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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어버드 Apr 25. 2023

저금통 이적 vs 울화통 의적

호주의 연금제도는?

30년 후면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고갈된다고 한다. 고갈시점인 2055년도부터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사람은 월소득의 25프로 이상을 연금보험료로 소모해야 한다는 전망도 이어졌다. 무엇보다 노인빈곤율에 이어 노인자살률까지 OECD가입국 중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오명이다. 멀리 사는 재외국민신분으로 이런 뉴스를 볼 때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마음이 아리고 쓰리다. 그저 치솟는 넷플릭스 K드라마의 인기가 무슨 소용인가 싶다. 


저출산 고령화, 경제성장률 둔화, 임금상승률 저하… 성장만 앞세우고 달려온 대한민국의 지병이다.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 지병을 얻었다. 치료가 시급하다. 합당하고 균형있는 분배라는 약을 처방해야 하는 시점에 복지난국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다. 


올 초 한국에 갔을 때다. 월불입액 상향조정 관계로 국민연금공단을 방문했는데 공단직원분께서 그러셨다. 연금수급 나이가 되었을 때 (그러지야 않겠지만) 환급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 최대 불입금으로 상향조정하는 건 무리수를 두는 것과 같다고…11호봉 첫 교사월급을 받았을 때부터 국가가 운영하기에 여지껏 믿고 들었던 국민연금인데…오 마이 갓! 체증이 올라왔다. 


그 자리에서 내가 사는 호주의 국민연금이 생각났다. 우리로 치면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호주의 기초노령연금인 Age Pension은 연금 가입자의 월불입금 기여로 받는 수당이 아니다. 개인이 기여하는 금액은 1도 없고 마치 공공부조처럼 호주정부가 노령연금 수급나이가 되면 그동안의 개인소득 및 자산조사(income/asset test)를 한 뒤 보름에 800불에서 1100불 사이의 금액을 준다. 연금수령이 가능한 67세 이상의 호주국민이라면 모두가 공평하게 해당된다. (참고로 호주 노령연금 나이는 2025년까지 최대 70세로 상향조정될 예정이다. 호주 또한 노령화에 꾸준히 대응하는 중이다.)  


사실 한 국가의 기초노령연금은 어찌보면 당연한 복지다. 노쇠해 가는 인간에게 지극히 필요한 권리이자 최소한의 존엄을 보장해 주는 수단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연금공단은 기금고갈과 연금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한평생 열심히 일해 돼지 저금통에 동전 모으듯 국민연금을 부었는데 ‘연금기금이 고갈돼서 연금수령 혜택이 줄거나 없어질지도 모른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기이한 돼지 저금통 이적(異跡)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올초 연금공단을 방문할 당시, 나는 그저 많이 내야 많이 돌려받을 수 있기에 연금 불입액 상향조정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조차도 호주의 연금복지를 생각해 보면 울화통이 터질 노릇이다. 호주는 일반조세율에서 재원을 조달해 연금을 주는데 (내가 1센트도 불입하지 않았는데 준다.), 우리나라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기여금으로 충당된 재원에서 연금을 준다. (내 월급에서 떼갔다고!) 그래서 많이 버는 사람이 연금보험도 많이 내고 연금수령도 많이 하게 된다. 적게 버는 사람은 적게 내고 적게 받는다. 나이 들어서까지 소득불평등의 연속이다. 실질적인 소득 재분배가 일어나지 않는다. 잘 벌고 잘 사는 사람은 계속 잘 살게 되고 못 벌고 못 사는 사람은 계속 못살게 되는 구조다. 


흙수저 출신에 능력이 안돼서 운이 안돼서 하는 사업마다 망하고 들어가는 직장마다 권고사직을 당하고 사람복도 없어서 이혼도 돈도 수차례 사기당하고… 과연 이런사람은 늙고 병들고 근로능력을 상실했을 때 그저 게으른 놈팽이니까 열등한 존재니까 벌 받듯이 살아야 하는 걸까?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우리 인생인데 살다 보면 내가 원치 않는 힘든 일을 수차례 겪게 마련이고, 전생에 지은 죄가 많은 건지 타고난 팔자인지 인생의 수레바퀴가 자꾸만 구렁텅이로 빠질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1800년대 영국도 아니고 2023년 현재 이 시점에도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며 돈을 적게 버는 사람은 ‘노력을 많이 하지 않아서 그래’ 혹은 ‘게을러서 그래’라고 사회적 낙인을 찍는다. 기초연금 시위를 하는 노인들을 보며 ‘젊었을 때 노후준비도 안 하고 놀고먹어서 그래’라며 혀를 쯧쯧찬다.    


