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를 위해.
어김없이 밤은 찾아오고, 우리는 졸음이 쏟아진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던 간에 잠은 어김없이 밤으로 안내한다.
이전과는 다른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 물리적 거리가 있었을 때에는 잦은 연락으로 아쉬움을 달랬지만, 물리적으로 가까운 지금은, 다들 상처받은 사람일 뿐이다.
세상은 내게 무엇을 알려 주려고 이 공간에 나를 두었을까. 가족이라 할지라도 맞춰가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을 알려 주기 위함이었을까.
서운함에 못이겨 화를 내는 사람, 그 화를 제공한 사람이 건네는 사과. 그리고, 그 둘의 사무침을 바라보는 아직 어른이 필요한 아이들. 모두가 상처 많은 사람이었다.
어쩔 때 보면 화는 참 신기하다. 작은 불씨가 점차 자라나 큰 불이 되고, 자라난 화마는 기어이 자신의 마음마저 태워버렸는데도, 스스로 꺼져간다. 화마에 의해 마음이 타버린 사람도, 스스로 마음을 태운 화마도, 그럼에도 서로 사과를 건넴으로써, 서로 어루만짐으로써 불이 잦아든다. 꺼져가는 불씨, 다 타버려서 재만 남은 곳을 토닥이는 것은 새벽에 내리는 비였다.
어째서 우리는 누군가 화를 내야지만, 그제야 속 마음을 털어놓을까. 어째서 누군가의 마음이 타버려야지만, 비를 내리는 걸까. 가족이기에 더욱 어려웠던 걸까.
화마가 휩쓸고간 마음은 벗겨진 피부로 남았지만, 새벽 비가 내림으로써 잔뜩 따가웠고, 그 덕에 서서히 딱지로 자리잡았다. 이 딱지는 결코 튿어지지 않고 간혹 그때의 밤을 환기시킬 테지.
마음이 타버린 사람은 어째서 그 불씨를 주었을까, 가족임에도 왜 그런 불씨를 키웠을까.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그 밤이 가장 길었던 사람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이었다. 아직 어른이 필요한 아이들, 그 아이들의 흉터는 오래도록 남겠지만, 견뎌내느라 애쓴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거름으로 자라게 된다. 어른도 무너질 때가 있고, 이토록 아이처럼 우는구나, 아직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구나.
이 집은 상처 받은 사람들이 모였고, 서로의 상처을 보았고, 서로의 원인이 된 사람들끼리 서로의 상처를 기어이 보듬었다. 우리는 그 새벽을 잊지 못할 테고, 새벽비의 토닥임이 종종 떠오를 듯하다.
덕분에 깨달았다. 무너져도 괜찮다. 무너져야 다시 세워지는 것도 있기에, 무너져야지만 다시금 기반을 탄탄히 세울 수 있는 힘을 찾을 수 있기에, 무너져도 괜찮아. 다시 일어날 거야.
그리고 다짐한다. 상처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서 또다시 날을 살고, 오늘을 살고, 매일을 살아야지. 나는 태어나길 참 잘했으니 말이다.
우리 모두, 태어나길 참 잘한 귀하디 귀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