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어버드 Dec 08. 2022

기술은 추가사항일 뿐!

탈조선 이야기 오프 더 레코드 편 

호주로의 탈조선 이야기를 최대한 인간적 실존에 가깝게 적느라 건드리지 못한 부분이 있어 적어보려 한다.

 

바로 ‘전문기술’ 부분이다. 내가 언급했던 탈조선의 세 가지 조건(언어, 영주권, 현지 인맥)에 포함되지 않는 조건이다. 대개 영어권 국가로의 해외 이민을 이야기할 때 유학원이나 박람회 등지에서  성공적인 이민 정착을 위한 Top 3 조건으로 <돈, 기술, 영어>를 꼽는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조건에 따라 이민 준비를 하는 게 다반사다. 심지어 돈, 기술, 영어 세 가지 조건들 중 하나라도 빠지면 해외 이민에 실패한다는 둥 역이민을 오게 된다는 둥 만에 하나 일어날 가상 시나리오를 줄줄 읊어 주는 곳도 있다. 


반대로 어떤 곳은 ‘영어 안되시면 현지 학원에서 배우면 돼요’, 혹은 ‘돈이야 어느 정도 있으시면 가서 쓰면서 벌면 되고요’, 아니면 ‘기술은 꼭 있으셔야 기술이민 됩니다.’처럼 세 가지 조건들 중 모자란 조건은 현지에서 충족하고 꼭 있어야 하는 것(이 마저도 우선순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만을 준비시킨다. 그러다가 올해 이민성 정책이 바뀌어서 기술이민 하향지원을 해야 한다는 등 아예 다른 전문기술로 바꿔서 이민을 지원해야 한다는 등 이야기가 달라지고 탈조선을 해서 해외 살이 로망을 실현시키는 꿈이 이렇게 좌절되는 건가 하며 우울감에 빠져든다.   


또한 이민을 가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는 대부분은 취준생들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젊은 부부이거나 어린 자녀가 한 둘 있는 가족 단위인 경우가 많고 더군다나 대기업, 중소기업 등을 다니던 화이트 칼라 직군이 많다. 사실 그렇다. 대한민국의 사회적 시계에 맞추어 때가 되면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해 취업을 하고 늦지 않게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양가 부모를 모시고 내 집 마련에 쌍불을 켜고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불혹이 넘어 번아웃이 오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자녀들의 교육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결국 그런 빡빡한 현실로부터 벗어나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또 살고싶은 마음에 해외 살이 관련 정보들을 여기저기 알아보게 된다. 바로 주류적인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그리고는 외친다. ‘아버님, 어머님, 혹은 친구들아, 나 독일로 캐나다로 베트남으로 OO으로 이민 가~!’ 마치 더 좋은 파라다이스를 향해 건설적으로 인생의 수레바퀴를 돌린다는 듯이 외친다. 그리고 이민 초기 정착금을 다 까먹고 삼 년이 채 되기도 전에 자괴감이 들고 '나 지금 뭐하는 거지?' 혹은 '한국에선 전문직으로 잘나갔는데 여기선 아무것도 아니네.'등등 자존감이 무너지는 생각과 우울감이 엄습해온다. 한국으로 돌아가자니 얼굴 팔리고 정착을 해보려니 힘들고 진퇴양난에 빠진다. 


문제는 마인드! 그리고 현지 언어! 다시 말해 언어가 정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엘리트 중심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한국적 사고에 고정된 채 이민 정보를 찾아보고 준비를 한다는 점이다. 


해외살이의 본질은 내려놓음이다. 


왜냐하면 탈조선을 하는 순간 나의 상태는 철저한 마이너리티(Minority), 즉 소수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방인이라고 느끼고 여겨지는 비주류라는 말이다. 특히 인종적 비주류(마이너리티)의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주류로부터의 끊임없는 차별에 현명하게 대항해야 하고 작던 크던 꾸준히 목소리를 내야한다. 그래서 때로는 더 예민하고 더 강하게 모범적 소수(model minority)로 살아가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해야한다.

게다가 맨땅에 헤딩을 헤야하는 상황이기에 블루 칼라 일을 하면서 이민 생활을 시작하는게 부지기수다. 그래서 하심(下心)을 하지 못한 채 엘리트적인 한국식 사고방식으로 해외살이의 첫 발을 내딛게 되면 그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거기다 언어까지 부족하면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 시작하고 점점 우울해진다.

