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무지

생존을 먼저 선택했던 사람의 판단

by Late Realizations

나는 돈에 대해 오래도록 무지했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걸 배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은 늘

조금 더 안정된 상태에서,

조금 더 앞이 보일 때

배워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내 삶은

그 ‘조금 더’가 오기 전에

다음 판단을 요구하는 순간들로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돈을 계산하기보다

상황을 넘기는 선택을 먼저 했다.

얼마를 벌 수 있는지보다

어디에 남아야 하는지,

지금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가

항상 앞에 있었다.


그 선택들이

항상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때의 나는

돈보다 생존을 먼저 놓고 판단했다.

수익보다

무너지지 않는 쪽을 고른 셈이다.


지금 와서 보면

그건 분명 무지였다.

돈을 몰랐고,

돈을 다루는 감각도 없었고,

돈을 설계할 언어도 없었다.


하지만 그 무지는

게으름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사람은 늘

가장 급한 문제부터 풀기 마련이니까.


나는 돈을 벌기보다

버티는 법을 먼저 배웠다.

투자보다

지속을 고민했고,

성장보다

붕괴를 피했다.


그 결과

시간은 꽤 흘렀고,

나는 이제야

돈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요즘의 나는

돈을 ‘증명’의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잘 살고 있다는 표시도 아니고,

뒤처지지 않았다는 변명도 아니다.

돈은 그저

이 삶을 어느 정도의 긴장도로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조건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공격적으로 벌지 않는다.

한 번에 만회하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다시 무너지지 않는 흐름을

조심스럽게 만든다.


뒤늦게 돈 이야기를 꺼내면

왜 이제 와서냐는 질문을 듣는다.

너무 늦은 거 아니냐고,

이미 기회를 놓친 거 아니냐고.


하지만 나는 안다.

돈을 일찍 배웠다고 해서

모두가 잘 다룰 수 있었던 건 아니라는 걸.

그리고

살아남는 법을 모른 채

돈부터 만졌다면

나는 더 크게 잃었을 거라는 것도.


이 글은

성공담이 아니다.

돈을 잘 벌게 된 이야기 역시 아니다.

다만

돈에 대해 무지했던 시간을

이제는 숨기지 않겠다는 기록이다.


나는 여전히

빠르게 벌지 않는다.

대신

무너지지 않는 판단을 고른다.

지금의 나에게

그 선택이

가장 비싼 선택이기 때문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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