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토론만 하면 힘이 빠질까

반대에서 의사결정까지, 생산적 토론이 이뤄지는 네 단계

by 이주승

우리는 매일 작은 결정을 함께 내리며 산다.

가정에서 오늘 저녁 메뉴를 정할 때도, 직장에서 업무 방향을 정할 때도 서로의 관점을 비교하며 자연스럽게 대화와 토론을 이어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토론’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분위기는 엄숙해진다. 누군가를 논박해야 한다는 압박과 긴장감이 앞서면서, 토론 자체를 어렵게 느끼는 것이다. 동시에 그 긴장감 속에서 논의가 조금만 엇나가도 금방 피로가 몰려온다.


하지만 토론은 싸움이 아니다. 서로의 관점을 잠시 빌려보며 더 나은 결론을 찾는 과정에 가깝다. 그래서 중요한 건 말을 많이 주고받는 것 이상으로, 토론이 실제로 어떻게 흘러가고, 어떤 단계를 거쳐 앞으로 나아가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토론은 네 단계로 흘러간다. 반대–설득–쟁점–의사결정. 이 흐름을 알고 있으면 토론은 소모적인 활동이 아니라 더 생산적인 활동이 될 수 있다.


반대 - 불편함이 아니라 더 나은 판단의 출발점


우선 토론은 반대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많은 조직에서 반대하는 것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행동이다. 분위기를 깨거나 괜한 부담이 될까봐 입을 닫은 채 조용한 합의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용한 합의는 대부분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합의다. 다른 관점이 부딪힐 때 비로소 위험 요소가 드러나고 새로운 대안이 드러난다.

실제로 2002년 조직행동 연구는 팀 안에서 실제로 의견이 충돌할 때 정보 검토가 더 넓어지고 결정 오류가 줄어드는 경향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독일 괴팅겐대 연구진은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합의보다 ‘진짜 이견(genuine dissent)’이 있을 때 확증편향이 약해지고, 더 깊은 검증이 이뤄진다고 밝혔다(Schulz-Hardt et al., 2002).


반대는 상대를 공격하는 행동이 아니다. 이 지점을 다시 들여다보자,는 신호이며, 위험을 미리 밝혀주는 일종의 탐지기와 같다. 다만 모든 반대가 좋은 반대는 아니다. 무엇이 다르게 보였는지, 어떤 전제가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우리가 실제로 충돌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명확히 짚은 반대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대는 의견 검증이 아니라 단순한 ‘딴지 걸기’가 되기 때문이다.


설득 - 주장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공유하는 과정


이렇게 반대 의견을 제시해도 그 의견을 무시하거나 갈등이 싫어서 회피하면 토론이 멈추게 된다. 그래서 반대가 등장했다면 다음은 설득이다. 설득이라고 하니 ‘내가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 설득의 본질은 다르다.


설득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그렇게 보는지를 설명해 상대가 내 판단 과정을 그대로 따라올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내가 머릿속에서 이미 거쳐 온 판단의 흐름을, 상대의 머릿속에서도 한 번 더 재현되도록 만드는 과정에 가깝다. 단순히 “그건 효과성이 떨어져요”라고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데이터와 사례를 보고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근거가 등장하면 세 가지가 달라진다. 첫째,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보고 있는지 판단 기준이 투명해지고, 둘째, 어디에서 의견이 갈리는지 그 지점이 정확히 드러나며, 셋째, 사람을 공격하는 대신 기준과 데이터 자체를 두고 이야기하게 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감정 싸움이 줄어든다.

반대로 근거 없이 같은 말만 반복하면 설득은 곧 우기기가 된다. 근거가 없으면 상대는 그 말을 검증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설득 단계’는 상대를 꺾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서로의 기준과 근거를 검증 가능한 형태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과정이다.


쟁점 - “무엇 때문에 우리는 부딪히는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과정


이처럼 설득이 오가다 보면 결국 서로 다른 지점이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쟁점이다.

쟁점은 우리가 왜 다른 결론에 도달했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핵심적인 축이다. 쟁점이 정리되는 순간 흩어져 있던 논의를 한 줄기로 모아준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쟁점 파악 없이는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다 토론이 끝나기 쉽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쟁점은 크게 다음 네 가지에서 갈린다.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실현 가능성을 얼마나 넓게 혹은 좁게 보는가

가치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는가

정책 효과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문제는 많은 회의가 쟁점을 말로 정리하기 전에 끝나 버린다는 것이다. 자료는 오갔지만 정작 “무엇 때문에 다른지”를 명확히 말하지 않은 채 시간을 다 써버린다. 쟁점 정리는 어렵지 않다. 다음과 같은 문장 하나면 충분하다.

“결국 우리가 의견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속도와 안정성이네요. 지금 상황에서 어떤 가치를 우선할지 기준을 함께 세워보면 좋겠습니다.”
“같은 데이터를 보고도 효과에 대한 전망이 갈리고 있네요. 서로의 가정을 확인해보면 어떨까요?”

이 문장이 등장하는 순간 토론은 말의 나열에서 분석으로 전환된다.


의사결정 - 토론을 현실로 옮기는 마지막 과정


쟁점 파악까지 토론을 잘 이끌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보다 생산적인 토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조직 등에서 토론이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결론으로 이어져야 한다.

직장인들이 회의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 같다. 바로 '결론 없이 끝나는 회의'다. 한 조사에서 직장인 68%가 회의에 불만족한다고 답했는데,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결론 없이 흐지부지 끝나는 회의”였다. 결론이 없으면 회의는 기록만 남기고 사라진다. 모두의 시간도 낭비된다.


의사결정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번에 결정할 범위를 좁히는 것이다. 모든 사안, 또는 너무 많은 안건을 한 번에 해결하려 하면 회의는 금세 과부하가 걸린다. “오늘은 A와 B를 결정하고, C는 다음 회의에서 논의하자.”와 같은 작은 합의만 있어도 논의는 앞으로 나아간다.

다른 하나는, 어떤 방식으로 결정할지 미리 합의하는 것이다. 다수결로 정하거나 익명 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 책임자 최종 판단으로 두거나 또는 두 방식을 혼합하는 방식도 있다. 결정 방식을 정하면 모든 논의가 결론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즉, 절차가 없으면 모든 말은 공중에 흩어지고, 절차가 있으면 어떤 말이든 결론으로 정리되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한다고 결론이 생기지 않는다


토론의 생산성을 가르는 기준은 말의 양이 아니다. 반대–설득–쟁점–의사결정이라는 네 단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 그리고 토론이 진행될수록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것이다. 이 네 단계가 조직의 기본 언어가 되는 순간,


우리가 하는 토론이나 회의는 시간 낭비가 아니라 논의를 깊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반대는 불편함이 아니라 더 나은 판단의 출발점이 된다. 설득은 서로의 기준을 맞추는 과정이 되며, 쟁점은 논의를 한 줄로 모아준다. 마지막으로 의사결정은 우리의 생각을 실제 변화로 연결한다.


다음 회의에서 누군가 조심스럽게 “저는 다른 생각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을 유심히 보자.

그 말은 회의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결론을 여는 첫 걸음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Schulz-Hardt, S., Jochims, M., & Frey, D. (2002). “Productive conflict in group decision making: Genuine and contrived dissent.”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88(2), 667–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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