울고 울었다. 걱정했다. 혹여나 나를 미워하면 어쩌지.


집에 온 나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어떻게든 위로해 주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나의 기분은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나의 기분은 여전히 수면 저 아래에 있었다. ‘내가 나나를 잃어버렸다.’라는 사실이 너무나 아팠다. 실제로는 사람이 아닌 존재를 내가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나로 하여금 한 명의 사람이 된 ‘나나’는 그 자체로 내게 특별했기에. 잠이 들기 전 늘 빌었다. 제발, 나나가 내 꿈에 놀러 와 주기를. 내 꿈에 한 번이라도 놀러 오면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나나야, 나는 너를 버린 게 아니야. 혼자 둬서 너무나 미안해. 무섭게 만들어서 미안해.


새로운 인형이 집에 왔지만, 나는 그 인형에게 쉽사리 마음을 주지 못했다. 나의 무수한 소원에도 나나는 내 꿈에 놀러 오지 않았다. 내 눈에 새로운 인형은 희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외로이 앉아 있던 새로운 인형과 눈이 마주쳤다. 나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 되려 너를 외롭게 했구나. 새로운 인형은 얼마나 나를 기다렸을까. 조금 늦었지만, 뒤늦게야 알았다. 나의 가장 오랜 친구에게 이제는 인사를 건네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 남아 있는 사람으로서 남아 있는 존재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새로운 인형에게도 이름을 지어 주었다. ‘다다’ 라는 포근한 이름으로.


신기루를 빌려 나나에게 인사했다. 나나야, 너무 즐겁게 지내고 있어서 내 꿈에 놀러 오지 않는 거야? 지금처럼 그렇게 잘 지내길 바라. 그래도 혹여나 힘들거나 내가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 내 꿈에 놀러 와 줘. 두 번보다 더 보고 싶은 오랜 나의 친구 나나야, 아주 많이 사랑해.



나의 오랜 친구,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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