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풀어주는 일

용서는 상대를 위한 미덕이 아니라, 나를 위한 해방이다

by 데브라

용서라는 말은

때로 사람을 더 아프게 한다.


“용서해.”
“잊어.”
“그만해.”


그 말들은
상처를 겪은 사람에게는
너무 빠르다.


상처는
말로 정리되지 않는다.
시간이 필요하고
거리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마음이 숨을 쉴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용서는
도덕이 아니라
순서의 문제다.


아직 피가 나는 상처에
용서를 덮어버리면
그건 치유가 아니라 억압이 된다.


법구경이 보여주는 용서는
억지로 웃는 일이 아니다.
상처를 없던 일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용서는
내 마음이 계속 불타는 것을
멈추는 방식이다.


원망은
상대를 벌주는 것 같지만
결국 내 마음을 가장 오래 묶는다.


그 사람은 오늘도 살고
나는 오늘도 그 사람을 생각한다.


그게 원망의 구조다.


그래서 용서는
상대를 풀어주는 게 아니라
나를 풀어주는 일이다.


내 마음에서
그 사람의 자리를 줄이는 일.
내 하루를
그 사건에서 빼내는 일.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
내가 붙잡고 있는 상처 하나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묻는다.


나는 지금
정의를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고통을 반복하고 있는가.


정의와 고통은
같은 얼굴을 할 때가 많다.


그 구분이 어려울 때
아주 작은 문장을 하나 놓아본다.


지금, 원망이 있다.
지금, 상처가 있다.


이 문장은
상대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나를 무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 마음을 사실로 되돌린다.


사실은 이렇다.


나는 아팠다.
나는 서운했다.
나는 무너졌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용서는 조금 다른 의미가 된다.


용서는
“괜찮다”가 아니라
“나는 더 이상 여기에 살지 않겠다”가 된다.


그 결심은
상대의 사과와 무관할 때도 있다.


사과를 받지 못해도
상대가 변하지 않아도
나는 나를 위해
내 마음의 불을 줄일 수 있다.


이건 패배가 아니다.
이건 자비다.


나에게도 자비를.


용서는 한 번에 되지 않는다.
왔다가 가고
잡았다가 놓고
또 올라왔다가 또 내려간다.


그 반복은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다.


내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과정.


지금, 내가 있다.
지금, 숨이 있다.


그 사실이 먼저 서면
나는 용서를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오늘
한 번만
조금 덜 붙잡는다.


그게 용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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