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1인가구는 어떤가요?
지난 이십 년 동안 대한민국의 1인가구 비율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15% 내외이던 비율이 30%가 넘어 조만간 인구의 절반이 1인가구라고 하는 북유럽의 비율과 비슷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 덕에 청년 1인가구들은 ‘저출산 주범’이라는 사회적 질타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1인가구 증가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늘어나는 가족구성으로 전 세계 선진국들의 공통현상이기도 하다. 단지 우리나라는 그 비율이 급증을 하는 통에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듯 보인다.
사실 1인가구라 함은 결혼을 하지 않은 청년층뿐만 아니라 이혼, 사별, 별거 등의 이유로 아이가 있건 없건 혼자 사는 모든 가구를 일컫는다. 그런데 유독 우리 사회는 ‘혼자’라는 타이틀에 연연한다. 짜장면 배달을 하나만 시키기 뭐해서 두 사람 분을 시킨다던가, 혼자 밥 먹기 뭐해서 괜히 연락처 리스트에 밥 먹을 사람 찾아 불러낸다던가, 성인기준 2인 이상 주문가능한 메뉴라 애 하나 데리고 밥 먹으러 갔다가 주눅이 들어온다던가, 혼자 사는 여자들은 일부러 치안용 남자신발을 현관에 놓아둔다던가 등등 비일비재하다. 그나마 대도시에는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설치된 음식점이라도 있어 애용하지만 중소도시를 넘어 지방으로 가면 1인가구의 눈치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더딘 정책지원은 긍정적인 태도와 마음가짐마저 우울하게 만든다.
최근 LG유플러스, KB증권, SK증권 등 사내 근로복지로 결혼 축의금 및 신혼여행 유급휴가에 상응하는 비혼 축하금과 비혼선언 유급휴가를 지급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런데 긍정적인 반응보다는 ‘비혼장려책이나 다름없네’, ‘저출산을 야기하는 사내복지를 굳이 지급해야 하나?’ 등 부정적인 반응이 앞섰다.
또한 경제적 극빈층으로 분류되는 독거노인에 대한 1인가구 기사들도 매 한 가지다. 얼마나 힘든지 ‘고독사(孤獨死)’라는 명칭까지 생겨났다. 홀로 왔다 홀로 가는 인생 누구나 혼자 죽게 마련이건만, 혼자 살다 아무도 모르게 죽으면 ‘고독사’했다며 혀를 쯧쯧찬다. 사회 연결망의 부재로 1인가구가 죽고 나면 즉시 경찰에 신고가 되지 않는 시스템을 개선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고독사했다며 안타깝다고만 이야기한다. 꼰대들은 그래서 혼자 살면 안 된다고 덧붙인다.
1인가구로 버티고 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혼자 살다 죽으면 고독사라는 책이 잡히니 답답한 노릇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1인가구로 살고 죽는 게 왜 이렇게 쉽지 않은 걸까?
집단주의에 기반한 우리 사회는 핵가족화된 지 오래지만 모든 일을 대가족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크다. 국가 복지 정책도 4인가족이 기준이 된다. 게다가 뿌리 깊은 유교문화로 시집, 장가를 안 가면 불효자로 낙인이 찍힌다. 이혼이라도 하거나 별거, 휴혼, 졸혼이라도 하면 도덕적, 윤리적 전과범이 되는 게 통상의례다. 충효사상으로 중무장한 우리는 노인들이 혼자가 되어 살아가고 죽는 것에 죄책감마저 느낀다.
그래서일까?
가족을 구성하는 선택지가 늘어났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1인가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싱글로 영원히 혼자 살다 죽든, 커플로 둘이 살든, 애를 낳고 3인, 4인으로 살든, 아니면 살다가 헤어지고 다시 돌아온 싱글이 되든, 혹은 애 딸린 싱글이 되든, 더 나아가 싱글맘 싱글대디가 커플이 되어 새로운 가족을 구성해 살아가든 어디까지나 선택의 자유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현대적 가족(Modern Family)을 구성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냉소적이고 평가적이다. 게다가 올해 ‘기준 중위소득’이 인상되었다고는 하지만 1인가구에 대한 실질적 경제지원이 미약한 게 현 실정이다.
호주의 경우, 4 가구 당 1 가구, 즉 호주 국민의 25%가 1인 가구(single-person household)이다. 우리나라처럼 급격한 오름이 아니라 2차 대전 종전 후 이민자들이 늘면서 서서히 증가했다. 호주 사회의 1인가구 특징은 나이가 들면서 혼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많다. 그리고 1인 여성가구의 경우 고소득 고학력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1인 남성가구의 경우 반대로 저소득 저학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처: www.aifs.gov.au )
통역일로 핀란드를 거쳐 스웨덴과 덴마크를 가보았지만 혼밥, 혼술, 혼행을 하는 북유럽 혼족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내가 사는 호주 역시 혼족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커피, 식사, 브런치, 펍 맥주 등 혼자서 먹고 마시고 참 잘 논다. 특히 스포츠 강국답게 조깅, 수영, 서핑, 사이클, 스케이트보드 등 유독 혼자 운동을 즐긴다.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홀로 운동을 즐겨서 그런지 마음속 여유가 드넓은 아웃백을 닮았다. 그래서인지 눈을 마주치면 생판 모르는 얼굴인데도 생긋 웃으며 ‘좋은 날이에요! (G’day, mate!)’를 외친다. ‘나 홀로 운동족’ 호주 1인가구의 현실은 전혀 팍팍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있다.
