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이 많아질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
선택이 많아진 시대라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선택이 많아진 만큼
평온이 많아졌는지는 의심스럽다.
가능성은 늘 축복처럼 포장되지만
가능성은 동시에 공포가 된다.
선택은 자유를 약속한다.
“네가 고르면 돼.”
그 말은 멋있다.
하지만 고르는 순간
다른 모든 길을 버려야 한다.
선택이란 언제나
포기의 기술이다.
포기가 포함된 자유는
생각보다 무겁다.
선택 앞에서 마음은 계산을 시작한다.
최선, 최대, 효율, 손해.
삶을 숫자로 바꾸는 순간
삶은 가난해진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들은
대개 계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 품격, 존엄, 기쁨 같은 것들.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정보는 늘 많다.
어려운 이유는
선택이 곧 ‘나’가 되기 때문이다.
무엇을 고르느냐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두려워한다.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판결이다.
선택을 미루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그는 흔히 정확한 사람이다.
정확하고 싶어서
더 많은 것을 확인한다.
하지만 확인이 길어질수록
삶은 시작되지 않는다.
시작되지 않는 삶은
불안만 키운다.
불안이 커지면
더 정확해지고 싶어진다.
이것은 끝없는 원이다.
선택 앞에서 우리는
‘정답’을 찾는다.
정답이 있으면 편해지니까.
하지만 삶의 선택에는
정답이 없을 때가 많다.
있는 것은 결과와 책임뿐이다.
정답을 찾는 순간
우리는 책임을 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를 원하면서도
자유의 대가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선택의 공포는
가능성을 잃는 공포이기도 하지만
더 깊게는
후회를 두려워하는 공포다.
“만약 다른 길을 골랐다면 더 좋았을까.”
이 질문은 삶을 갉아먹는다.
왜냐하면 그 질문은
검증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증될 수 없는 질문을 붙잡으면
삶은 늘 불완전하다.
선택을 가볍게 만들려면
선택을 작게 해야 한다.
인생을 한 번에 고르려 하지 말 것.
오늘을 고르는 것.
다음 한 걸음을 고르는 것.
그 한 걸음은
대단한 의미를 갖지 않아도 된다.
대단한 의미는
나중에 붙어도 된다.
먼저 걷는 사람이
의미를 만든다.
오늘 당신이 두려워한 선택은 무엇이었나.
그 선택을 두려워한 이유는
실패였나,
아니면
“나”라는 판결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