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실수로 [32. 유럽 간호사의 근무표]가 브런치북에 엮이지 않아 따로 링크를 걸어 첨부합니다.
https://brunch.co.kr/@decemberineu/39
유럽에서 간호사로 일한다는 소식을 들은 한국 간호사 지인들은 내게 얼마나 좋은 지를 종종 묻는다. 아무래도 최근 한국에서도 다양한 이유로 인해 해외 간호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도 하고, 해외이민 자체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미 지난 몇 편의 글들에서 유럽 간호사로서의 삶의 긍정적인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으므로, 이번엔 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민생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하지만 글쓰기에 앞서, 난 고작 유럽으로 이주한 지 몇 년이 채 되지 않았고 또 다른 직업으로서의 생활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 그렇기에 그저 누군가의 일기를 엿보듯 가볍게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먼저, 유럽에서의 생활에서 느껴지는 단점은 첫 번째로 좋은 컨디션의 집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있다. 한국에서 자취방을 구할 때의 고려사항은 대중교통이 가까이에 있는지, 방이 넓은 지, 관리비가 얼마인지, 해가 잘 드는 곳인지 등에 대한 것들이었다면 유럽 현지에서는 먼저 렌트를 할 것인지 셰어를 할 것인지가 그 첫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은 전세가 아닌 월세 혹은 매매가 부동산 시장의 다수를 차지하는 데, 초보 이민자가 바로 자가를 갖고 시작하기란 쉽지가 않다. 예산이 충분하더라도, 내가 정말 정착하고 싶은 나라 혹은 도시인지 그리고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한국과는 차원이 다르게 무거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은 이동이 보다 수월한 렌트 혹은 셰어로 거주를 시작하는데, 렌트란 말 그대로 아파트 혹은 주택을 나 혼자 혹은 가족과 함께 빌려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화장실, 부엌, 거실 그리고 방을 다른 이 없이 임대인만이 사용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편할 수밖에 없다.
반면 셰어는 주택 혹은 아파트를 방 단위로 나눠 사용하는 것으로 보통은 방을 혼자 혹은 다른 이와 사용하고, 주방, 화장실, 거실 등을 타인과 함께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생활에 있어서는 최근 한국문화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며 김치를 사 먹는 (심지어는 레시피를 찾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외국인들도 심심치 않게 보이지만 역시나 서로의 생활패턴이 다르거나 혹은 문화적 차이로 인해 다툼이 생기기도 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내가 예전에 임시로 거주하던 집에 함께 셰어를 하며 살던 사람은 종종 다른 입주자들의 음식을 먹기도 하고 혹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매번 새로운 데이트 상대를 데려와 밤늦게까지 시끄럽게 하기 일쑤였다. 내가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렇듯 불편한 일들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외에도 온수를 쓰면 쓸수록 전기세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샤워시간이 길어지거나, 혹은 전기로 돌아가는 세탁기를 자주 사용한다거나 하면 집 분위기에 따라 따가운 눈총세례를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렌트야 말로 최선의 선택일까 하면 그것도 그렇지는 않다. 우선 한국과 비교해 높은 수준의 공과금을 혼자서 오롯이 충당해야 하고, 또 첫 집을 구하는 경우라면 그 과정 역시 결코 쉽지 않다. 월셋집을 얻기 위해 소득증명서, 최근 3개월간의 소비내역 증명서, 전 집주인에게 요청해야 하는 세입자 추천서 등등 끝도 없는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요청하고, 기다리고 또 정리하다 보면 부동산을 통해 집을 둘러보고 계약서를 쓰기만 하면 되는 한국이 그리워 귀국 편 비행기표를 찾아보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내가 사는 지역은 렌트할 집을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 월세방을 직접 볼 수 있는 날에 수십 명의 예비 세입자들이 방을 보러 줄을 서서 들어가기도 한다. 그럴 경우 당연히도 소득이 높거나, 직장이 안정적인 경우 순으로 입주서류를 요구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고소득자가 아닌 경우 서류 제출을 요청받기 까지도 오랜 기간이 걸리고 제출을 하더라도 이렇다 할 답을 얻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