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을 견디는 방식

by Late Realizations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을

여전히 좋아하지 않는다.


괜찮아졌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날은 지금도 불안하고,

지금도 설명이 필요해진다.


다만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그 불안을

아무 말로 덮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예전의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을

참지 못했다.


그래서

그날을 의미 있게 만들려고 애썼고,

그럴듯한 말로 하루를 포장했다.


지금은 준비 중이라거나,

지금은 쌓는 중이라거나.


하지만 그런 말들은

하루를 버티게 해주지는 못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

문제가 아니라,

그날을 견디지 못하고

쓸데없는 선택을 하는 게 문제라는 걸.


불안해서 연락을 하거나,

조급해서 결정을 하거나,

괜히 속도를 내다가

다시 돌아오는 선택들.


나는 그런 걸

너무 많이 반복해 왔다.



그래서 기준을 바꿨다.


오늘 하루가

괜찮았는지를 묻는 대신,

오늘 하루가 나를 더 망치지는 않았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도 괜찮다.

다만,


이 불안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선택을 하지는 말자.


그 기준 하나만 남겼다.



신기한 건

그 기준을 지킨 날들이

나중에 돌아보면

결정적인 분기점 근처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에는

아무 일도 없는 날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날 덕분에 하지 않은 선택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을

좋아하게 된 건 아니다.


다만

그날을 이유로

스스로를 망치지 않게 됐다.


그 정도면

나에게는 충분하다.



혹시 당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 앞에서

조급해지고 있다면

이 질문 하나만 남기고 싶다.


오늘 하루는

무엇을 얻지 못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아서

지켜낸 게 있는 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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