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함의 기준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은, 더 많이 부족해진다

by 데브라

어떤 날은 부족함이 사실처럼 느껴진다.

아무것도 모자라지 않은데도 그렇다.
시간이 있고, 밥을 먹었고, 잠도 잤고,
그래도 마음이 비어 있다.
부족함은 종종 현실이 아니라 감각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쉽게 진실이 된다.


우리는 “더”를 배운다.
더 좋은 것, 더 빠른 것, 더 높은 것, 더 많은 것.
더를 원하는 마음은 성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더를 원하는 마음은
종종 불안의 다른 이름이다.
불안은 말한다.
“지금으로는 안 돼.”
“지금의 너는 부족해.”
그 말이 반복되면
충분함은 사라지고,
기준만 남는다.


기준은 대개 남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남의 속도, 남의 결과, 남의 생활.
그 기준은 공정하지 않다.
그 기준은 나를 모른다.
그 기준은 내 삶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 기준을 들고
나를 재판한다.
그리고 그 재판은 끝이 없다.
기준이 바깥에 있으면
나는 평생 바깥으로 뛰어야 한다.


충분함은 숫자가 아니다.
얼마를 벌면 충분한가.
몇 평이면 충분한가.
몇 명이 좋아하면 충분한가.
이 질문들은 정답이 없다.
숫자는 늘 더 큰 숫자를 부른다.
숫자로 충분함을 만들려 하면
충분함은 도망친다.


충분함은 상태다.
잠깐 멈춰서
“이 정도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
그 상태는 게으름이 아니다.
그 상태는 존엄이다.
더를 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충분함을 말할 수 있다.
원할 수 있는데도
지금의 삶을 인정하는 것.
그게 충분함이다.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은
대개 더 많이 잃는다.
자기 시간을 잃고,
자기 리듬을 잃고,
자기 얼굴을 잃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왜 그렇게 달렸는지조차 잊는다.
달리기는 습관이 되고,
습관은 삶이 된다.


충분함의 기준은 밖에 있지 않다.
밖에서 기준을 가져오면
삶은 늘 비교가 된다.
충분함은 안에서 자란다.
나의 속도, 나의 체력, 나의 관계, 나의 마음.
이것들을 아는 사람이
자기 기준을 만들 수 있다.
기준이 생기면
삶은 덜 흔들린다.


충분함은 많은 것을 포기하는 기술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을 끊어내는 기술이다.
불필요한 것은 때로 물건이 아니라
생각이다.
“나는 아직 부족하다.”
“나는 더 증명해야 한다.”
“나는 멈추면 뒤처진다.”
이 문장들이 불필요하다면
그 문장부터 버려야 한다.
그 문장을 버리면
삶은 조금 가벼워진다.


오늘 당신을 몰아붙인 기준은 무엇이었나.
그 기준은 누구의 것이었나.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충분함을
왜 그렇게 늦게 인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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