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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국 Nov 01. 2020

그렇게 될 일은 결국 그렇게 된다

feat. 말기 암환자인 시아버지와 함께한 나의 6개월

시아버지가 서울로 오셨다. 

그런데 한 2~3주 못 뵌 사이에 

안색이나 걸음걸이가 너무나 달라지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기력이 쇠하셨다는 말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전보다 많이 안 좋아지셨다는 걸 느낄 수 있었기에 느낌이 좋지 않았고 

 빨리 진료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던 것 같다. 


이틀 뒤 예정된 검사를 받고 진료를 보러 들어간 우리에게 

교수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항암을 권유하지 않았던 것은 

평균적으로 시아버님의 연세의 노년층에서는 면역력이 낮아서 암이 발생할 확률이 높을지라도 

진행속도가 느린 것이 대부분이라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오셨기에 항암치료가 

크게 의미 없을 거라 생각해 권유하지 않았던 거라고. 

하지만 시아버지는 진행속도가 너무 빨라 처음 오셨을 때보다 

복막에 전이된 암세포가 훨씬 많아졌고 

배가 불러오는 건 단지 복수 때문이 아니라 복막에 퍼지는 암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해주셨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이 되기에  지금이라도 항암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씀과 함께 

스텐트 시술한 곳이 막히진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해주시며 

집에 가서 항암에 대해 의논해보고 입원 결정을 해달라는 말로 그날의 진료가 마무리되었다. 




사실 점점 쇠약해져 가는 시아버지를 처음엔 호스피스 병동에 모셔야 하는지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호스피스 병동에 대해 알아볼수록 우리가 처한 현실과는 괴리가 컸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호스피스 이용 가능 기간은 법적으로 60일. 

그러나  대부분 호스피스 병동 입원 후 60일 이내 돌아가신다고 한다. 

하지만 만약 60일 넘게 살아있게 된다면 그 후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기 암 환자의 경우 사실상 가정에서 보호하는 것이 어렵고

조금이라도 열이 나거나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 응급실로 쫓아가야 한다. 

충수염으로 응급실에 갔을 때도 차례차례 들어오는 환자 두 분이 중증 말기암 환자셨다. 


호스피스 전문기관에 들어가는 자체가 슬픈 일이고 

암이라는 큰 병과 싸우다가 말 그대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가는 곳인데 

가면서부터 ‘60일이 지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해야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 아닌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고 

잔인하다는 생각과 함께 몇 번이나 한숨을 짓게 했다. 


결국, 우리는 달리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고  

항암 치료를 1차라도 시도해보기로 하고 시아버지의 입원 날짜를 조율했다. 

입원 날짜를 조율하며 그래도 일단 호스피스 병동에 상담을 한 번쯤 가봐야 할 필요는 있다는 생각에 

예약 전화를 했는데 상담도 최대한 빠른 날짜가 3주 정도 뒤였고 일단 상담 후 입원 대기에만 최소 2주 ~최대 4주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대체 호스피스 병동에 아다리 맞춰 입원하는 사람이 있긴 한가요.
 

이래저래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었지만 우선 호스피스 병동은 예약 날짜를 잡아 놓았고 

남편은 시아버지의 항암치료를 위한 입원절차를 진행했다.

  

당시 설명을 듣기론 일반적으로 췌장암에 쓰는 항암제는 두 가지로  

폴피리녹스 또는 젬시타빈+아브락산인데 

폴피리녹스는 만75세 이상 고령의 환자들에게 권장하지 않으며 

시아버지는 두 번째로 이야기한 항암제가 투여 될 거라 했다. 


사실 그렇게 설명을 들을 땐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검색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가더라도 동의서에는  Y/N 중에 Y만을 선택하고 사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

환자와 보호자들이기에 우린 입원과 항암을 결정하고 그 후로는 병원 매뉴얼대로 움직였다. 


입원을 하고 그의 쇄골 근처엔 포트가 꽂혀졌다. 

그리고 항암은 1차도 아닌 1회에서 큰 부작용으로 인해 중단해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혈액 수치 상 안 좋아 지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기저질환으로 가지고 있던 부정맥이 심해져 새벽 3시경 

시아버지의 심박 수는 40대까지 떨어졌고 보호자를 부르는 다급한 전화에 

남편은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날은 다행히 안정된 것을 보고 돌아올 수 있었지만 

담당 의사 선생님은 3차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최종목적은 치료이며 

더이상 해줄 것이 없는 환자에게 병상을 내어줄 수 없으니 요양병원을 빨리 알아보고 전원하라 이야기했고 우린 급하게 요양병원으로 가야했다. 

그리고 시아버지는 대학병원 퇴원 6일, 요양병원 입원 6일만에 돌아가셨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나는 호스피스 상담 예약 시간이 되었는데

오지 않아 연락했다는 담당 간호사의 전화를 받았고

덤덤하게 어제 돌아가시고 지금 장례 이틀째라고 이야기하자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전화기 너머 그녀에게 도리어 괜찮다고 말했던 것 같다.




병원에서 말한 6개월. 

병원에서 말한 시간은 참 정확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렇게 될 일은 결국 그렇게 된다'는 말처럼 

 우리는 항암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지만 결국 받게 되었고 

항암제를 투여한 지 3주 만에 시아버지는 길을 떠나셨다.


이렇게 6개월간의 함께 살기는 끝이 났고 

한 사람의 인생은 80여 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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