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오기 전에 부탁해요
날씨가 유난히도 맑았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커피 한 잔과 함께 병원에 출근해 병동에 다다랐다. 오늘의 근무자들 옆에는 담당 환자들의 방 호수가 나란히 적혀있는데, 오늘은 세 명의 환자를 담당하는 날이었다. 그렇게 전날 밤 근무를 한 동료 간호사들에게 인수인계를 받은 후, 오늘 하루 동안의 대략적인 스케줄을 머릿속으로 차근차근 정리하며 인계받은 노트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날의 환자 1은 오늘 검사가 있는 날이니 아침에 한 번 더 검사일정을 되짚어주고, 혹시 궁금한 것이 있는 지를 다시 물어 혹시 모를 불안감을 확인하는 것이 오전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또 환자 2는 특별한 일정은 없지만 투약 중인 약물이 많아 시간을 잘 배분하는 것이 필요했었다. 환자 3은 밤새 구토와 설사를 했다는 인계를 들었기 때문에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거나 혹은 복통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고 처치를 해줘야겠다는 대략적인 업무를 정리했다.
세 명의 환자 중 환자 2는 70대 남자 환자였는데, 병원에 입원을 해 치료를 받은 지가 어느새 2달이 넘어가는 환자였었다. 나이가 어린 환자들은 대부분 병원생활이 길어짐에 따라 지루함과 갑갑함을 잘 견디지 못하고 종종 외출 혹은 외박을 신청하여 바깥바람을 종종 쐬고 오기 마련이다. 아무리 재밌는 게임, 좋아하는 영화가 있더라도 병원생활을 힘들어하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반면,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환자들은 병원생활에 전반적으로 조금 더 익숙하기 때문인지 혹은 연륜으로 잘 극복하는 것인지 상대적으로 병원생활의 괴로움을 겉으로 표현하는 빈도의 수가 현저히 적다. 하지만 예전에 담당했던 한 50대 환자는 내게 "병원생활 초반에나 외출, 외박이 즐거웠지 나중에는 오히려 고문 같아.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걸 아니까"라고 말하기도 하니 그 답답함은 표현을 더 많이 하는지 적게 하는 지의 차이일 뿐, 결국은 다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다.
다시 환자 2로 돌아가서, 70대의 남자인 환자 2는 길어진 병원생활을 가족들, 특히 손주들을 통해 해소하는 듯했다. 병실문을 열고 들어서면 내게 종종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주들이 새 옷을 입고 찍은 사진, 놀이터 혹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장난스러운 사진들을 보여주며 손주들의 이름, 나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한참 동안이나 설명을 해주고는 했었다. 그날 아침도 손주들의 안부를 물어야겠다 생각하며 방에 들어서자 들뜬 표정으로 나를 반갑게 맞아주며 지난 주말은 쉬었는지,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아침에 확인해야 하는 사항들과 투약을 마무리하고 방문을 나서기 전에 환자에게 혹시 오늘 방문이 예정된 사람이 있는 지를 물었다. 그러자 환자는 손주 2명이 오늘 방문을 할 예정이라고 대답하며 말끝을 흐리더니 손주들이 오기 전에 콧줄을 뺄 수 있는 지를 물었다. 환자 2는 식사를 잘하기 어려워 비위관이라고 하는 긴 투명한 튜브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쪽 콧구멍으로 들어가 목구멍을 통해 위까지 이어지는 긴 관을 통해 영양을 공급하는 중이었다. 쉽게 움직이거나 빠지면 곤란하기 때문에 눈으로 보기에도 꽤 긴 길이가 한쪽 콧구멍을 통해 나와있고, 의료용 테이프로 고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손주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듯했다.
환자에게 "빼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아직은 콧줄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콧줄을 넣어야 하고, 그게 불편할 텐데 그래도 괜찮다면 빼줄 수 있어요."라고 대답하자 환자는 조금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고, 인사를 마친 후 방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