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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추꽃 Jul 15. 2019

나의 인싸력 점수는?

넷플릭스 블랙미러 Nosedive

블랙미러 시즌 3 Nosedive(추락)의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극단적인 평점사회를 가정하고 있다. 하루 종일 만나는 사람들의 행동과(모르는 사람이어도 나를 조금이라도 불쾌하게 했다면 낮은 평점을 주면 된다) SNS를 통해 올라오는 사진과 글을 모두 평가하여 0점부터 5점까지 점수를 매긴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점수가 매겨지고 그 점수를 토대로 어떤 집을 살 수 있는지, 어떤 직장을 가질 수 있는지,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등의 커트라인이 결정된다. 설상가상으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의 점수가 특수렌즈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된다. 렇듯 수는 어느 한 사람의 정체성이 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일차적 선입견을 심어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카페 알바생에게도 평점을 매긴다

주인공 레이시 파운드는 평범하고 친절한, 적당히 이미지 관리를 잘하는 점수 4.2 점의 여자이다. 평점을 높이기 위해 카페에 가서 예쁜 설정샷을 찍어 SNS에 올리며, 본인보다 점수가 높은 사람들의 화려한 삶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마이웨이로 살아가는 3점대의 남동생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4.5가 되어야만 거주할 수 있는 집이 절실해지고 '점수 상담사'와 이를 위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던 찰나, 단기간에 점수를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학창 시절 친구였던 4점대 후반의 '핵인싸(이 세계에선 '셀레브리티'라고 한다)' 친구가 결혼식에 축사를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평점이 높은 사람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을수록 더욱 빨리 점수가 오르는 구조에서 4점대 후반의 사람들만 모여있는 결혼식은 레이시에게 고득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 에피소드는 그 과정 속에서 레이시가 어떻게 단 며칠 사이에 4.2에서 최하점수로 추락해 버리는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가상 사회라기엔  참 많이 닮아있는>

어렸을 적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면서 나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발견되었다. 리액션을 남발하는 능력(!!). 함께 있어서 진정 내가 즐겁지 않아도 즐거운 모습을 보이는 능력.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그냥저냥 맞춰주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와 성향이 맞지 않은 친구와도 몇 시간씩 통화를 하며 상담을 해주고, 들어주고, 친구 집에서 잠도 .


듣는 말마다 빵빵 터지는 리액션 덕에 난 전학 오자마자 '가장 예쁜 들' 무리에 발탁되어 몇 년을 함께했다. 그들의 귀여움을 받는 마스코트 느낌이랄까. 늘 어울려 다니며 나는 전혀 관심 없던 쇼핑, 연애, 매니큐어 얘기를 열정적으로 들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비록 이 중 하나도 실천하진 않았지만). 그들은 좋아하는 TV 프로와 응원하는 연예인이 항상 일치다. 마치 잘 나가기 위한 공식 같았다. 내가 워낙 호응이 좋아 아마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일곱 명의 무리 중 몇 명이 싸우게 되면 난 들어주는 역할을 했고, 싸움이 심해져 파가 갈리게 되면 나는 비무장지대 같은 느낌이었다. 화려한 이들과 친해지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이 '무리'에 포함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덕분에 난 늘 누구나 인정하는 '인싸'였고 그땐 그 소속감이 좋았다. 점수제는 없었지만 분명 레이시사회 보는 것으로 인기가 갈리는, 누가 '잘 나가는 사람'인지 알 수 있는 하나의 작은 평점 사회였다.




<그들에겐 인싸, 나에겐 아싸>

그러던 몇 년 후 나는 해 있던 무리로부터의 자발적 이탈을 시도했다.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편한 친구들을 곁에 두었다. 함께 있으면 솔직해질 수 있어서 내가 에너지를 얻게 되는 그런 아이. 연예인에 관심 없고, 남자아이들처럼 뛰어놀고, 시끄럽고, 당당하게 TV보다 책이 좋다며 독서를 즐기고, 주류 음악을 좋아하며, 튀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유치. 리고 나한테 그래도 괜찮다고 해주는 . '주류'에 속해있어야 한다는 강박도 사라졌다. 사실 마음 맞는 친구 몇 명만 다면 그게 다 무슨 상관인가.


신기하게도 당당하게 ''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기로 커밍아웃한 나는 그 전보다 훨씬 행복했다. '인기녀' 집단에 있어도 나로 살지 못했던 그 전이, 외부에 나를 맞추기 위해 전전긍긍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겐 투명인간이었던 그때가 오히려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찌질이 시절이었던 것 같다. 외부에 보이는 것과 무관하게 그 당시 나는  스스로에게 철저한 'outsider'였던 것이다. 레이시 또한 유치장에 갇혀 격리되었을 때, 평점렌즈가 눈에서 제거되었을 때 비로소 자유해진다.




이것이 아마 점수 커트라인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수술 기회를 놓 남편을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후 평점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레이시가 히치하이킹으로 만난 중년의 여성이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인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그 여자는 레이시의  낮은 점수가 아닌 그저 한 명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봐준 유일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의 가장 멋있는 점은 한 때 4점 후반대의 '핵인싸'로 살아봤어서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알고 있지만,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 점수에 집착하는 레이시를 훈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저 커피를 챙겨주며 젊었을 적 자신과 많이 닮아있는 그녀를 조용히 위로할 뿐이다. 그때는 남들과 달라 낯설기만 했던 이 사람을 아마 레이시는 평생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살면서 공부로 가장 혹독하게 채찍질을 받아 힘들었던, 모든 게 혼란스러웠던 사춘기 고등학교 시절에 마찬가지로 를 나로 포용해준 친구들은 의 탄탄한 자존감이 되어주어 지금의 나를 능하 해 주었다.


전히 나는 여자라면 이 중 하나에는  관심 있을 법한 쇼핑에, 가방 브랜드에, SNS에, 예쁜 카페에, 사진에 무관심하다. 아마 레이시가 사는 평점사회였다면 나는 외부에 어필하여 주류의 높은 점수를 얻을 만한 요소가 전무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 스스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관심을 쏟고, 것이 비주류라 할지라도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그 시절 나는 친구들을 사랑하며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내 곁에 끝까지 남아줄 소중한 이겐 내가 '나'인 것으로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Out과 In의 기준을 재정립할 시간>

현재 '아싸'와 '인싸'를 나누는 기준은 우리의 외부 어딘가에 존재한. 하지만 어떠한 주류 무리에 속 그것을 따르는 것이 나를 '인싸'로 만들 않는다. 오히려 외부의 '인싸'가 되고자 집착할 때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알아보기 어려워진다. 레이시 또한 '누나 요즘 이상하다, 왜 그들과 같아지려고 하냐'며 대화를 시도했던, 본인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하고 있던 동생을 차갑게 대해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동생은 레이시가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대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리고 정작 평점이 2점대로 추락하자마자 그토록 동경했던 4점대 후반의 친구에게 사용가치가 없어졌다며 버림받고, 고생 끝에 도착한 결혼식장에서 쫓겨나게 된다.


'나' 자신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insider다. 나만의 인싸력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워주자. 그리고 내가 가장 나 다울 때,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않을 때, 다른 사람 "너는 왜 xx 안 해?" "요즘 누가 그걸 해"가 아닌 "너는 그렇구나!"로 대하는 것이 조금은 쉬워진다.


기억하자, 나의 인싸력 점수는 다른 사람들이 매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Who looks outside, dreams; who looks inside, awakens. - Carl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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