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은 상대를 벌주는 것 같지만, 결국 내 마음을 가장 오래 묶는다
원망은
정당한 얼굴로 온다.
상처를 받았고
억울했고
참아왔고
무시당했다고 느꼈으니까.
그래서 마음은
판결을 내린다.
“저 사람은 틀렸다.”
“저 사람은 나쁘다.”
“저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
그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
잠깐은 마음이 시원해진다.
세상이 정리된 것 같고
내가 옳아진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원함은 짧다.
원망은
잠깐의 시원함 대신
긴 시간의 무게를 남긴다.
원망을 품으면
상대가 내 마음 안에 살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말이 계속 떠오르고
그 사람의 표정이 계속 떠오르고
내 하루가 그 사람으로 더러워진다.
미움은 상대에게 향하는 것 같지만
가장 오래 타는 건
내 마음이다.
법구경이 보여주는 방향은
무조건 용서하라는 말이 아니다.
상처를 없던 일로 하라는 말도 아니다.
다만
미움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보라고 한다.
미움이 깊어질수록
마음은 좁아지고
삶은 딱딱해진다.
웃음이 줄고
여유가 줄고
사람을 믿는 힘이 줄어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이
점점 사라진다.
미움은
상대를 벌주기 전에
나를 먼저 벌준다.
그래서 미움을 다루는 첫걸음은
상대를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을 구해내는 일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
내가 품고 있는 미움 하나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 미움 아래에 있는 감정을
조용히 본다.
대개 그 아래에는
슬픔이 있고
두려움이 있고
서운함이 있다.
미움은 종종
그 감정들을 덮기 위해 만들어진 갑옷이다.
그래서 오늘은
갑옷을 벗으라는 말이 아니라
갑옷이 있다는 사실을
한 번만 확인한다.
지금, 미움이 있다.
지금, 상처가 있다.
이 문장은
미움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미움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미움과 나 사이에
얇은 거리를 만든다.
거리가 생기면
나는 선택할 수 있다.
이 미움을 계속 품을지.
아니면
나를 위해
조금 내려놓을지.
내려놓음은
용서와 같다.
하지만 용서와 같지 않기도 하다.
내려놓음은
상대에게 면죄부를 주는 게 아니다.
내 마음에서
상대의 거처를 줄이는 일이다.
나는 더 이상
내 하루를
그 사람에게 내주지 않겠다.
그 결심이 생기면
삶은 조금씩 돌아온다.
미움이 줄어들면
상대가 좋아지는 게 아니다.
내가 살아난다.
지금, 내가 있다.
지금, 숨이 있다.
그 사실이 먼저 서면
원망은
내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미움은 나를 먼저 태운다.
그래서 오늘은
내 마음부터
불에서 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