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어버드 Feb 15. 2023

노동천시국 vs 노동천국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호주 아웃백에 첫 발을 내딛으면서부터일까? 아니면 호주 영주권을 받고 나서부터일까?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다. 중요한 건 호주에 살면서 내 마음이 움직였고 달라졌다. 


“노동을 신성시해야 한다!”


그래서일까? 올초 방문했던 고향 제주도 귤밭에서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심을 다해 땀이 나도록 노동일을 했다. 어렸을 때에는 주말마다 부모님을 따라 귤밭에 일하러 가는 게 그렇게나 싫었다. 흙먼지에 땀냄새에 지저분하고 힘든 노동이 싫었다. 돈도 안되고 고생만 되는 정말 하기 싫은 노동일이었다. 무엇보다 월요일 아침 학교에 가면 친구들은 주말 내내 노동이 아닌 놀이를 다녀온 이야기를 했고 나는 듣기가 싫었다. 무엇보다 너무 피곤해 책상 위에 코를 박고 쿨쿨 자기 바빴다. 심지어 고1 때 담임선생님은 그렇게 잘 거면 숙박비 내라면서 나를 흔들어 깨우곤 하셨다. 부모님이 미웠다. 그때는 그랬다. 


귤밭에서 일 시킬 거면서 공부는 왜 시키냐고, 대학은 왜 가라 하냐고, 차라리 일자무식이 상팔자이겠다고 반항을 했던 시절이었다.  


고향 제주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호주로의 자발적 이민을 오고 12년이 지난 현재, 내가 생각하는 노동, 노동의 가치, 노동의 이유는 180도 달라졌다. 그리고 부모님이 고마웠다.  


특히 코로나가 터지면서 그 후폭풍으로 학교 청소일이라는 노동을 하게 되면서 호주가 진정 노동천국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맨 처음, 서호주에서 아웃백 트럭기사가 1년에 한국 돈으로 억 소리 넘게 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탄광촌에서 기계설비 화학청소를 하는 호주아줌마가 시간당 100불씩 받는다고 해서 깜놀했다. 


또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뜨고 있는 직업군인) 수중 용접기능사(hyperbaric welding; 대부분 wet-welding, underwater welding이라고 함.)가 호주에선 한 번 물속에 들어갔다오면 시간당 몇천 불씩 번다는 사실에 입이 떡 벌어졌다. 


최근에는 도로포장이나 토목공사를 하는 곳에서 ‘천천히(slow)’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친구들이 시간당 70불씩 받으며 일을 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금발의 늘씬한 여자애들이 왜 작업복을 입고 팻말을 들고 서 있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다들 전문적으로 하는 일(보컬 트레이너, 요가강사, 헬스 트레이너 등)들이 있는 친구들인데 생존을 위한 돈을 벌기위해 팻말을 들고 서 있던 것이었다. 어린나이에 일과 직업에 대한 분리개념이 정확한 친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십오년도 더 걸렸는데...부러웠다. 


이외에 그동안 내가 만나고 아는 호주 사람들을 보면 남편들이 노동직군, 즉 블루칼라 일을 하는 집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씀씀이가 컸다. 무엇보다 의사, 판사, 교사, 회계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 연봉을 부러워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에 놀랐다.  

그래서인지 호주 공립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우리 아빠 트럭운전해요!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한 치의 창피함이나 수치심 따윈 없다. 학교 선생님들도 노동이 호주산업의 근간이라며 오히려 일일선생님으로 학교에 트럭운전수 아버님을 초정한다. 학생들은 별의별 질문을 던지며 친구 아빠와 농담도 하고 전문 트럭기사인 아버님은 학생들에게 트레일러 기어가 열두 갠데 오르막에는 기어변속이 어쩌고저쩌고 허풍반 너스레를 떨며 실질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산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다. 


삼십 년 전 내가 자란 한국에서의 초등학교 시절, 나는 아버지가 교수여서 자랑스럽게 손을 들었던 1인이었다. 창피하다 정말. 그런데 그땐 그랬다. 공무원집 자식들은 달라 보였던 시절. 그렇게 교육받던 시절. 그래서 부모가 시장에서 닭장사를 하고 생선장사를 하면 천한 상놈의 집안 자식이라고, 고기 잡는 집구석 자식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으며 학교를 다녔다. 사회가 그랬다. 망할 놈의 대한민국 사회가 인간을 비참하고 비루하게 만들었다. 삼십 년이 지난 지금, 내 고향 대한민국은 여전하다. 직업에는 귀천이 있고 노동을 천시하는 풍조가… 아직도 힘이 들고 짐이 많은 사회임에 분명하다. 


우리나라 노조는 정부의 탄압을 받은지 오래이고 처우개선은 커녕 노동운동가라고 하면 빨갱이 취급을 하고 노동자들의 인권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라고 하면 혀를 '쯧쯧...'찬다.     