사회구조적 빈곤층은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들을 탓하기 이전에 그들의 빈곤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우선 아닐까? 임꺽정, 아니 장길산, 아니 홍길동이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내가 느끼는 호주사회의 연금복지는 로빈후드다. 박복한 팔자로 한평생 아무리 노력을 해도 못 사는 데다가 나이가 들어 일도 못하는데 로빈후드 같은 노령연금이 짜잔! 하고 나타난다면? 부자들에게서 걷은 세금으로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taking from the rich to give to the poor) 의로운 도적이 따로 없다. 몇십 년 묵은 체증과 울화통이 쑥 하고 내려간다. 그야말로 호주의 기초노령연금은 울화통을 해결해 주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국판 홍길동 격인 로빈후드 의적(義賊)이다. 사회구조적 빈곤층 타파라는 표적효율성(target-efficiency)이 참 좋은 복지정책이다. 오래전 그들의 선조들이 호주대륙을 발견하고 민주주의 유토피아를 꿈꾸고 실현하듯 호주의 연금복지도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하나의 방책으로 소득 재분배가 꽤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복지라는 큰 틀에서 바라본다면 공공부조적인 성격이 강한 호주의 기초노령연금(Age Pension)은 보편적 복지라기보단 소득과 자산을 철저하게 사전에 조사하고 혜택을 주는 선별적 복지에 가까운 거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그리고 저소득층에게는 로빈후드 같은 정책이나 고소득층에게는 근로의욕 저하를 불러일으켜 복지병을 키우는 것 아니냐고 반증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호주사회는 이를 완화하고 견제하는 퇴직연금의 개념인 Superannuation(줄여서 Supa, 수퍼)이 있다. 수퍼는 개인소득의 일부를 퇴직자금 명목으로 떼어내 은행이나 투자보험회사와 같은 곳에 계좌를 만들어 저축하는 돈이다. 물론 투자대비 이율이 붙어 불어나는 금액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세전금액으로 월 450불 이상의 수입이 있는 경우, 고용인이 100프로 수퍼를 부담한다는 것이다. (단, 자영업자는 100프로 자가부담을 해야 한다.) 비율은 현재 10.5프로이다.(9.5프로에서 상향된 비율로 2026년에는 12프로로 인상될 예정이다.) 


예를 들어 단순하게 계산해 보면 한 달에 5000불을 벌면 10.5프로인 525불이 고용주에 의해 내 수퍼계좌에 불입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호주인들은 근로의욕 저하가 아니라 반대로 열심히 일을 한다. 일을 많이 해 월소득이 올라가면 더 높은 월불입액을 고용주가 수퍼계좌에 입금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하면 Salary Sacrifice라고 해서 소득/월급의 일정 부분을 희생해 수퍼계좌에 추가로 불입할 수도 있다. 예로 월 소득 5000불일 경우 고용주 분담금 525불에다 추가로 내가 500불을 수퍼 퇴직연금계좌에 불입하겠다고 Salary Sacrifice를 신청하면 5000불 월급에서 500불을 차감한 4500불이 순 소득이 되어 통장에 찍힌다. 한때 많이들 했었는데 코로나 여파로 요즘 호주에서는 오르는 이자에 모기지 갚기도 힘들어 Salary Sacrifice를 잘하지 않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0프로가 넘는다. 호주의 실질적 노인빈곤율은 약 9프로이다. OECD통계수치인 23프로는 타당도가 떨어진다. 왜냐하면 OECD가 계산한 노인빈곤율에는 호주노인들의 높은 주택소유율이 반영되지 않았고 수퍼라고 불리는 퇴직연금도 일시불로 인출하는 게 다반사라 같이 포함되어 계산되지 못했다. 이삼십 년 정도 꾸준히 장기근속을 하고 퇴직을 한 호주노인은 대개 40, 50만 불 정도의 수퍼가 저축되어 있다. (물론 이삼십 년 정도의 장기근속은 모기지(주택융자)를 충분히 갚을 수 있는 기간이라 퇴직즈음이면 자가 한 채를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은 수퍼계좌의 돈을 통째로 다 인출하고 크루즈, 카지노, 홀리데이 등등 여유롭게 실버생활 비용으로 쓴다. (어차피 국가에서 기초노령연금을 노부부 기준 최소 3000불 이상을 매달 주기 때문에 전혀 지장이 없다.) 여유금은 이자가 많이 붙는 계좌에 넣어두기도 한다. 우리처럼 자식들한테 용돈이란 걸 타 쓸 필요가 없는 구조다. 되려 쓰다가 남는 금액은 자식들에게 현찰로 물려준다. 그리고 자식들 역시 부모가 준 덩어리 현찰돈을 대부분 모기지(주택융자) 원금을 갚는 데 사용한다. 순환적이다. 