  

나 또한 한때 대한민국 공교육에 몸담았던 영어교사였다. 내가 원하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주류적 인생을 살 수 있었던 위치였지만 전부 내려놓고 호주라는 곳에 왔다. 자유를 찾아서. 나의 내면 아이가 숨을 쉴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영주권을 위해 서호주 사막을 갈 때도 마음을 내려놓고 갔다. 내려놓지 못한 마음으로 사막행을 감행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을 내려놓았기에 블루칼라 일을 자발적으로 나서서 했고 (지금도 하고있고^^) 덕분에 경제적 자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덕에 돈 안되는 나의 천직인 번역일도 여유있게 하고 글쓰는 일도 즐기게 되었다. 돌아보면 나에게 전기시공, 용접, 차량 정비 등의 전문기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유일하게 믿었던 건 ‘언어와 현지사람’이었다. 호주식 영어라는 언어가 해결이 되자 호주 사람들과의 관계가 하나둘 트이기 시작했고 마이너의 자세로 대화를 하다 보니 친밀한 관계가 오래도록 유지되었다. 그리고 그 인맥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런저런 정보들을 얻었고 유용하게 활용을 했을 뿐이다.    

해외 이민 정착 시 '기술'은 추가사항일 뿐이다. 전문적인 기술은 있지만 영어가 안돼서 허우적대는 케이스가 너무나 많고, 심지어 있는 기술마저도 영주권과 무관한 기술이어서 써먹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의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 또한 이민정착지의 해당 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전문기술은 언어가 해결되고 현지인들과의 관계가 소통이 된 후에 필요한 곳에서 직업훈련을 통해 혹은 견습훈련을 통해 차근차근 배워나가면 된다. 나 또한 호주에 처음 왔을 때 학생비자 신분이었고 시드니대학에서 교육학이라는 전문적인 공부를 하면서 가르치는 기술을 실용적으로 배우며 훈련했다.      


결국 탈조선을 하고 해외 이민을 가서 정착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 내려놓기! 언어!이다. 기술은 있으면 더해서 활용해볼 수 있고 없으면 배워서 더하면 되는 추가사항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그 기술이 나의 천직이 될 확률은 로또이고 대개 돈을 버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서호주 난민촌 시절, 많은 중동 난민들, 특히 성인 난민들을 교육할 때 가장 애먹는 부분 역시 마음가짐 교육과 언어교육이었다. 당시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주 언어인 Farsi와 Dari언어 통역사 말에 의하면 중동 난민들의 대부분이 자기들 나라에선 의사였고 치기공이었고 교사였는데 왜 호주말 하나 못한다고 푸대접이냐고 불평한다고 했었다. 결국 호주 이민성에서 비자거절을 당하고 수용소 생활을 3개월 단위로 연장당했다. 자신들이 마이너임을 받아들이고 내려놓지 못한 마음이 문제였고 더 큰 문제는 언어였다. 호주 도착과 동시에 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 원리였고 탈조선을 하고 해외살이를 꿈꾸는 모든 레어버드들에게 적용되는 원칙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이민자의 나라 호주에는 이민성(DIBP: Dept of Immigration and Border Protection)이라는 정부 부서(지금은 Department of Home Affiars로 통함됨.)가 있는데 난민 교육일을 하면서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난민 수용소에선 이민성 직원이 상주하면서 사회화 교육이 마무리된 난민들을 1대 1로 면접을 본다. 면접관은 호주 사회에 흡수 동화가 가능한 존재인지 아닌지, 가능하다면 어떠한 기술과 노동력을 해당 지역/도시에 제공해 줄 수 있는지를 묻고 따진다. 냉정한 것 같지만 최선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민부서는 없지만 통일부 산하의 하나원이라는 정착지원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새터민 교육, 즉 탈북자 교육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오래전 기억이지만 한국에서 학교일을 할 때 외부교육지원청 공문 중에 새터민 청소년 교육 관련 일을 접한 경험이 있다.) 결국에는 흡수통합을 하지 않으면 공공의 선(the common good)을 사회에 환원하기가 어렵다는 논리이다. 아마도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들먹이며 치고받고 싸우다가 힘이 센 놈한테 항복해야 하는 불공정한 사회구조가 악순환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개인은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의 해외이주를 결정할 때 기술이 아니라 내 마음가짐을 내려놓고 언어를 먼저 정복해야 하는 게 순서다. 과연 내가 이민정착지에서 마이너의 자세로 저공비행을 하며 사사롭고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며 살 수 있는지를 (어떠한 이방인 취급을 받더라도!) 그리고 본토박이 원어민만큼 현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지를 (부당한 취급을 당한 경우 우아한 언어로 항의해야 하니까!)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술은 추가사항일 뿐이다. 


이전 05화 현지 인맥은 무조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