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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글빛 Aug 09. 2020

기차여행

나답다는 것 - 나를 찾아가는 여정

  기차를 타고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상상해본다. 빛바랜 배낭을 등에 걸쳐 메고 부푼 마음으로 기차역으로 걸어간다. 플랫폼에 서 있는 나에게 어디선가 불어오는 따스한 풀 향기 바람이 한가득 가슴으로 밀려들어 오는 기분이다. 마음에 집중하고 다가오는 기다란 열차에 몸을 실어본다. 올라가는 발걸음은 매우 가볍다. 어느덧 내 몸도 미끄러지듯이 객차 의자에 앉아있다. 창밖으로 바라보는 배경이 신기하다. 내가 무심코 찍었던 수천 개 사진이 기억 저편에서 재생되어 영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정역에 도착했나 보다. 행복하고 웃고 있는 사진들이 한가득하다. 창밖 풍경은 내가 좋아하는 책과 글쓰기 강의 때 시간으로 이동한다. 소설가 ‘정유정’ 작가를 만나 악수하고 책 이야기 나누며 함께 찍은 나의 모습 속에 내 눈은 우주의 별을 가져다 놓은 듯했다. 그 기운을 받아서일까 에세이 집필과 수필을 쓰고 감히 회사원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까지 했다. 기차 안은 여름의 멜로디가 흐른다. 그해 매미가 매섭게 울고 무더웠던 시기였다. 낮에는 본업인 설계업무를 하고 밤에는 원고를 들고 출판사와 밤늦게까지 씨름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큰 느티나무 아래 그늘이 드리워서 유쾌하고 시원한 바람과 함께 책에 집중하고 있는 한 어린아이가 희미하게 나타난다. 초등학교 아름드리 느티나무 추억이 가슴에 밀려왔다. 갑자기 저 멀리 내 심연에서 부는 바람이 불어왔다. 책과 함께했었던 추억과 거기서 행복하게 웃는 나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니 살아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시 찾은 느낌이었다. 그 기분을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느티나무 아래에서 부는 바람과 매미 소리는 잊을 수가 없다.






 어두운 터널을 진입하자 어둡고 남루했었던 과거의 음영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바다 백사장에 홀로 걷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옛 기억이 스멀스멀 생각났다. 상사가 아무 이유 없이 인사 불이익을 주어 한동안 가슴앓이를 했다. 그리고 조용히 회사를 떠나려고 마음먹던 날 회사에 가지 않고, 자주 찾았던 바다에 갔다. 그때 바다는 나에게 아무 말 없이 조용했다. 바다는 그저 저 멀리 수평선만 바라보고 기다리라고만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 기차 안에서도 바다는 말은 없지만 지금 지나는 터널이 그때의 그 감정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나는 그 당시 어두운 터널이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기차를 타고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밝은 빛을 바라보니 어두운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다. 아직도 현실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 나는 대답 없는 바다에 말을 걸곤 한다. 




  기차는 감정역을 지나 터널을 빠져나오자 사람역으로 진입하였다. 기차 내부에 나와 함께 행복을 함께 했던 순간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기 시작했다. 기차는 앞으로 달리면서도 배경과 풍경은 내가 간직하고 싶었던 프레임을 연속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언제 찍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사진과 영상들은 평소에 쉽게 발견하지 못했던 나만의 특별한 모습과 행동으로 보였다. 스쳐 지나가는 모습 속에 나를 주변으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소원했던 사람들이 하나 같이 웃고 있었다. 기차 밖 풍경에서 나와 함께 웃고, 함께 운동하고, 함께 대화하고, 함께 먹고 즐기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렇게 그들과 함께 행복 여행을 떠나고 싶었나 보다. 기차가 선로를 지나갈 때마다 울려 퍼지는 불협화음이 들렸지만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기차에 울려 퍼지면서 하나의 화음으로 승화되고 있었다. 


  종착역이 없어 보인다. 기차가 계속 달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풍경에 비친 모습들을 다시 만나 보게 되니 기분이 새롭다. 그동안 겉으로만 나를 보며 꾸미고 살아온 후회가 함께 떠밀려온다. 창밖의 내 모습은 내가 무엇을 더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는지를 더욱더 분명히 전해주고 있는데 말이다. 힘차게 달리고 있는 기차에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래서 내 마음의 원동력을 다 전해주고 싶었다. 그러면 내가 떠나는 기차여행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만 같아 보였다. 창밖의 하늘과 바다는 파랗게 닮아 보였다. 내가 살아가야 하는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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