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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cember 디셈버 Oct 25. 2024

34. 유럽 간호사의 단점-2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두 번째로는, 아무래도 모든 것들을 새로이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게는 신분을 증명하는 것부터 인간관계까지, 예를 들어 사는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때, 한국이었다면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하거나 혹은 네이버에 검색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업체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구글 검색을 하더라도 어디에 연락을 하고 어떠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통 도움을 얻기 위해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거나 혹은 메일을 보내고 기약 없이 한참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생존”을 위해 두루두루 이웃을 마주칠 때마다 인사도 하고 다니며 “적극적이고 사교적인 사람” 행세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원체 성격이 낯을 가리더라도 근처 카페나 약국을 방문할 때마다 사장님 혹은 직원들에게 안면을 터두고, 지나갈 때마다 눈웃음으로 인사를 하게 된다.


일례로 점검을 위해 내가 살던 동네에 정전이 된 적이 있었는데, 사전에 통지를 받지 못해 집에서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데우던 중 전자레인지가 멈췄었던 적이 있다. 처음엔 전자레인지가 고장이 난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냉장고에도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리저리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지만 이렇다 할 뉴스기사나 알림은 없었고 결국 아파트 입구로 내려가 담배를 피우고 있던 주민에게 인사를 하며 물었다. "우리 집에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 같은데 혹시 아는 거 있어?" 그러자 그 주민은 "아, 이 근처가 모두 정전이고 지금 수리 중이래"라고 말해주었다. "아, 마침 배고파서 요리 중이었는데 옆 동네로 커피나 마시러 가야겠다. 고마워, 다음에 또 봐"라고 인사를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또, 병원에서 근무를 하면서도 한국에는 없는 GP 시스템에 대해 혼란스러운 적이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병원에서는 환자가 퇴원을 하게 되면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퇴원약을 지어 보내준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 환자의 상태가 호전이 되고 퇴원이 결정되면 입원해 있던 동안 그 환자를 담당했던 의사가 환자의 퇴원약에 대한 처방전을 작성해 주고 그 처방전에 따라 병원약국에서 퇴원약을 조제해 병동으로 내려주면, 간호사가 한 번 더 약물의 수량 및 처방전과의 대조를 통한 확인을 거쳐 환자에게 전달해 주고 간단히 이 약은 어떤 약이고 언제 먹어야 하는 지를 설명해 챙겨주는 형태이다.


그렇지만 현지에서는 담당의사가 환자의 처방전을 작성해 주면, 간호사가 아닌 병동의 약사가 약물의 수량 및 처방전을 대조해 확인을 하고 약물에 대한 복약지도를 해준 다음 환자가 병원 내의 약국에서 약을 타가리 지 혹은 집 근처의 약국에서 약을 타가리 지에 대해 물어본다. 환자가 만약 원내약국에서 약을 타가겠다고 한다면 병동약사가 원내약국의 약사에게 처방전을 전달하고, 원내약국의 약사가 약을 조제해 환자에게 전달한다. 종종 어떤 환자들은 집 근처 약국에서 약을 타겠다고 하면, 약국의 이름 혹은 주소를 물어보고 병동약사가 직접 집 근처 약국의 약사에게 연락을 취해 처방전을 해당 약국으로 바로 보내준다. 퇴원 후 환자가 동네의 약국으로 방문하면 그 약국의 약사가 퇴원약을 챙겨주기 때문에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간호사는 퇴원약에 관여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러한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한국과는 다른 퇴원 절차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을 모두 다시 배워야 했었다.


셋째로는, 역시 문화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들이 어려웠다. 예를 들어, 환자가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식사를 잘하고 있는지 몸무게가 급격하게 빠지고 있지는 않은 지 등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아침은 뭘 얼마나 먹었는지, 간식은 먹었는지 등에 대해 물어보고는 한다.


한국에서는 보통 "입맛이 없어 국에 밥을 좀 말아서 반 정도 먹었어"라고 말씀하시거나, "그냥 김밥 한 줄 먹었어"라고 이야기를 하시면 보통 어느 정도의 양을 섭취했고, 대략적으로 김밥에 어떠한 재료가 들어가는지에 대해 알기 때문에 쉽게 영양섭취가 부족한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식문화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I had some porridge" 혹은 "I drank 4 cans of 7 up this morning"이라고 말한다면 porridge (보통 아침식사로 많이 먹는 오트밀죽 혹은 귀리죽인데, 따뜻한 우유와 함께 먹는다)가 무엇인지, 7 up (한국의 사이다 같은 투명한 탄산음료)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지 못하던 초반에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이것이 적절한 지 아닌 지에 대한 판별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동안은 방앗간처럼 쉬는 날에는 마트에 가 음식들의 이름 그리고 많이 쓰이는 상품명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갖고는 했다. 이제는 환자가 아침으로 porridge를 먹었다면 보통의 아침식사를 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고, 당뇨가 있는 환자가 오전에 벌써 4캔의 탄산음료를 마셨다면 적어도 설탕이 아닌 대체당이 들어있는 음료 혹은 탄산수로 바꿔볼 것을 제안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아직까지 현지에는 종이차트를 사용하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의 병원은 내가 아는 한 많은 부분이 전자시스템으로 바뀌었고, 종이에 수기로 환자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는 것은 학생 때 교수님들께나 들을 수 있는 옛날(?) 이야기였다. 내가 한국의 병원에서 근무를 하던 시절에만 해도 환자들에게 설명을 하고 서명을 받는 동의서 정도가 종이형태로 남아있었지 (그마저도 태블릿에 익숙한 젊은 환자들은 태블릿을 통해 설명을 하고, 전자펜을 이용해 태블릿에 바로 서명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컴퓨터만 있으면 환자의 기록을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아직 종이로 차트를 정리하는 부분이 많이 있어 초반엔 환자의 기록을 일일이 파일을 뒤져 찾아야 하는 것이 어려웠다. 게다가 영어를 외국어로 사용하는 나로서는 가끔 필기체나 읽기 어려운 글씨로 적혀있는 글은 주변 스태프들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과의 차이점으로 인해 관점에 따라 내가 생각한 단점이 다른 이에게는 장점으로 느껴질 수도, 혹은 여전히 단점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명확한 건 모두 적응이 된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오늘도 지나가는 동료들을 붙잡고 글씨를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이제는 나중에 한국인 환자가 오면 내가 글씨를 읽어줄 게와 같은 농담을 곁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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