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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Jan 10. 2021

나도 좋은 사람이 될래.

좋은 사람이 더 많으니까.

6. 꾸벅


살찐이의 동영상을 엮던 중 살찐이가 여행을 떠난 날이 두둥실 떠올랐다. 차마 이 작은 아이를 떠나는 모습을 내 눈으로 볼 수 없어서 우리는 고민을 거듭하다 장례지사 선생님께 대신 부탁을 드렸다. 살찐이가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순간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받았다. 그리고, 모순되게도 늘 우리 곁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찐이의 유골을 다시 안았다.


나는 감사한 일에 꼭 감사 인사를 전하지만, 말 혹은 약간의 허리 굽힘에서 그칠 뿐이다. 나는 누구에게 그토록 머리를 조아려 본 적이 없다. 머리가 땅과 맞닿을 정도로 조아린 적이 없다. 잠을 자고 있는 것만 같았던 살찐이를 장례지도사 선생님께 전해드릴 때를 제외하고는.



살찐이는 우리 집 향기가 가득 묻어나는 보송한 분홍색 수건 속에 소중히 담겨 집을 나섰다. 살찐이는 피부가 오돌토돌해서 수건에서 꺼내실 때 조심히 꺼내어 달라는 부탁도 드렸다.



우리 가족은 례지도사 선생님이 문을 나서기까지 아프게 간 아이여서 잘 부탁드립니다, 라는 말만 연신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 말밖에 못 한다는 게 서러울 지경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허리를 숙여 잘 부탁드립다, 말했다. 나는 살찐이를 위한 부탁이라면 몇 번이고 조아릴 수 있었다.



7. 사진



인화해 놓은 살찐이의 사진을 정리하던 중 살찐이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부터 훌쩍 컸을 때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아침부터 나는 울컥한 바다를 항해했다.



어? 엄마의 아주아주 어린 시절 사진이다. 아기였던 엄마와 그 옆을 지켜 주었던 검정 강아지.


마저 정리를 하던 중 우리 가족의 옛날 사진이 보였다. 동생의 아기 시절 모습. 우리 가족의 옛날 모습. 지금보다 젊은 모습. 지금 내 나이 때 우리 엄마, 아빠의 모습.


내 사진도 내가 더 늙어서 보면 이런 기분이려나. 사진밖에 남지 않는다는 말을 이렇게 실감한다. 사진을 더 많이 찍어야겠다.


살찐이가 여행을 떠난 뒤 내가 유일하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점이 있다. 사진을 많이 찍어두고, 여러 번 따로 저장을 해 두었던 것. 덕분에 많이 찍어두고, 동영상으로도 많이 담아 놓아서 살찐이를 늘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8. 무기복



살찐이가 그마한 구슬로 남은 후로부터 나의 감정은 한 줄을 찾았다. 슬프면 마구 울고, 웃고 싶으면 마구 웃고, 화가 나면 마구 화냈던 감정의 폭이 사그라들었다. 친구가 이런 나를 보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예정아, 너 지쳐 보여.


세상에, 내가 지쳤다니. 늘 밝은 사람이라고 자부했던 내가 지쳤다니. 그랬는데, 지금은 친구의 말이 너무나 옳았다. 나는 지쳤다.


작년에 나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되기 싫다는 다짐 하나로 매번 하나하나 대응하는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 나에게 먼저 불친절을 베풀면 똑같이 했다. 나 역시 불친절하게. 먼저 불친절한 사람에게 굳이 친절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늘 들었기에.


스물한 살 끄트머리에 도착하니, 나의 생각에 의문이 생겼다. 똑같이 했을 때 내 마음이 한순간이라도 편했던 적이 있었나. 나에게 물었다.



예정아, 마음이 편했어?


대답은 당연히,



아니.


하나도 편하지 않았어. 매번 찝찝했고,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라는 생각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 행위 자체로 나를 지치게 했다. 기복이 사라져서 그런가. 이제는 불친절한 사람을 만나도 화가 나지 않는다. 별로 속상하지도 않다.



