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제일 힘들더라
나는 안전업무를 건설현장에서 시작했다.
본사 안전환경팀에 들어갔을 때 솔직한 심정은 하나였다.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내가 무슨 지원을 한다는 말인가.”
본사라면 현장을 지원해야 하는 자리인데, 사회초년생인 ‘생초짜 안전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현장발령 기회가 왔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었다.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보호구보다 사각팬티가 먼저 보이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그때 현장은 그랬다.
아침 조회를 마치고 현장을 나가면 보호구는커녕 작업복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불과 20년 전 이야기다.
안전모 하나, 사각팬티 하나, 그리고 밀짚모자.
물론 그 현장은 당시 기준으로는 안전관리를 잘하는, 규모도 큰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시대가 달랐고, 기준도 지금과는 달랐다.
그 시절 내 주 업무는 안전관리자라기보다 거의 현장 막내에 가까웠다. 대형 커터를 들고 다니고, 대형 오함마를 메고 뛰어다니던 터프한 초보.
돌이켜보면 정말 ‘나 때 이야기’다.
이번에 하고 싶은 이야기의 본질! 하지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고생담이 아니다.
사람 이야기, 그리고 내가 성장하기 위해 붙들었던 관계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솔직히 말하면, 이 방법을 누군가에게 그대로 따라 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생각해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그때 그것이 정답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버텨왔기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그래서 기록으로 남겨두려 한다. 누군가에게는 참고가 될 수도 있으니까.
내 첫 사수에게서 배운 것
나는 첫 현장부터 대관업무와 매우 밀접하게 일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아주 좋은 사수를 만났다.
지금의 내 업무 습관과 기본기는 대부분 그때 물려받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인생에는 몇 분의 롤모델이 있지만, 나는 공통된 습관이 하나 있다.
배울 점이 보이면, 일단 따라 한다.
단점은 굳이 보지 않는다. 적어도 그 시절의 나는 그랬다.
대관업무가 가르쳐 준 것
대관업무를 하다 보면 낯선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게 된다.
점검, 서류 접수, 조사, 교육…
관계의 밀도와 폭이 빠르게 넓어진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한 가지 질문을 계속 붙들었다.
“어떻게 하면 첫인상이 좋을까?”
“어떻게 해야 나를 믿고, 다시 만나고 싶어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간을 단축시키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했다.
첫인상은 전략이다
나는 자기소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신입 시절에는
→ 당차고, 힘차고, 씩씩하게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면
→ 상황에 맞게, 역할에 맞게
자기소개는 단순히 “나는 누구입니다”가 아니다.
이 사람과 내가 어떤 관계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첫 제안서다.
명함 한 장이 인맥은 아니다
사회초년생 시절의 나도 그랬다.
명함을 받으면 저장부터 했다.
“인맥 하나 추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분명히 깨달았다.
인맥은 저장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진짜 인맥은 두 가지 중 하나일 때 만들어진다.
내가 그 사람과 동등한 가치가 있을 때
내가 그 사람에게 필요성이 있을 때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늘 말한다.
인맥 만들기 전에, 먼저 실력을 만들어라.
필요에 의해 연결된 관계는 오래간다.
이 점을 너무 늦게 알았다.
먼저 웃고, 먼저 다가가라
또 하나 내가 몸으로 배운 것이 있다.
안면이 있든, 처음 보든
내가 먼저 일어나서 웃고 다가간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볼지 고민하기 전에,
내가 먼저 반가움을 표현한다.
신기하게도,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소주잔 90잔의 기억... 상상일 수도 있다.
첫 직무교육 때의 일이다. 전체인원이 90~100명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교육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1대 1로 소주잔을 들고 다가가며 인사했다.
소주잔 기준으로 90잔은 마셨던 것 같다. 물론 살아남기 위한 속임수도 분명 있었다.
이름을 외치고, 웃으며, 다시 인사하고…
솔직히 말하면 중간에 다리가 풀렸다.
하지만 그때의 인상은 오래 남았다.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다.
부르면, 일단 갔다
나는 개인 시간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나를 필요로 해서 부르면, 일단 간다.
어디든 갔다.
지역도 가리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선택들이 신뢰를 쌓는 자산이 되었다.
물론 전제가 있다.
기본 업무는 반드시 잘해야 한다.
이게 빠지면 모든 것은 허상이다.
결국 사람이다
대관업무든, 조직 내 협업이든 본질은 같다.
상대가 느끼게 해야 한다.
나는 당신에게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당신에게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다
이 두 가지가 전달되면, 상대에게 나는
“일단 반가운 얼굴”로 자리 잡는다.
그다음부터가 업무의 시작이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할 것
오늘 만난 이 사람도
나처럼 성장한다.
언젠가는
고객이 되고
파트너가 되고
동료가 되고
임원이 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이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지금의 인연이, 미래의 자산이다.
마지막으로
솔직히 말한다.
이 방식, 쉽지 않다.
많이 힘들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무조건 따라 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는 그렇게 버텼고,
그렇게 관계를 쌓았고,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이 글은 처방전이 아니다.
그저 한 안전인의 성장 기록이다.
따라 할 사람만, 참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