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는 정말 인종차별이 심한가요?
다들 기억하겠지만 코로나가 터지고 지구별 이곳저곳에서 혐오범죄(hate crime)라는 대대적인 인종폭격 사건이 일어났다. 특히 총기소지가 가능한 미국에서의 사건들은 세계 미디어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 시기 즈음, 오래전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동료쌤에게서 안부전화가 왔다.
“쌤은 호주에서 무슨 차별 안 당했어? 거긴 뼛속부터 백호주의잖아, 괜찮아?”
“네, 그게요… 마트에 생필품 쇼핑을 갔는데 반대편에서 카트기 끌고 오시던 호주 아주머니께서 저를 보시더니 도망가시더라고요... 근데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해해요.”
“어머! 사실이구나, 호주도 인종혐오가 심각하네! 어쩜 좋아!”
말이 잘 안 나왔다. 서호주에서 일을 할 때 겪었던 두세 번의 인종차별 외에는 동부로 오고 나서 그다지 인종차별을 느끼지 못했고 받지도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 직후, 직격탄을 맞았다. 그렇지만 사람인지라 ‘얼마나 무서웠으면…’하고 이해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중동호흡기 증후군 메르스가 퍼졌을 때 중동사람처럼 생긴 인종들만 보면 피해 다녔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렇지만 다른 마음 한편에선 ‘얼마나 무지하면 저런 행동을 하지?’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탈조선 희망국가 순위를 보면 호주는 늘 상위권이다. 그런데 주변 지인들은 꽤나 자주 물어본다.
“호주가 북미나 북유럽보다 인종차별이 심하다는데?”
“살기 좋은 복지국가는 맞는데 백호주의가 강해서 영 못살겠다던데?”
그러면 나는 도로 되묻고 싶어 진다.
“그럼, 한국은요?”
나의 물음은 인종차별의 본질을 파헤치고 싶은 물음이다. 무엇이든 본질을 알고 나면 조금은 유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호주사람 못지않게 우리나라 사람들도 인종차별에 일가견이 있다. 그러고 보면 사실 영국계 호주 백인들은 싱겁기 그지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오히려 그들은 학교며 직장이며 인종쿼터제를 두다 보니 되려 역차별을 당한다고 속상해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종차별은 소수인종들끼리 일어난다. (이게 더 문제다.) 만약 호주의 주류인종인 영국계 앵글로 백인이 인종차별을 해왔다면 분명 교육 수준이 떨어지고 무식한 red neck일 확률이 아주 높다. 내가 당한 서호주에서의 인종차별이 바로 상대의 무지함에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물론 눈에 잘 안 보이는 비가시적 차별 (invisible discrimination/polite discrimination)들도 있다. 하지만 법적인 부당함이 있어 justice를 따져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면 개인적으로 ‘인종적 갑질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를 상대하지 못하는 속 좁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꼭 기억한다. 그리고 되려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안 그래도 고통스러운 인생인데 다른 인종을 눈에 안 보이게 두뇌적으로 차별하면서까지 살아야 하나… 자기들이 주류라고 텃세 엄청 부리네…’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마음이 편하다. 인종적으로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서 호주 사회에서 오랜 기간 모범적 소수인종(model minority)으로 살아가는 나만의 생존방식이자 마음가짐이다.
인종이 달라서 혹은 생김새가 달라서 차별을 하는 기저에는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은 무지 혹은 무식(ignorance)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교육과 경험이 필요하고 배움이 필요하다.
단군이래 한민족으로 살아온 단일민족국가 한국인들에게 인종은 우리 민족과 다른 민족을 나누는 구분점이다. 특히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한국인들은 우리와 다르게 생긴 인종을 멀리하고 우리끼리 뭉치려고 한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눈이 파랗고 머리가 노란 외국인을 보면 울렁증 비슷한 게 도진다. 심지어 흑인을 만날 때면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거나 신기한 눈으로 힐끔힐끔 훔쳐본다. 다문화 가정이 늘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지지만 다른 문화인종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히 차별적인 게 현실이다. 대체로 교육 수준이 낮고 다양한 인종에 대한 노출빈도가 적고 나이가 많은 세대일수록 차별이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반면 호주인들에게 인종은 다민족 이민 국가의 상징으로 이민 문호를 열고 백호주의라는 신념을 강화시킨 주범이다. 왜냐하면 영국계 앵글로 백인이라는 단일민족을 기반으로 한 유토피아적 민주주의를 꿈꿨지만 2차 대전 참전과 일본의 북호주 다윈 폭격으로 철저한 하향식(top-down) 이민 정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주도한 일방적 인종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100년도 더 전에 남북전쟁을 통해 시민들이 저항을 하고 투쟁을 해서 얻어낸 미국의 상향식(bottom-up) 다문화주의와는 그 뿌리가 다르다.
