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출생률이 OECD가입국의 최저치인 0.8명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나 하나 먹고사는 것도 힘든 현실인데 무슨 결혼이냐!
경기침체에 오르는 이자로 전세 대출도 힘들어 내집마련은 꿈도 못 꾸는데 아이를 어떻게 낳느냐!
설령 낳는다 한들 누가 어떻게 키우며 그 비용은 어떻게 감당하느냐!
하나같이 벼랑 끝 날 선 말들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순위가 세계 10위권이라고 자랑스러워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저출산 관련기사를 읽고 나서 그야말로 암담했다. 복지국가로의 길은 아직인걸까.
우리나라 경제가 커지면서 재외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던 1인이었다. 왜냐하면 언젠부턴가 호주 달러의 가치가 한화보다 낮아지기 시작했고 한국돈 1000원이나 호주돈 1달러나 별 차이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우리 사회의 내부를 들여다보자니 원화강세가 무슨 소용인가 싶다.
정작 우리나라 청년들은 아이를 낳으면 인생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나 역시 십여 년 전 서울에서 월급쟁이 생활을 할 때, 같은 생각을 했었다. 도저히 아이를 낳아 기를 경제적, 체력적, 정신적 자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당시 직업이 교사여서 학교에서 애들과 실랑이를 일삼다보니 아이들한테 질리다 못해 진절머리가 나있던 상태이기도 했다. 그리고 성격상 엄마 자격이 없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에다 혼자 있는 걸 유독 좋아라하고 지나칠 만큼 독립적이며 자유로운 영혼의 DNA를 타고났기 때문에… 무엇보다 가부장 제도의 전형적인 희생양이자 현모양처이신 울 엄마를 보면서 “나는 절대 엄마가 되지 않겠어! 혼자 멋있게 살 거야! 여자의 인생은 너무 기구하고 비루해!”라고 수천수만 번 외치며 학창 시절을 보냈던 게 화근이다. 인정한다. 그런데 그런 나 조차도 호주에 살면서 이런 사회라면 애 낳고 살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었다. 왜냐하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경우의 다양성이 당연스레 인정이 되는 문화복지국가이고 부족하지 않은 육아수당으로 내일의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진정한 경제복지국가이기 때문이다.
호주의 출생률은 2021년 기준 1.7명이다(출처: www.abs.gov.au).
우리나라 출생률의 두 배가 살짝 넘는다. 주변 호주 지인들과 사석에서 이야기를 해보면 이상적인 출생률은 약 2.1명이라고 대부분들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호주 역시 해마다 출생률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긴 하나 그 속도가 급격하지 않고 이민정책의 다각화로 보완하는 중이다.
호주를 두 번이나 오셔서 두 달을 살다가신 울 엄마가 한 얘기가 있다.
“호준 길에 머신 아이덜이 오망오망 이추룩 하영도 돌아다념시니~?” (호주는 길에 무슨 아이들이 올망졸망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는 거니?)
그 말인즉슨 고령화가 된 제주도에서는 동네 길을 걸어보면 할망 하르방들이 눈에 많이 띄는데 호주는 어린애들이 눈에 더 많이 보인다는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 저출산 기사를 읽으면서 호주정부의 육아지원 혜택들과 유교보이 아버지 밑에서 힘들게 나를 키우셨을 울 엄마 얼굴이 떠오름과 동시에 슬픔과 분노 그 어디쯤의 감정이 마음속을 복잡하게 했다.
최근 남동생 내외에게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작년 초부터 첫만남이용권이라는 이름의 1회 200만 원가량의 출산지원금을 준다고 들었다. 그리고 출산의료비 지원금도 조금 인상이 되었으며 영아수당도 인상되어 24개월 미만은 월에 약 30만 원인가를 받는다고 했다. 미취학 아동에 대한 아동수당도 10만 원인가를 주는데 8세까지 1년 늘어났다고 하고 육아휴직도 기존의 3개월 80프로가 12개월 내내 동일하게 수령가능해졌다고 들었다. 특히 남동생 내외가 사는 제주도는 해피아이정책이라고 재작년부터 둘째를 출산한 가정에 5년간 1000만 원을 지원해 준다고 들었다.
