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글에서 90년대생은 무개념이 아니라고 호기롭게 말한 나는 사실 가끔 무개념이다.원래 무개념이 아니던 90년대생이 무개념을 선택하는 경우가간혹 있다. 좋게 좋게 말을 해서 도저히 먹히지 않을 때, 무개념이 되어야만버틸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에 내몰려 무개념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아마 사연은 제각각일 것이다.
<좋게 좋게,참다 참다>
입사 2년 차가 되었을 때 이미 주변 사람들은 나의 상사가 일을 안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들연신 '네가 다 해줘서 그래' 라며 그만좀알아서 해주라고 했다. 속 상하면서도 '어떻게 그래요'가 내 답변이었다.
본인이 일을 조금 한다 하더라도 당연히 파생되는 허드렛일은 100% 나의 몫이었다(여기서 허드렛일이라는 건 주 업무를 위한 기초작업이아니라 중학교만 나와도 할 수 있는 적힌 숫자 그대로 전산에 입력하고, 관련 우편물 처리하는 등의 업무다). 업무 시간 내내 그 허드렛일만 하다가 본업무는 야근을 하면서 처리해야 했다. 그때 내가 그에게 받았던 위로는'에혀 그래 힘들긴 하겠지. 내가 몇 달만 있다가 뭐 기회 되면 조정해줄게. 그런데 사실 너 연차 때는 원래 어떤 일이든 시키는 것만 하면 되는 거야.그러면서 배우는 거지'. 이 무슨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논리인가.
이 분은 나에게 본업무 관련된 가르침은 거의 준 적이 없다. 물어보면 그건 대충 하면 된다고, 어차피 그렇게 정확하지 않아도 되고 사실 기준 같은 건 정해진 것이 없다고만 하였고, 그래도 어떻게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나는 다른 선배님들 눈치를 보며 틈날 때마다 여기저기 물어보며 배웠다. 그러면서 그는 그냥 아르바이트생 고용해서 해도 될만한 일만 잔뜩 몰려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그러면서 배운다'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는 것이었다.
당연히 3년이 지나도록 '업무 조정'이나 인력 충원 같은 건 없었다.좋게 좋게 말할 때마다 조정 못해주는 변명거리는 늘 있었고 옛날에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는지에 대한 설교를 들어야 했다. 오히려 위에짬이 좀 찬 선배들이 일이 많다며 항의하면조금만 빌미가 생겨도 선배님의 허드렛일을 막내인 나에게 얹어주었다.또한다른 팀장들한테 본인이 배려하는 시늉을 하며 공통업무를 더 받아와서는 늘 결국 희생되는 건 그 업무를 처리하는 나였다.모든 선배들 백업은 막내가 하지만 막내 백업은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선배들은 편하게 휴가를 쓰지만 막내들은 선배들 휴가 때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막내니까처음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궂은일을 하겠다고 나서게 되면 다음에 다른 사람이 이번엔 내가 하겠다며 나서지않는다.신기하게도 선배들은 보다 못한 내가 그 일을 처리하러 나설 때까지 마치 그 일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누가 해도 무방한 일인데 결국 암묵적인 합의로 내 업무가 되었다.
<나를 힘들게 했던참 이상한 논리,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
정말 허드렛일 열심히 하면 일을 많이 배우게 될까? 유경험자로서 답해보자면, 절대 그렇지 않다.'자, 이제 그 일 그만하고 다른 업무해' 하고 누가 알아서 바꿔주나? 후배가 없다면 그냥 그 상태에서 계속 쌓이기만 한다.
허드렛일은 머리를 써야 하는 주 업무가 아닌데 항상 처리는 되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절대적인 시간이 들어가는데, 쉬운 일이니 다들 부담 없이 떠넘겨도 된다고 생각하는 특징이 있다(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야? 라며). 그리고 다른 사람이 봤을 때 그 일이 어느 정도인지 수치적으로 파악이 되지 않는다. 남는 시간에 주 업무를 하는데 이 허드렛일 비중이 너무 높으면 당연히 주 업무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주 업무는 내가 들이는 시간에 비해 퀄리티가 달라지는데, 이미 지친 상태에서 굳이 내가 야근을 하면서까지,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제대로 봐주는 사람조차 없으면 퀄리티를 높일 동기부여는 없다고 보면 된다.그렇게 의욕을 잃고 회사 업무에 흥미를 못 붙이게 된다.따라서 업무 성격의 비율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니지금처럼 짬이 제일 낮은 막내에게 귀찮은 일의 대부분을떠넘기는 형태가 아니라,막내가 주 업무를 익히며 고민하고재미를 붙일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일처리가 더 빠른 선배들이 더 많이, 아니면 적어도 균등하게는 맡는 배려를 하는 것이올바른 업무분장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회사에서 '그러면서' 배우지 않는다.