70년대 백호주의 정책(White Australian Policy)이라고 하는 이민제한법(The Immigration Restriction Act)을 철폐한 게 바로 호주 정부 주도의 하향식 다문화 정책이었고 이는 이민의 문을 열어주었지만(그래서 나와 같은 소수 이민인종에게는 좋은 정책이다.), 보수파 기득권층 백인들에게 백호주의라는 믿음을 더 강화시키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그래서 호주인들에게 다문화, 다민족, 다인종은 자신들의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는 개념이자 동시에 호주사회 주류 인종인 영국계 백인 호주인들의 백호주의라는 믿음을 강화시키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 때문일까. 영국계 백인 호주인들은 다양한 이민인종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 관용이 높음과 동시에 그들의 문화인종적 특성에 대한 고정관념 역시 높다. 무엇보다 경험으로 체득한 그들의 문화인종적 고정관념은 살벌하다.
예를 들어 1999년 코소보 사태로 인도적 차원의 알바니아계 난민을 이민자로 받아들였는데 가정에서 사회에서 때려 부수고 싸우는 일이 잦아 ‘구소련 유고슬라비아 이민자들은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다’라는 문화인종적 고정관념이 자리 잡혔다. 그리고 1850년 골드러시 때부터 넘어온 중국인들은 음식부터 행색이 너무 지저분해 ‘중국 이민자들은 비위생적이다.’라는 고정관념이 생겼고 이번 코로나 사태로 더 심해졌다. 2차 대전 종전 후인 1950년대 그리스 이민자들이 대거 호주에 이민을 오면서 피쉬앤칩스를 팔고 커피와 디저트가 중심인 카페요식업을 점령해 ‘그리스 이민자들은 음식에 후하고 키가 작고 뚱뚱하다’라는 고정관념을 낳기도 했다.
이 외에도 호주 사회에는 다양한 ‘문화인종 썰’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호주 앵글로 백인들의 경험과 시선으로 일반화한 고정관념이고 이는 곧 차별을 낳을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고 경험이다. 생김새가 다를 뿐 똑같이 붉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대하면 결국 ‘다 사람 나름이네’라는 보편적인 사고가 자리 잡히게 마련이다.
해외에 적을 두고 계신 한국인들 중 내가 남보다 유달리 인종차별에 민감하다고 느낀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과연 나는 인류 보편적인 생각으로 상대를 대하고 있는가?’ 호주에 처음 왔을 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색안경을 쓰고 생긴 게 달라서 ‘저 사람은 나를 이렇게 대하네’라고 지레짐작을 하고 괜히 열받고 스스로 위축되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이 늘고 배움이 넓어지면서 지금은 지레짐작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간적으로 대할 뿐이다. 물론 부당한 차별이나 대우를 당하면 반드시 우아한 언어로 힘 있게 대항하는 뱃심도 늘었다.
무엇보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이해한다. 앵글로 호주인들이 선천적 인종 우월주의를 들먹이며 백호주의적인 이야기를 할 때면 ‘나라도 우리나라에 동남아나 중국사람들이 이민 와서 직장이고 집이고 점령하고 살면서 이건 이래서 차별이네 아니네 따지면 호주 사람처럼 충분히 그러겠다’라는 생각으로 이해한다.
그렇지만 호주 사회의 주류인종이 아닌 소수인종 이민자에게서 차별을 받을 경우는 다르다. 완벽하고 중립적인 영어로 정신 똑바로 차리고 무조건 따진다. 왜냐하면 그들이 나를 차별하는 기저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정책으로 강화된 앵글로 호주인들의 백호주의 신념이 깔린 텃세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들의 이득을 위한 문화인종적 판단과 평가가 깔린 인종비하적 공격이다. 똑같이 이민 와서 사는 비주류 신세에 불한당도 아니고 주류인척 타인종을 괴롭히는 건 인간성과 도덕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
역시 문화인종에 관한 차별과 논란은 한국에서나 호주에서나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호주가 더 차별이 심하다’ 혹은 ‘한국이 더 심하다’라는 일차원적인 생각은 지양해야 한다. 문화적 차이가 있을 뿐 같은 사람이고 인간이기에 힘든 인생을 살아가며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은 같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숙제처럼 느껴지는 단일민족 대 다민족의 갈등은 우리가 인간 대 인간으로 같이 웃고 울고 슬퍼하고 늙어간다면 조금은 나이지지 않을까… 많은 생각이 스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