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나를 덜 해치는 방식이다
우리는 남에게는
상냥해지려고 애쓴다.
말을 고르고
표정을 고르고
상처 주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가장 거칠다.
실수하면 바로 판결하고
느리면 바로 채찍질하고
흔들리면 바로 멸시한다.
“왜 이것도 못 해.”
“또 이러네.”
“너는 원래 안 돼.”
그 말들은
누군가에게 했다면
관계가 무너질 말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말을
매일 나에게 한다.
그래서 마음은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날이 있다.
법구경이 말하는 자비는
누군가를 무조건 용서하라는 말이 아니다.
착한 사람이 되라는 도덕도 아니다.
자비는
고통을 보는 힘이다.
누가 아픈지.
어디가 아픈지.
지금 무엇이 무너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고통을 본 다음에야
덜 해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
그게 자비다.
나에게 자비가 없는 사람은
세상에서도 쉽게 닳는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계속 공격하면
삶은 늘 전쟁이 되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도 전쟁이고
관계도 전쟁이고
미래도 전쟁이 된다.
그래서 자비는
삶의 미덕이 아니라
삶의 기술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
오늘 내가 나에게 한 말 하나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 말이
정말 필요한 말이었는지
조용히 묻는다.
그 말은 나를 살렸는가.
아니면 나를 더 작게 만들었는가.
만약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면
오늘은
그 말을 바꿔본다.
응원으로 바꾸라는 말이 아니다.
긍정으로 덮으라는 말도 아니다.
그저 사실을 더 정확히 말한다.
지금, 나는 힘들다.
지금, 나는 흔들린다.
지금, 나는 지쳤다.
이 문장은
패배의 선언이 아니다.
나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문장이다.
이해가 생기면
선택이 생긴다.
나를 더 몰아붙일지.
아니면 오늘은
조금 쉬어갈지.
자비는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나를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오래 가게 하는 마음.
덜 부서지는 마음.
그래서 자비는
삶을 포기하는 마음이 아니라
삶을 지키는 마음이다.
지금, 내가 있다.
지금, 숨이 있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순간
나는 나를
적이 아니라
동료로 대할 수 있다.
나에게도 자비를.
그 한 문장이
삶의 온도를
조금 낮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