호주에서는 출산과 육아와 관련해 개인이 신청할 수 있는 정부 지원금이 크게 총 세 가지 “1.Parenting Payment (육아수당) 2. Parental Leave Pay (산후휴가 수당) 3. FTB (Family Tax Benefit: 가구세제혜택 수당)”로 나뉜다. 2024년 9월 기준 지급 금액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출처: www.serviceaustralia.gov.au) 참고로 호주 정부지원금은 회계년도가 바뀌면 그 해 물가상승률과 인플레이션 등을 감안해 상향조정이 된다.
Parenting Payment (육아수당)의 경우 2주 간격으로 지급이 된다.
-싱글맘/싱글대디의 경우 $978.60(기본수당) + $28.90(보조수당) = $1007.50
-파트너가 있는 경우 $712.30
-파트너가 있으나 사고, 질병, 수감생활 등으로 분리 육아를 하는 경우 $833.20
참고로 여기서 파트너라 함은 호주에서 예를들어 돌싱남, 돌싱녀들이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같이 먹고살고 서로의 아이를 키우며 동거를 하는 관계를 말한다. 비혼, 동거, 결혼, 별거, 이혼, 사별, 사실혼, 동성혼 등 사회적으로 아이를 낳고 가족을 구성하는 선택지가 다양한 사회이기 때문에 가족 관련 정부수당의 분류 또한 구체적이며 세부적인 게 호주 사회이다.
Parental Leave Pay (산후휴가 수당)의 경우 세전금액으로 하루 $183.16로 90일의 급여일수가 지급된다. 여기서 90일은 토요일과 일요일 즉 주말을 뺀 날 수이다. 주급으로 환산하면 세전금액 $915.80를 약 18주가량 받을 수 있다.
FTB(Family Tax Benefit; 가구세제혜택 수당)의 경우 가정의 구조나 상황에 따라 A형과 B형으로 나뉘어 지급 금액이 지불된다. 일반적 A형 기준 12세 미만 아동 1명당 $222.04가 2주 간격으로 지급이 되며 13세부터 19세 미만의 아동의 경우 1명당 $288.82가 2주 간격으로 지급된다. 그리고 회계연도가 바뀔 때마다 1년에 한 번 800불가량의 금액을 환산받으며 자녀 수 및 가구수입원에 따라 환산금액은 달라지기도 한다. 물론 수당 안에는 영아수당(Newborn supplement), 전기세(Energy supplement), 다자녀 임신 수당(Multiple Birth Allowance), 집세보조(Rent assistance), 의료보험(Health care card)의 지원금이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 집세를 낼 경제능력이 없고 집을 구하지 못하면 정부에서 운영하는 Housing Commission 아파트나 타운하우스 혹은 단독주택에 싼 집세를 내고 살 수가 있다. 물론 오래된 집이라 허름하지만 내부를 잘 꾸며서 사는 사람들이 꽤 많다.
호주는 참 살기 좋은 복지국가다. 충분히 아이를 키우며 먹고살 수 있다. 내가 아는 호주 싱글맘은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이혼을 하고 2주에 1000불이 넘는 정부수당을 가지고 꼬마 남자아이를 키우며 TAFE(호주직업훈련원)에서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한다. 그리고 공부가 끝나고 자격증이 나오면 연봉을 받으며 일을 하고 싶단다. 슬프지만 ‘우리나라 같으면 애 딸린 이혼녀 딱지에 정부수당은 커녕 자기 계발은 꿈도 못 꾸고 사회에서 암묵적 매장을 당했을 텐데…’ 그리고 ‘어린아이는 애비없는 자식소리를 들으며 클 텐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호주사회는 열린 사회다.
오래된 영화지만 인상 깊게 봤던 ‘미쿡영화’가 있다. 조지 클루니와 미셀 파이퍼가 나오는 ‘어느 좋은 날(One find day)’. 물론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남녀주인공 둘 다 애가 하나씩 딸린 이혼남 이혼녀이다. 영화는 그들이 겪는 로맨스를 그리며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는 해피엔딩을 보여주는데 호주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당시 어린 나에게는 눈이 번쩍, 그야말로 Eye-opening 한 스토리였다. 그 시절 한국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애 딸린 이혼남녀의 사랑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나에게는 더 그랬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시절 우리 반에 아버지가 안 계신 한 친구가 있었는데 할머니 손에 컸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아이들이 때거리로 ‘애비없는 년이래요~’라면서 따돌렸고 결국 그 친구가 목놓아 우는 걸 목격했다. 결국 나는 담임선생님께 그 친구를 데려다주었고 오랜 시간 교무실에서 상담과 전화가 이어졌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나라 정말 Shit!이구나…라고.