젊었을 때 적게 일을 하고 적게번 노인은 그만큼 적은 수퍼 퇴직연금으로 호주 기초노령연금(최대금액수령)에 의존해 기본생활을 유지해 나가고, 젊었을 때 일을 많이 하고 많이 번 노인은 그만큼 많은 수퍼 퇴직연금에다 호주 기초노령연금(최소금액수령)까지 받아 빛나는 실버생활을 누릴 수 있다. 


어찌보면 호주의 연금복지제도는 하이브리드 같다. 사회보험제도(social insurance system)보다는 덜 관용적이고 사회부조(social assistance system)라고 하는 공공부조제도보다는 더 관대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인지 소득불평등을 완화하는데는 참 효율적이란 생각도 든다. 


경험상 옆동네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으리으리한 집에 살고 비싼 차 몰고 다니고 그러지 않아(조세제도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사회구조) 길에서 보더라도 그냥 너나 나나 동네사람이고 이웃주민이다. 똑같이 나이키 운동화 신고 조깅하는 인간사람 말이다. 호주 고위층 인사라고 해서 목에 힘을 준다거나 전혀 그렇지 않고 되려 사람 사는 냄새 물씬 나는 뭐 그런 느낌이 강한 호주사회다. 뉴스에서도 호주 수상이 아침조깅하다가 운동복 차림에 인터뷰하고 사이클링을 하다가 손 흔들며 인사하고 필터링 없이 그냥 방송에 다 나온다. 인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국민들은 자신들의 기준에 못마땅한지 ‘국회의원들 연봉 깎아야 된다’, ‘수상 연봉도 너무 많다’ 등등 비난을 한다. 아마 선조 때부터 대대손손 불공정 투쟁을 해온 저력인 듯싶다. 그런 호주인들 덕에 지금의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가 되었고 앞으로도 더 공정한 사회가 되어가는 것 아닐까?   


호주는 우리나라처럼 사회보장세가 없는 나라다. 그래서 모든 복지수당 및 혜택은 일반조세로 걷은 기금으로 충당한다. 개인도 정부도 호주의 회계연도 시작일인 매해 7월 1일이 되면 조세율을 계산하고 조정을 하는 게 관례이다. 그래서 호주의 재무장관격인 Treasurer(회계담당)는 해마다 언론과 미디어에서 재무/재정보고를 하는데 사람 사는 곳이라면 늘 그렇듯 국민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일수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우리나라보다 호주의 조세제도는 상당히 진보적이라는 점이다. 부자들에게서 많은 세금을 걷어서 진보적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저소득층에게 낮은 세율을 적용해 상당히 낮은 세금을 걷기 때문에 진보적이다. 심지어 정의롭다. 진심으로 로빈후드 같은 마음에서 조세제도를 만든 건 아닐까? 안 그래도 불공정거래가 판쳐 울화통 터지는 인생, 국가에서 로빈후드가 되어주면 얼마나 안심이 될까? 


우리나라의 연금개혁이 정당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가 나이들었을 때 대한민국의 노인들이 보장된 노후소득으로 존엄성을 잃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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