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 B등급이지만 난 응원해!
해당 게시글은 2026년 2월 HR Insight에 기고된 글입니다.
리더의 격려가 구성원의 실망으로 이어지는 이유 : 샌드위치 화법의 함정
"김 대리, 올 한 해 정말 고생 많았어. 내가 김 대리 노력한 거 누구보다 잘 알지!."
조직에서 성과 평가면담이 이루어지는 날이면, 어느 회의실에서나 이런 따뜻한 대화로 면담이 시작된다. 리더와 구성원이 마주 앉아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놓는 시간이다.
"이번 평가 등급은 아쉽지만 'B'를 받아야 할 것 같아. 상대평가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고...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그래도 올해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많이 성장했잖아? 나는 이 경험이 김 대리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자, 올해 결과는 이미 정해진 거니 훌훌 털고, 내년에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지 함께 이야기해 보자. 김 대리라면 내년엔 분명 더 잘할 수 있어!"
겉보기엔 격려와 피드백이 오가는 훈훈한 모습처럼 보인다. 팀장은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 면담을 잘 마쳤다고 안도한다. 칭찬으로 시작해 격려로 끝내는 이른바 ‘샌드위치 화법’도 충실히 구사했다. 낮은 등급을 통보해야 하는 심리적 압박 속에서도 구성원의 사기를 꺾지 않으려 ‘성장’이라는 선의의 포장지까지 씌웠으니, 리더로서 할 도리는 다했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의실 문을 닫고 나가는 구성원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 있다. 그의 머릿속은 팀장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생각들로 요동친다.
"기준이 대체 뭐야? 내가 고생한 건 하나도 반영이 안 된 거잖아. 결국 자기랑 친한 사람 챙겨준 거 아니야? 그래 놓고 뻔뻔하게 성장이 자산이라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굴려 먹겠다는 소리네. 역시 팀장은 믿을 사람이 아니야.“
리더는 ‘성장을 위한 피드백’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구성원은 이를 ‘불공정한 통보를 전달하기 위한 가스라이팅’이라고 받아들인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언어로 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세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왜 평가 시즌만 되면 리더와 구성원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갈등하게 되는 것일까? 리더들이 성과 관리 방법론을 몰라서일까? 아니다. 대부분의 리더는 피드백이 ‘앞으로 더 나은 성과를 만들기 위해 돕는 소통방법’이라는 교과서적인 정의를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문제는 방법을 잘 몰라서가 아니라, ‘평가라는 상황이 인간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했다는 데 있다.
뇌과학으로 설명하는 평가면담의 불편한 진실: 편도체 납치
평가 시즌이 고통스러운 근본적인 이유는 뇌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평가라는 행위 자체가 인간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부정적 자극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먼저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 편향(Self-serving Bias)’을 가진다.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이 인지 편향은 조직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조직진단 과정에서 구성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구성원은 "나는 잘하고 있는데 조직이 문제"라고 말하고, 리더는 "나는 리더십을 잘 발휘하는데 구성원이 따라오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의 뇌가 인지적 부하를 줄이고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다. 누구도 매 순간 자신을 냉혹하게 객관화하며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향을 가진 상태에서 기대보다 낮은 평가(예: B등급)를 마주하면 어떻게 될까? 데이비드 록(David Rock)의 SCARF 모델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 상황에서 지위(Status), 확실성(Certainty), 자율성(Autonomy), 관계성(Relatedness), 공정성(Fairness)의 욕구가 위협받을 때 강한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한다. "상대평가라 어쩔 수 없이 B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 구성원은 자신의 노력이 무시당했고(지위 하락), 평가 기준이 모호하며(확실성 결여), 리더가 나를 공정하게 대하지 않았다(공정성 및 관계성 훼손)고 느낀다. 이때 우리 뇌의 경보 장치인 편도체(Amygdala)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이른바 ‘편도체 납치(Amygdala Hijack)’, 즉 생존 모드가 발동하는 것이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이성적 사고와 논리를 담당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기능은 마비된다. 리더가 아무리 따뜻한 말로 '올해의 성장'을 이야기해도 구성원의 머릿속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 당장 맹수가 덤비는데 내년 농사 계획을 논의할 수 있겠는가? 이미 구성원의 뇌는 ‘도망치거나 싸워야 하는’ 전시 상황이다.
