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자비를

자비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나를 덜 해치는 방식이다

by 데브라

우리는 남에게는

상냥해지려고 애쓴다.


말을 고르고
표정을 고르고
상처 주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가장 거칠다.


실수하면 바로 판결하고
느리면 바로 채찍질하고
흔들리면 바로 멸시한다.


“왜 이것도 못 해.”
“또 이러네.”
“너는 원래 안 돼.”


그 말들은
누군가에게 했다면

관계가 무너질 말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말을

매일 나에게 한다.


그래서 마음은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날이 있다.


법구경이 말하는 자비는
누군가를 무조건 용서하라는 말이 아니다.
착한 사람이 되라는 도덕도 아니다.


자비는
고통을 보는 힘이다.


누가 아픈지.
어디가 아픈지.
지금 무엇이 무너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고통을 본 다음에야
덜 해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


그게 자비다.


나에게 자비가 없는 사람은
세상에서도 쉽게 닳는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계속 공격하면
삶은 늘 전쟁이 되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도 전쟁이고
관계도 전쟁이고
미래도 전쟁이 된다.


그래서 자비는
삶의 미덕이 아니라
삶의 기술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
오늘 내가 나에게 한 말 하나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 말이
정말 필요한 말이었는지
조용히 묻는다.


그 말은 나를 살렸는가.
아니면 나를 더 작게 만들었는가.


만약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면
오늘은
그 말을 바꿔본다.


응원으로 바꾸라는 말이 아니다.
긍정으로 덮으라는 말도 아니다.


그저 사실을 더 정확히 말한다.


지금, 나는 힘들다.
지금, 나는 흔들린다.
지금, 나는 지쳤다.


이 문장은
패배의 선언이 아니다.
나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문장이다.


이해가 생기면
선택이 생긴다.


나를 더 몰아붙일지.
아니면 오늘은
조금 쉬어갈지.


자비는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나를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오래 가게 하는 마음.
덜 부서지는 마음.


그래서 자비는
삶을 포기하는 마음이 아니라
삶을 지키는 마음이다.


지금, 내가 있다.
지금, 숨이 있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순간
나는 나를
적이 아니라
동료로 대할 수 있다.


나에게도 자비를.


그 한 문장이
삶의 온도를
조금 낮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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