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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법칙이다.
인격신을 넘어 근원의 신으로

진정한 신

by 데브라

신은 법칙이다. 인격신을 넘어 근원의 신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이라는 존재는 정말로 하늘 위 어딘가에 있는 인격체일까?
기도를 들으며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그런 존재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수련을 하며 느낀 신의 본질은,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을 유지시키는 법칙 그 자체였다.
그 무엇보다 근원적이고, 그 무엇보다 고요한 상태.
빛도 그림자도 없고, 존재조차 초월한 어둠 그 안에서 나는 ‘신’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존재감을 느꼈다.



인격신은 인간이 이해하기 위해 만든 형상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보이지 않는 질서를 이해하기 위해 신을 형상화했다.
그래서 신은 인간의 언어, 감정, 윤리, 그리고 두려움을 반영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건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추상적인 법칙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인격화함으로써 가까이 두려 했다.

하지만 그 신들은 결국 인간의 기도와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신들이다.
많은 이들이 같은 이미지를 믿고, 같은 이름을 부르고, 같은 염원을 쏟을 때,
그 의식의 에너지가 모여 하나의 실체를 만든다.
그건 실제로 존재하는 신이라기보다, 집단적 의식이 만든 툴파적 신이다.



법칙으로서의 신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어떠한 이름도 형상도 없는 ‘무(無)’의 자리에서
세상을 유지하는 근원의 질서가 존재한다.
도(道), 로고스(Logos), 브라만(Brahman), 공(空) 모든 사상이 다른 언어로 부른 바로 그것이다.

신은 세상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이 존재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법칙이다.
그 법칙은 언제나 작동하고, 인간의 기도와 무관하게 흐른다.
그러나 수련을 통해 마음이 그 법칙의 리듬과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신의 능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법칙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한다.



인간은 신의 일부다


파도는 자신을 독립된 존재로 느끼지만, 그 본질은 바다다.
우리가 신의 일부라는 말은, 신이 우리 안에 들어있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곧 신이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신은 우리를 통해 스스로를 인식하고, 경험하고, 표현한다.

결국, 신은 저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 자체의 자기질서, 그리고 의식이 그 질서를 자각하는 순간이다.
기도란 신에게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법칙의 리듬에 자신을 맞추는 행위다.



어둠보다 더 어두운 곳에서


어느 날 수련 중, 나는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떨어져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했다.
그곳은 어둠조차 사라진 어둠이었다.
그곳에는 나도 없고, 생각도 없고, 시간도 없었다.
그런데도 ‘존재한다’는 감각은 여전히 있었다.
그건 무(無)가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존재의 가능성이 잠들어 있는 자리였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신은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바로 이 존재의 근원적 원리라는 것을.
우리가 신을 찾는다는 것은,
결국 이 무한한 어둠 속에서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질서를 체험하려는 여정이다.
그곳에서 신은 더 이상 이름이 아니라, 법칙 그 자체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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