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은 포기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갖는 일이다
만족은
대단한 성격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태생부터 담담하고
어떤 사람은 원래 욕심이 적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만족은
기질이 아니라
기술에 가깝다.
왜냐하면
마음은 원래
부족한 쪽을 더 크게 보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일이 있어도
잠깐만 기쁘고,
조금만 지나면
다시 불안해진다.
더 있어야 하고
더 나아야 하고
더 빨라야 한다.
그 문장들은
세상을 움직이게도 하지만
마음을 쉽게 무너뜨린다.
특히 ‘채움’에 익숙해지면
만족은 더 어려워진다.
하나를 채우면
또 하나가 비고,
하나를 얻으면
또 하나가 부족해진다.
그래서 마음은 늘
현재를 살지 못하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때 법구경이 건네는 방향은
아주 현실적이다.
만족은
세상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기준이 없으면
삶은 남의 속도로 달리고
남의 기준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그 평가는
끝나지 않는다.
만족은
“이만하면 된다”라는
단단한 멈춤이다.
그 멈춤이 있어야
삶이 산다.
멈춤이 없으면
삶은 계속 밀리고
마음은 계속 마른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이
어디에서 ‘부족하다’고 말하는지
한 번만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반박하지도 말고
억지로 감사하려 하지도 말고
그냥 사실을 하나 더 붙인다.
지금, 부족하다는 감각이 있다.
그리고 지금, 이미 있는 것도 있다.
이 문장은
긍정으로 덮는 문장이 아니다.
현실을 두 개로 보는 문장이다.
부족함만 보면
삶은 가난해지고,
있는 것만 보면
삶은 둔해진다.
둘을 같이 보면
삶은 균형을 찾는다.
만족은
욕망을 없애는 게 아니다.
욕망이 나를 끌고 가는 방향을
내가 고르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원하고,
나는 어디까지면 충분한가.
이 질문이 선명해지면
마음은 덜 흔들린다.
충분함을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불안으로 달리지 않고도
오래 갈 수 있는 사람이다.
한 번에 많이 가는 사람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가는 사람.
만족은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나를 안정하게 만든다.
그리고 안정은
삶을 더 깊게 만든다.
지금, 내가 있다.
지금, 숨이 있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 순간
‘더’는 명령이 아니라 선택이 된다.
만족은
포기가 아니다.
충분함을 아는 마음은
삶을 덜 소모하고
삶을 더 오래 사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