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 커진 게 아니라, 마음이 ‘부족함’에 익숙해진 것이다
결핍은
가난한 사람에게만 오지 않는다.
오히려
가진 것이 늘어날수록
더 정교해진다.
예전엔 하나만 바라던 것이
이제는 두 개가 되고,
두 개는 곧 기준이 되고,
기준은 곧 불안이 된다.
그래서 욕망은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자람’의 형태로 더 자주 나타난다.
나는 더 있어야 하고
더 되어야 하고
더 나아야 한다.
그 문장은
나를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계속 쫓아오게 만든다.
법구경이 말하는 핵심은
욕망을 죄로 만들지 않는다.
원하는 마음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욕망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보라고 한다.
욕망이 나를 살리는 쪽으로 가면
그건 추진력이 된다.
욕망이 나를 갉아먹는 쪽으로 가면
그건 굴레가 된다.
굴레의 특징은 단순하다.
채워도
잠깐만 괜찮다.
기쁨은 짧고
불안은 길다.
무언가를 얻으면
처음엔 숨이 트이는데
곧 마음은 다음을 찾는다.
이건 마음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마음은 원래
익숙한 것을 빨리 잊고
부족한 것을 크게 느끼는 쪽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결핍은
내가 가진 것을 줄여서 생기기보다
내가 가진 것을 보지 못해서 커진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이 무엇을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한 번만 떠올려본다.
돈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인정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밀어내지 말고
한 문장만 놓는다.
지금, 결핍이 있다.
지금, 더 갖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 문장은
욕망을 없애지 않는다.
하지만 욕망과 나를 분리한다.
“나는 부족해”가 아니라
“부족하다는 감각이 있다”라고 말하는 순간
결핍은 내 정체성이 되지 못한다.
현상이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보인다.
정말 필요한 것인지.
남의 기준인지.
지금 당장 필요한지.
아니면 불안을 달래기 위한 구매인지.
욕망은
항상 악이 아니다.
하지만 욕망이 불안의 언어로 바뀌면
삶은 끝없이 마른다.
그때 필요한 건
욕망을 없애는 힘이 아니라
욕망의 속도를 조절하는 힘이다.
조금 늦추는 것.
조금 덜 급해지는 것.
조금 더 나를 잃지 않는 것.
결핍은 끝나지 않을 수 있다.
그건 자연스럽다.
다만
결핍을 따라가다
나를 잃지는 말자.
내 삶은
‘더’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내 삶은
이미 있는 것들로도
조용히 이어진다.
지금, 내가 있다.
지금, 숨이 있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순간
욕망은 굴레가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도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