또한 결정적으로 리더와 구성원 사이의 ‘심리적 시차’가 소통의 오해를 더욱 심화시킨다. 리더는 이 면담을 위해 오랜 기간 고민하며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심하고, 나름의 논리를 갖춘 시나리오를 준비해 온 상태다. 즉, 리더에게 이 면담은 이미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마친 ‘결론’의 자리다.
반면 구성원의 시계는 리더와 전혀 다르게 흐른다. 그들은 회의실 문턱을 넘는 그 순간까지도 불안과 긴장의 정점에 서 있다. '어떤 등급을 받을까?',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며 며칠 전부터 전전긍긍하며 마음을 졸인 끝에 간신히 이 자리에 온 것이다. 이토록 예민해진 상태에서 기대 이하의 결과를 마주하는 순간, 구성원의 뇌는 즉각적으로 셧다운(Shutdown)된다. 상처받은 뇌에는 더 이상 미래의 계획이나 성장의 목표를 담아낼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 리더는 "이미 결과가 나왔으니 이제 앞을 보자"고 격려하지만, 구성원에게는 이제 막 충격과 고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이 지점에서 리더가 성급하게 건네는 미래지향적인 조언은 상황을 모면하려는 잔소리나 가스라이팅으로 치부되기 쉽다.
성과는 담백하게, 성장은 따뜻하게: 뇌를 배려한 면담 전략
그렇다면 리더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구성원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그저 듣기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아야 할까? 결코 아니다. 조직의 평가 기준에 따라 정해진 결과는 가감 없이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또한 구성원이 평가 결과에 대해 부당함이나 불공정함을 느낀다면, 그 이유를 면밀히 경청하고 리더가 혹시 놓친 데이터는 없는지 충분히 논의하는 것 역시 평가면담의 본질적인 기능이다.
감정을 배제하고 차가운 숫자로만 대화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리더는 구성원의 뇌가 현재 ‘전시 상황’임을 냉정하게 인지해야 한다. 고생에 대한 격려와 정서적 인정은 충분히 나누되, 굳이 ‘미래 성장을 위한 계획’까지 이 자리에서 끝내려 욕심내지 말라는 것이다. 평가면담의 자리에서는 리더로서 해야 할 일을 담백하게 수행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과거의 결과를 명확히 정리하고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주는 것이 우선이다. 미래에 대한 건설적인 대화는 구성원의 전전두엽이 다시 활성화될 수 있는 상황에서 시작해도 늦지 않다. 효과적인 평가 소통과 진정한 성장의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3가지 구체적인 전략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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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글은 2026년 2월 HR Insight에 기고된 글입니다.
진심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 기다림이라는 가장 강력한 리더십
조직의 성과를 책임지는 리더에게 평가면담은 고독하고도 고단한 과정이다. 냉정한 조직의 논리와 따뜻한 인간적 유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어떻게든 구성원을 실망시키지 않으면서도 성장을 이끌어내려 고군분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리더가 아무리 정교하게 준비한 진심이라 할지라도, 구성원의 ‘편도체’가 빗장을 걸어 잠근 상태에서는 그 어떤 메시지도 ‘전전두엽’에 닿을 수 없다는 점이다.
많은 조직이 구성원의 몰입(Engagement)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보상을 늘리는 ‘더하기’ 전략에 집중한다. 하지만 구성원의 몰입을 효과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실질적인 해법은 무언가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몰입을 가로막는 ‘방해 요소’를 걷어내는 ‘빼기’에 있다. 원만한 결혼 생활의 비결이 배우자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보다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에 있듯, 성과 관리의 핵심 역시 화려한 제도나 교육보다 구성원이 심리적 위협을 느끼는 상황을 최소화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결국 상처 입은 뇌를 자극하지 않는 세심한 배려가 그 어떤 보상보다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리더에게 시간은 늘 부족한 자원이다. 바쁜 현업 속에서 면담을 두 번으로 나누어 진행하는 것이 때로는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성급한 대화로 지난 한 해 쌓아온 신뢰를 무너뜨릴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짧은 시차를 두고 두 번의 대화를 나누는 정성을 선택해 보길 권한다. 그것은 단순한 시간 낭비가 아니라, 리더의 진심이 오해 없이 전달되도록 길을 닦는 가장 가성비 높은 투자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구성원의 성장을 위해 고심하는 리더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 리더의 진정성은 화려한 화법이 아니라, 구성원의 뇌가 다시 대화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그 인내심에서 증명된다. 리더가 보여준 그 짧은 기다림과 공간의 배려가, 결국 차갑게 식었던 구성원의 마음을 되돌리고 다시금 조직을 위해 달리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