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되감는 사람은, 현재를 놓친다
후회는 조용히 시작된다.
큰 사건이 아니라, 작은 문장 하나로.
“그때 그렇게만 하지 않았어도.”
이 문장이 떠오르는 순간,
과거는 다시 현재가 된다.
후회는 기억이 아니다.
후회는 재판이다.
이미 끝난 사건을 다시 불러와
다른 결말을 강요한다.
그래서 후회는 늘 불공정하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조건으로 살았는데,
지금의 나는 지금의 지식으로 판결한다.
시간이 바뀌었는데 판결은 같은 법정에 선다.
이 재판에서 나는 자주 패배한다.
후회는 가장 그럴듯한 폭력이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야.”
“다음엔 잘하려고.”
후회는 반성의 옷을 입고 다가온다.
하지만 많은 후회는
성장을 만들지 못한다.
성장을 만드는 것은
교훈이지, 자책이 아니다.
자책은 교훈을 낳지 않고
피로만 낳는다.
후회는 또한 현실을 바꾸지 않는다.
현실을 바꾸는 건 행동인데,
후회는 행동을 방해한다.
왜냐하면 후회는 나를 과거에 묶어두기 때문이다.
묶인 사람은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이지 못하면 더 후회한다.
후회는 이렇게, 스스로를 먹는다.
후회는 종종 선택의 그림자다.
다른 길을 상상한다.
“그때 저 길을 갔더라면.”
하지만 그 길은 검증할 수 없다.
검증할 수 없는 가능성을 붙잡으면
현재는 늘 불완전해진다.
현재가 불완전하면
삶은 늘 미완성처럼 느껴진다.
미완성의 삶은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후회가 깊어질수록
나는 나에게 잔인해진다.
실수는 사건인데,
후회는 성격이 된다.
“나는 원래 이래.”
“나는 늘 이렇게 망쳐.”
이 문장은 사실이 아니라
낙인이다.
낙인은 빠르고,
낙인은 오래 산다.
후회에서 빠져나오는 시작은
과거를 잊는 데 있지 않다.
과거는 잊히지 않는다.
다만 과거를
‘교훈’으로 둘 것인가
‘형벌’로 둘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
형벌로 두면
나는 계속 죄인이 된다.
교훈으로 두면
나는 다시 배울 수 있다.
후회는 완벽을 사랑한다.
완벽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완벽을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늦게 도착한다.
늦게 도착한 사람은
항상 자신을 탓한다.
그 탓은 삶을 정교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삶을 얇게 만든다.
오늘 당신이 되감은 장면은 무엇이었나.
그 장면에서 당신은
무엇을 벌하려 했는가.
그리고 그 벌은
당신을 더 나아지게 했는가,
아니면
그저 더 지치게 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