9. 작지만, 커다란 존재



나는 늘 나보다 작은 존재에게 늘 배운다. 도리가 처음 우리 집에 온 날에는 사람을 너무 무서워해서 눈만 마주쳐도 놀라서 놓아둔 유목 뒤로 숨었다. 그 뒤로 일주일 동안은 도리에게 물리기도 하고, 고무장갑을 끼고 몸이 묻은 모래를 닦아 주기도 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적당히 물렸을까, 매일 볼 때마다 이름을 부르고 인사하다 보니 며칠이 더 지났다. 리는 천천히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다리에 무언가 닿는 기분이 들어서 보니,



도리였다. 도리는 노곤노곤 잤다. 내 다리는 쥐가 나기 시작했지만, 얼마든지 견뎠다. 더 견디다 보니 쥐가 너무 나서 다리를 천천히 움직였다. 행여나 곤히 자고 있는 도리를 깨울까 봐 아주 천천히 다리를 움직였다.


!



도리를 깨웠다. 도리는 잠시 쳐다보는 게 전부였다. 내가 잠이 들었을 때 누가 깨우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터라 도리가 깼을 때 “미안해!”라고 말했다. 내가 다리를 편하게 폈을 때 도리는 다시 자신이 좋아하는 자세로 누웠다.


나에게 기복이 다시 생겼다. 순간 나는 너무나 미안해졌고, 다시 편하게 누웠을 때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도리 덕에 점점 기복을 찾아간다.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이전과는 다른 기복을 경험한다.



10.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아.


도리가 오고 나서도 몇 주 간의 나는 친절을 마주해도 그저 그랬고, 불친절을 만나도 그저 그랬다. 그리고, 나 역시 처음 태도도 그저 그랬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고 않은 딱 평범한 태도 같았다.


도리와 생활하는 시간이 쌓이고 쌓였을 때 문득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그저 그랬을 때 한결같이 친절하셨던 분들.


하루는, 노트북이 조금 말썽이어서 해결 방법을 여쭙기 위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내 문제를 맡아 주신 분은 너무나 친절하셨다. 그때까지 나는 기계적으로 대답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나서 나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자 그분께서 내게 해 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 고객님 건강 조심하세요.


태어나서 우리 고객님, 이라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다. ‘우리 ’라는 단어가 이렇게나 따수웠다니. 기계적으로 해 주시는 말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새삼 내가 이렇게나 잘 울컥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나는 너무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조금 말썽이었던 노트북에게 고마울 지경이었다. ‘우리’라는 단어가 너무 좋아져서 지금도 나는 친구들과 연락할 때 우리 누구누구, 라는 말을 애용한다.


또 어느 날은, 전공 프로젝트를 하던 중에 우리 조가 만든 카드 뉴스를 몇몇 기관에 요청드려야 했는데, 그 일을 내가 맡았다. 대학생이었기에 당연히 거절당한 적도 많았지만, 아쉽다는 말씀과 함께 응원한다는 말씀을 꼭 해 주셨다.


그러던 중 두 기관에서 긍정적인 연락을 받았다. 단순히 대학생이 만든 콘텐츠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조언을 해 주셨고, 신경 써서 확인해 주셨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여러 번 감사 인사를 드렸다. 말씀을 주고받은 동안 내가 콘텐츠의 제작자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 감사했다. 덕분에 나는 다짐했다. 앞으로 나는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기에 존중해야지.


2020년은 비록 비대면인 해였지만, 살찐이와도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말 하나로 얼마나 돈독해질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더 많다는 소중한 사실도 다시금 되새겼다.


나는 똑같은 사람이 되려고 했다. 나에게 친절하면 친절하게, 불친절하면 불친절하게. 지금 생각해 보니 내 태도가 섣부른 판단에서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 사실 똑같은 사람이 되려고 했을 때의 나는 그러려고 마음먹는 자체로도 충분히 지쳤다. 별로 뿌듯하지도 않았다.


내가 그저 그랬을 때 친절하게 대해 주셨던 분들처럼, 단순히 대학생인 나에게 존중을 베풀어 주셨던 분들을 기억해야지. 나 앞으로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냥 동글동글하게 지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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