<내 입에서 나온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물이 넘치기 직전 마지막 한 방울이 있다. 나에게도 참다 참다 그런 순간이 왔다. 야근을 하고 귀가한 어느 금요일 바로 쓰러져 자고 다음날 핸드폰을 보니 밤 11시 반에 상사로부터 부재중 통화가 와있었다. 즉시 연락을 드렸는데 알아서 해결하셨다며,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다음부턴 '정신 차리고 있으라고' 했다(내막을 들어보니 굳이 나한테다시 확인받을 필요도 없었던 일이었다.) 이 분은 짬이 찬 선배들은심지어 지각을 해도 뭐라 안 하는 분이다. 그런 거로 뭐라 할 연차가 아니라나... 짬 순서로취침 시간마저도 침범하면서 적반하장인 이 사람, 정말이 상태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다.
인내심이 바닥난 나는 결국 상사에게 대드는, 할 말 하는, 알아서 안 해주는 90년대생이 되었다.그동안 내가웃으면서 좋게 좋게 개념 지키며 얘기할 때마다 정말 '좋게 좋게'로 밖에 인식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아래는 내가 봐도 막 나가는, 내가 내뱉었던 말들이다.
'어차피 이거 직접 하실 거 아니고 제가 하게 될 거잖아요.'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일을 해야 하죠? 나중에 누가 어떻게 관리하라고요.'
'우리 회사 퇴근 시간은 6시입니다. 어차피 지금 가도 칼퇴 아니잖아요.'
물론 일은 계속 열심히 했다. 소화 가능한 만큼만. 내가 알아서 대신 처리해 주지 않는 일들이 생기니 상사는 더 신경을 쓰고 이메일을 확인하고,대놓고 다 시키긴 미안하니 그중 필요한 일만 시키기 시작했다. 공통업무도 모두가 서로에게 미루며 가만히 있을 때,평소처럼 내가 하지 않고 기한이 임박했을 때그에게아무도 안 하고 있으니 업무분장을 구체적으로 내주셔야 할 것 같다고 요구했다. (내가 선배님들께 일을 시킬 순 없으니) 상사를 통해 나만 하던 일이 고루 분산되도록 했다.
늘'알아서 해~ 대충 해~'로 일관하며 리더 직무유기를 하던 그에게 이건 지금 어느 정도 방향을 지시해주시는 것이직원들이 고생을 안 하는 방법이라고직언해 강제로 고민을 시켰다. 그렇게 내 삽질을 줄였다.어떠한 주된 업무를 해달라고 부탁하면 기한이 임박할 때까지 안(못)해주다가 왜 아직까지 안했냐고 물었을 때당당하게 '이거 이거(허드렛일) 때문에 도저히 할시간이 없다'라고 말해결국 그가 하게 만들었다(평소 같았으면 내가 어떻게든 하겠다고 했을 텐데 말이다).내가 분명 업무 시간에 쉬지 않고 일하면서도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니결국 그의 입에서'진짜 너한테 허드렛일이 많긴 하구나'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결국 나는 처음 선배님들의 '네가 다 해줘서 그래'가 어느 정도일리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과한 노예근성과 막내 희생정신을 덜어내고 나는 상사에게 일을 시키는, 감히 군대 문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버릇없는 직원이 되어 내 살길을 찾았다.그리고내가 그렇게까지 안 해도 회사는 잘만굴러갔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물론 모든 것이 순탄친 않았지만 그래도 상사가 어느 정도 융통성은 있고주변 사람 눈치를 보는사람이었으며, 회사 분위기가 합리적인 방향으로 많이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행동해서 전보다 더 심한 갈굼과 폭언을 겪고 결국 견디지 못해 팀을 옮기거나, 회사를 나가거나, 병을 얻거나, 아니면 끝까지 쥐 죽은 듯 혼자 스트레스받다가 퇴사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정말 회사 바이 회사, 상사 바이 상사이다.
현재 우리나라처럼 웬만한 산업은 성장동력을 잃어 사업비를 아끼는 방식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상황에선 후배 받기도 힘들어 그것만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을뿐더러, 이 무슨 내리 갈굼도 아니고밑에 누가 온다고 본질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후배도 나가버리면 그만이다. 누군가는 끊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효율적인 방법을 강구하건 변화가 생기지, 이처럼모든개인이 동등하게존중받지 못하는 환경에서,개인의존중이 '짬'순인조직이 장기적으로굴러갈 수 없다고 알려주는 것, 그걸 90년대생들이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너는 아직 그런 요구를 할 때가 아니다'라지만, 개인이 존중 받기에 적합한 연차가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무개념은 옳지 않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제 나도 좀 존중이란 걸 받고 싶을 때 나는 알면서도 무개념을 가끔,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