건강한 복지국인 호주는 1인가구로 살게 되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정부에 신청할 수 있는 지원금들이 있는데 크게 7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출처: www.serviceaustralia.gov.au ) 전부 2024년 기준 2주마다 지급되는 금액이다.
Age pension (노령연금) – 싱글: $1144.40, 커플: $862.60
Austudy (학생수당) - 무자녀 싱글/커플: $639.00, 유자녀 싱글: $806.00, 유자녀 커플: $691.80
Carer payment (요양보호수당) - 싱글: $1144.40, 커플: $862.60
Carer allowance (요양보호추가수당) - $153.50
Disability support pension (장애수당) – 싱글: $1144.40, 커플: $862.60
Jobseeker payment (구직자수당) – 무자녀 싱글: $778.00, 유자녀 싱글: $833.20
Parenting payment (육아수당) – 싱글: $1007.50, 커플: $712.30, 배우자의 질병 및 수감생활로 커플상태이나 홀로 육아 시: $833.20
Special benefits (특수수당: 파산, 전쟁 등) – 구직수당과 동일금액. 현재 호주 거주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지불되는 수당.
물론 각 수당의 종류마다 세부적으로 개인의 상황에 따라 비율지급을 한다. 예를 들어 적금을 들어둔 게 있어 통장잔고가 많거나 비싼 자동차가 있다거나 그러면 최대 금액에서 조금 낮은 금액을 지급받는다. 이 외에 추가적으로 Farm household allowance (농가수당: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1인 농가 지원금)과 Youth allowance(청년수당: 만 24세 미만 구직, 수습을 하는 1인청년가구를 위한 지원금)이 있다.
그리고 집세가 비싼 호주의 경우 Rent assistance(집세지원 수당)이 따로 있는데 2주 기준 지급액이 싱글은 최대 $211.20, 커플은 최대 $199, 싱글이지만 룸메이트와 같이 살 경우 최대 $140.80, 커플이지만 질병으로 별거를 할 경우 $211.20, 마지막으로 커플이지만 따로 사는 경우 $199를 지원해 준다.
호주사회에서는 1인 가구라고 해서 당장 돈을 벌려고 아득바득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정부지원 수당 외에도 호주사회는 수많은 비영리단체(non-profit organization)들이 있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면 장학금, 교통지원금, 주거지원, 생활비지원 쿠폰, 안내견 지원, 의료 및 홈케어 서비스 등등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호주 울릉공 지역에 Housing Trust(일종의 주택투자공사)라는 비영리 단체 내에서 조그맣게 운영이 되는 타일라웨스트 교육장학금을 신청해 2000불씩 두 해에 걸쳐 4000불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재단에서 개최한 장학금 수여식에 참여하고 지방신문사 인터뷰에도 응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원받은 장학금 사용 내역을 담당자분께 세금신고서와 함께 보고를 해야 했다. 당연하고 공정한 절차다.
덕분에 코로나 기간 동안 멜버른에 있는 RMIT에서 온라인으로 통번역 수업을 공짜로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생활비는 구직수당으로 해결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잘 먹고 잘 놀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돈 걱정이 없어지고 일을 안해도 되니 오롯이 통번역 공부에만 집중할 수가 있었다. 서울살이를 할 때에는 일하면서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느라 그야말로 충혈된 눈에 코피를 흘렸었는데 호주에서는 공부하고 시간이 남아 운동에 주말 브런치에 산책에 그야말로 인간답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해 준 호주사회가 눈물 나게 고마웠다.
내가 겪고 피부로 느끼는 호주사회는 1인가구 지원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 접근이 용이하고 수월하다. 그래서 ‘사람대접도 못 받네’라고 인격적 모독을 느끼는 경우가 거의 없고 ‘혼자지만 할 수 있겠어!’라는 희망적 낙관이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일의 희망을 생각하고 오늘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회이다.
나이 든 부모를 돌봐야 하는 1인가구는 요양보호수당을 신청하면 2주마다 1000불이 넘는 복지지원금을 받으며 일, 공부, 자기 계발을 하면 된다. 사별을 하고 혼자 독거노인이 된 1인가구는 죽을 때까지 보름에 1000불 이상 정부에서 노령연금을 주기 때문에 고독사라는 부정적인 말을 쓰지 않는다. 아니 쓸 필요가 없다. 되려 당당하게 독립적으로 노년을 보내다가 죽는다는 느낌이 강해 '독립사(獨立死)'를 하는 느낌이다. 부모 개개인은 정부에서 노령연금을 2주마다 받아서 좋고 그 부모를 돌보는 자식은 요양보호수당을 받아서 기본생활이 유지되니 좋고 돈 때문에 싸우고 서러울 일이 없는 호주사회다. 그래서 그렇게 부모 자식 간에 인격적으로 대하는지도 모르겠다. 재산 없는 부모는 고려장 시키고 재산 있는 부모에게는 알랑방귀를 뀔 필요가 없는 좋은 사회다.
우리나라도 좋은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인생, 혼자서 열심히 살다가 고독사가 아닌 당당하게 독립사를 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멀리서지만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