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직업을 찾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라는 사람을 만들고 있는 걸까
돌아보면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 생각이
행동보다 항상 조금 더 앞서 있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오래 생각했고,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시간이 먼저 흘러가 버리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내 삶은 종종
조금 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법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면 된다.”
“바로 행동하라.”
이런 말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나 역시 알고 있었다.
다만
말로 아는 것과
몸으로 움직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막연한 자신감 하나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잘 되겠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자신감이라기보다는
근거 없는 낙관에 가까웠다.
방향도 분명하지 않았고
방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삶에서 하나씩 잃어가는 것들이 생기고
지켜야 할 것들이 늘어나면서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조금 더 진지하게 바라보게 된 것이다.
요즘 나는
작은 것부터 하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만 하던 시간을 지나
조금씩 행동을 쌓아가는 쪽으로.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의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나는 지금
어떤 직업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직업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방향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
예전에는
사람에게 하나의 직업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의사, 변호사, 회사원, 사업가처럼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이름 하나가 있어야
삶이 안정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 변화는 이제
몸으로 체감될 정도로 가까이 와 있다.
특히 AI가 만들어내는 변화 속에서
하나의 직업만으로
평생을 설명할 수 있는 시대가
앞으로도 계속될지 확신하기 어렵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굳이 나를
하나의 직업 안에 못 박아 둘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직업을 갖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느냐일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람의 생각과 방향이
조금 더 분명해진다면,
그 위에 얹히는 직업들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일 수도 있다.
어떤 순간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어떤 순간에는 기획을 하는 사람이 되고
어떤 순간에는
누군가의 문제를 함께 풀어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직업을 찾는 일보다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분명하게 만드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생각만 하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으로서.
어쩌면 나는 아직도
완전히 늦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더 이상
막연히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지금의 나는
조금씩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