반면 호주는 노동에 대한 뿌리가 우리나라와는 엄연히 다르고 아주 단단하다 못해 질기다. 영국과도 다르다. 호주 연방(Federation of Australia)이 창설된 해가 1901년이다. 20세기 초 당시 호주는 영국인들이 꿈꾸는 민주주의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한 곳이었다. 물론 이와 관련해 학계에서는 선천적 인종 우월주의니 White Supremacy(백인 우월주의)니 논쟁이 많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당시 호주 정치인들은 노동자의 권리가 철저하게 보장되는 진보적인 나라를 만들자는데 목표를 같이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호주로 넘어온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조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노동인력들이 착취를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심지어 아동인력까지 인권이 유린되는 사태를 눈물겹게 겪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찾은 새로운 기회의 땅 호주에서는 평등이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천국을 만드리라! 꿈을 꾸었고 유토피아적 민주주의라는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연방을 창설했던 것이다. 


또한 1850년대 골드러시 붐을 타고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호주에 들어오면서 아웃백이라고 불리는 호주 내륙지방을 개척하기 위한 많은 노무자들이 필요했던 현실이 한몫했다고도 본다.  


연방 창설 연도 기준으로 본다면 약 120년 넘게 호주는 노동을 신성시해오고 있으며 실질적인 노동법과 사회체계를 노동자 중심(working class based)으로 꾸려나가고 있다. 모든 직군에 노동 윤리강령 (code of ethics) 교육을 필수로 가르치고 주기적 훈련이 이루어진다. 백인중심이고 아니고를 떠나 그렇게 꾸려지고 건설된 노동자의 권리가 지금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민자들에게도 평등하게 해당된다. 물론 악용하는 이민자들도 있지만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노동자의 정의가 구현되고 노동자의 권리가 보호되며 노동의 대가가 후한 사회에서는 일할 맛이 난다.  


호주용역업체에서 청소일을 해보니 더욱 그렇다. 왜 그렇게 석 달이 넘도록 온갖 서류심사(의료보험연계)를 하고 초시계까지 들고 체력심사 및 청력, 시력, 체격검사를 했으며, 왜 그렇게 많은 노동법 전문 변호사들이 즐비하며, 왜 그토록 회사채 노조가입을 요구하며, 또 왜 그렇게 상해 보험금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지,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이 호주 사람들에게는 왜 흉이 아닌 당연한 권리인지를 이제는 알겠다.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휴머니즘마저 느껴진다.  


처음엔 쓸고 닦는 청소일 따위에 무슨 자격증이냐며 말도 안되고 호주와서 공부 할만큼 해서 지겹다고 매니저한테 뭐라했었다. 매니저도 내가 overqualified(자격초과)인거 안다며 그런데 필수라서 꼭 해야한다고 자기도 했다며 법이니까 따라야 한다고 그랬다. (참고로 내가 일하는 용역업체 매니저 스티브도 음대나온 고급인력이다. 그런데 코로나로 콘서트며 공연이며 모든 게 무산되면서 대출융자 갚으려고 청소일을 시작했다. 코로나 규제가 풀린 요즘 주말엔 공연, 주중엔 청소 투잡을 뛴다.) 그래서 지금은 2년과정의 청소사 및 위생사 자격증 공부 (Certificate Ⅲ in cleaning operations)를 하는 중이다. 수업료로 주정부에서 4000불을 지원받고 용역업체에서 2000불을 지원 받았다. 그리고 교육이 끝나면 수료증과 함께 훈련 이수 축하금 250불을 받게 되었다. 이 무슨 노동복지국의 수혜인지 돈 받아가며 교육시켜주는 노동천국이 따로없다. 그런데 무슨 화학약품 이름이 이렇게 많은지 스펠링이 헷갈린다. 오 마이 갓! 

       

사실 인간이라면 느끼는 인생의 희로애락은 판사님이나 트럭운전수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게 인지상정이다. 다른 직업으로 사회에서 다른 역할을 하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호주 사회다. 그저 해당 직업이 사회에 공헌하는 헌신도의 범위를 가늠할 뿐이다. 그래서 호주 사람들은 자연스레 서로의 다른 직업을 수평적 관계에서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우리의 수직적 사고방식은 직업의 천함을 논하기 때문 아닐까. 


세상의 모든 노동은 신성한 것이며 그 노동을 제공하는 우리는 '사람'그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답다. 노동의 귀함과 천함은 인간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기준은 아닐런지...조선의 사농공상은 소중한 우리 인간을 제도하기 위한 정치적 윤리로 유교의 허를 보여주는 건 아닐런지...멀리서지만 진심으로 기도한다. 노동천시국이 노동천국이 되는 그날을! 




이전 06화 기술은 추가사항일 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