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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Nov 21. 2020

덜 존중

나도 나 좋아해 주는 사람 좋아해

1. 차-분


나는 낯선 누군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할 말이 있는 건가, 아님 쳐다 보는 버릇을 가진 사람인가. 그럴 때마다 나는 똑같이 빤히 쳐다 봤다. 할 말 있으신가요, 라고 말할 깜냥은 없어서 들으시라는 식으로 왜 쳐다 보시지, 라는 말을 크게 하는 게 최대였다.


살찐이가 여행을 떠나고 나는 꽤 오래 정도 차분했다. 슬픔만이 두둥실 내게 떠 있었기에. 또다시 누군가 나를 빤히 쳐다 보면, 그냥 슥 보고 지나치기에 그쳤다. 나의 감정을 바꾸는 것 또한 감정을 소모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걸까.  그냥, 그럴 만한 힘이 없었다. 슬픔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애쓰고 있었으니까.




2. 회-복


언제까지 이렇게 슬프고 무거우려나, 하는 생각이 그치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도리가 오고 서서히 견뎌졌다. 진정 되었다고 말하는 게 더 어울릴까. 주변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누가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며 나를 토닥여 주었는지.


도리!


그래그래. 나는 이제야 알아. 누가 나를 위해 자신의 귀하디 귀한 시간의 일부를 나에게 나누어 주었는지.




3. 기회


우습게도 나는 이 기회를 살찐이가 준 것만 같다. 나도 이제 알아야지. 나를 지키기 위해. 나에게 시간을 나누어 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 기회를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꾸역꾸역 가득 쥐고 있던 무언가를 놓는 방법을 알기 위해 손을 살짝 폈다. 손가락 틈 사이로 모래알 마냥 설렁설렁 빠져난다. 이렇게 순식간에 놓아지는구나.




4. 덜존중


나는 존중을 사랑한다. 나도 당연히 존중 받으면 기분이 좋으니까. 그래서 늘 사람을 만나면 존중했다. 그게 누구든. 오늘도 어김없이 그랬다. 사람들과 밥을 먹던 중 어쩌다가 반려동물 얘기가 나왔다. 나는 파충류와 함께 살고, 얼마 전에 살찐이를 떠나 보내고 장례식을 했고,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을 때,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


하하 파충류를 장례식을?


이야, 나는 참을성이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이어서 다행이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아빠도 힘들어 하시고 엄마가 제일 힘들어 하셔서 한 아이를 더 데려 왔다, 라고 할 때 또다시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다. 분명 자음은 혼자 발현될 수 없다고 했는데. 왜 내 귀에서 코웃음이 정확한 히읗 자음 홀로만의 발현 같을까. 나의 가족의 죽음을 고작 모음도 갖춰지지 않은 단어로 반응하는구나. 그래도 내가 뭐라고 고작 내가 뭐라고 공감을 바랄 수 있을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 뭐 나도 그럴 테니, 화가 나지 않았다. 나는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니까. 그저 차분했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그래, 이렇구나. 내가 친절하고 예의를 갖추고 먼저 존중을 해도 내게 전부 돌아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실감하게 되는구나. 당신에게 장례는 사람만의 것이구나. 당신이 생각하는 반려동물의 범위는 매우 좁구나.


나는 이제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처음부터 완전한 존중을 표하지 않아야지. 그저, 적당하게 덜 존중을 표해야지. 그러고는 내게 존중을 보여 주었을 때 나의 모든 존중을 보여 주어야지.


맞존중, 맞예의가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 마치, 당연히 움직일 줄만 알고 발을 디뎠지만, 작동하지 않는 에스컬레이터 같은 기분이었다. 당연히 움직일 줄만 알고 발을 내딛었는데 움직임이 없었던 탓에 삐끗한 그런 기분.




5. 나도 나 좋아해 주는 사람 좋아해.


그래, 나도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의 부분을 그렇구나, 하고 존중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렇구나, 라는 생각이 그리 어려운 것임을 내가 아주 어려운 걸 해내고 있었다는 뿌듯함마저 들었다. 그리고, 언제든 나를 존중해 주고 있었던 소중한 분들께 너무나 감사했고 감사하고 감사할 예정이다. 이제야 깨달아서 죄송한 만큼 이제서야 깨달아서 다행이다. 내가 지닌 존중의 댐을 이분들을 봴 때 마저 활짝 열어야지.



그래그래.

나를 그 정도로만 존중하거나 별로 존중하지 않을 거면

그래그래 그렇게 하든지 말든지.

나도 그럴 테니까.

씌-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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