어린 나는 ‘애비, 애미없으면 자식도 아니냐?’라고 되묻고 싸우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미 곪은 상처에 더 생채기를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꼈기에…
지금 생각해 보면 유교적 가족제도로 인한 우리 사회의 인식 부족이 아닐까. 이 부분은 우리 동아시아권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으면 마치 유교법에 어긋난 범죄자이고 칠거지악에 포함된 모든 사유는 이혼제도의 정당화를 막는 데 사용되었으며 삼종지도와 열녀비는 그야말로 유교적 가족제도 유지의 근간이었다. 몇 년 전 사유리가 자발적 비혼모로 한국에서 큰 이슈가 되었던 것도 같은 기저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호주사회에서는 그렇게 큰 이슈가 될 일이 아닌데 말이다.
우리나라는 비혼인 상태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고 소위 입신양명 혹은 출세를 하려다 보니 결혼은 점점 늦어지고, 인구절벽 현상은 어찌 보면 유교사회의 당연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교적 가족제도에 기반한 출산윤리와 육아의 도덕성(이 또한 현실에서는 여성의 독박육아로 이어진다.)을 논하는 것은 고도압축성장으로 서구화된 대한민국 사회에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큰 걸림돌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형태가 참 다양한 호주사회다. 앞서 언급했던 비혼, 동거, 결혼, 별거, 이혼, 사별, 사실혼, 동성혼 등 어떠한 가족형태이든 간에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으며 그럴 수 있도록 사회제도가 뒷받침을 해준다. 인간의 기본 권리이기에… 그래서인지 호주여자들은 자연임신이든 IVF(시험관아기) 임신이든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반감이 없다. 오히려 아이들을 둘셋 낳고 정부수당만으로 살아가며 남은 시간에 운동도 자기 계발도 반려견 키우기도 아무 부담 없이 한다. 전혀 사회적 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기에 당연히 생명을 낳아 키우는 건데 무슨 흉이냐는 거다. 참 본질적이다. 심지어 자신이 애를 낳지 못하면 입양을 해서 키우며 정부수당으로 먹고산다. (미국과 달라 아직까지는 대리모가 호주에서 불법인 관계로 아이를 원한다면 현재로선 입양이 최선책이다.) 그래서 그렇게 주말이면 브런치를 먹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유모차와 반려견과 함께 공원을 걷는지도… 하… 부럽다. 모르겠다. 아니 부러우면 지는 거다.
물론 호주사회 안에서도 출산 및 육아수당 관련 문제가 있다. 중동난민을 받아줬더니 일을 하며 납세의 의무는 지키지 않고 일부다처제 무슬림들이 아이들만 줄줄이 낳아 복지국인 호주 정부지원금으로 생활을 한다는 점이다. 돈 버는 사람 따로 쓰는 사람 따로인 셈이다. 다민족 국가인 호주 사회의 또 다른 문제이다.
여하튼 우리나라가 인구절벽을 바라보고 있다면 호주는 탄탄한 인구견벽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인 정부지원수당이 안정적이며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시민의식 또한 다르다. 물론 출산육아 지원금이 늘어난다고 근본적인 저출산이 해결되지는 않을 거라 본다. 임시방편일 뿐. 왜냐하면 우리 사회 인구절벽 문제의 기저에는 청년 취업, 일자리 문제, 여성들의 경력 단절, 장시간 근로 문화, 출산과 육아 문제, 산후 휴가 문제 등의 뜨거운 감자 같은 핫이슈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유교문화의 뿌리를 거스를 수 없는 대한민국 가임기 여성들은 자발적 결혼과 출산 및 육아, 그리고 시월드라는 레이스를 달려야 하는데 이미 취업전선에서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있다. 그래서일까. 자발적 무월경을 위한 약이자 주사를 마다하지 않고 복용하고 맞는다. 도대체 어디까지를 극단적인 사회라고 정의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수많은 워킹맘들이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무수한 땀과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반드시 인구절벽이 아닌 인구견벽 사회가 되어 워킹맘들이 악전고투를 하지 않아도 되고 가임기 여성들이 걱정없이 아이를 낳아 즐겁게 키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워킹맘들에게 진심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