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간다

의미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오늘을 살게 하는 방향이다

by 데브라

의미를 찾는다는 말은

아름답다.
하지만 어떤 날엔
그 말이 사람을 더 힘들게 한다.


왜 사는지 모르겠는 날에
왜 사는지 찾으라고 하면
마음은 더 멀어진다.


의미는
발견이라기보다
회복에 가깝다.


특히 상실 이후에는.
불안과 분노를 지나온 뒤에는.
비교와 무기력을 겪은 뒤에는.


마음이 묻는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


그 질문은 깊다.
하지만 그 질문이 깊다고 해서
정답이 깊게 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답은
대개 너무 작아서
처음엔 정답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늘 밥을 먹는 일.
오늘 씻는 일.
오늘 창문을 여는 일.
오늘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일.


이런 것들은
대단한 의미가 아니라
그저 삶의 동작이다.


하지만 삶은
동작으로 이어진다.
동작이 끊기면
의미도 끊긴다.


그래서 어떤 날엔
의미를 찾기 전에
살아 있는 쪽으로
몸을 조금만 기울이면 된다.


법구경은
의미를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방향을 묻는다.


지금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고.


불안한 날의 마음은
미래를 향하고,
후회하는 마음은
과거를 향하고,
비교하는 마음은
타인을 향한다.


그 방향들은
삶을 얇게 만든다.


그래서 의미는
먼저 방향을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간다.


그 왕복은
아무 의미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계속한다.


숨은
살아 있음의 이유를 증명하지 않는다.
그냥
살아 있음을 수행한다.


그 태도를
오늘 하루에
조금만 빌려온다.


지금, 내가 있다.
지금, 숨이 있다.


이 문장은
거창한 희망이 아니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게 하는
가장 작은 기둥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에
오늘은 이렇게 답해도 좋다.


“일단 살아서, 내일의 나에게 넘긴다.”


의미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덧칠된다.


어떤 날엔
누군가를 덜 미워한 날이 의미가 되고
어떤 날엔
나를 덜 괴롭힌 날이 의미가 된다.


의미는
커다란 성취가 아니라
삶을 덜 파괴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완벽하게 살지 못해도
살아 있는 쪽으로
한 발만 기울인다.


불안이 있어도,
분노가 있어도,
무기력이 있어도,
상실이 있어도.


그래도 살아간다.


그 문장이
나를 다시
내 자리로 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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