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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Jul 24. 2024

중대형견은 입마개 필수? 바뀌어야 할 건 '편견'

행동 아닌 존재만으로 규제한다면 차별... 서서히 인식 바뀌기를

▲  개그맨 이경규의 유튜브 채널 '르크크 이경규'에 업로드된 '존중냉장고'편 영상. ⓒ 르크크 이경규


최근 '진도믹스, 중대형견 입마개 착용'에 관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지난 5월 10일 개그맨 이경규의 유튜브 채널 '르크크 이경규'에 '존중냉장고' 영상이 공개된 것이 계기였다.


과거 MBC 인기 프로그램 '양심냉장고'의 진행방식을 다시 가져와서, 타인을 존중하는 행동에 상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5월 10일 자 영상에서는 반려견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촬영했는데, '존중'의 기준으로는 펫티켓 3가지라며 '매너워터(반려견 용변 처리로 물을 뿌리는 것)', '인식표 착용', '입마개 착용'을 설정했다.


영상 공개 후 '진돗개 혐오'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제작진 측은 유튜브 채널 공지 메뉴를 통해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과연 영상이 어떤 내용이길래 사과해야 했던 걸까.


진돗개만 '입마개' 언급, 더 큰 품종견엔 "예쁘다" 찬사


24분 분량의 영상은 공원에 반려견과 함께 산책 나온 시민들을 관찰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카메라는 반려견과 보호자의 동선을 따라가며 촬영했고, 개그맨 이경규를 포함한 출연자들은 반려견이 인식표를 착용했는지, 보호자가 배변을 잘 치우는지 평가했다.


여기까지는 반려견 보호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내용의 공익적 영상으로 보인다. 강아지가 실종되는 상황에 대비해 인식표를 필수적으로 착용해야 하고, 산책 중 배변은 보호자가 잘 처리해야 하는데도 때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입마개 착용'에 관한 부분이다. 영상 초반부에서 이경규는 "진돗개는 입마개 안 해도 괜찮아요"라며 입마개 착용의 법적 의무를 설명하기도 했다. 진돗개는 법적으로 입마개 의무 견종이 아니며, 5대 맹견이 의무 견종에 해당한다는 내용도 이어졌다. 그런데도 영상에서는 진돗개가 나온 장면에서만 "입마개를 안 했다"고 지적했고, 이에 '종 차별'이라고 비판받았다.


▲  개그맨 이경규의 유튜브 채널 '르크크 이경규'에 업로드된 '존중냉장고'편 영상. ⓒ 르크크 이경규


만약 크기가 큰 중대형견이라서 입마개를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면, 더 큰 개가 출연할 때도 입마개 착용 여부를 언급해야 했다. 그러나 앞서 나온 진돗개보다 더 큰 덩치의 품종견, 사모예드로 추정되는 개가 나온 장면에선 입마개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그림 같다, 예쁘다"는 찬사만 이어진다.


이경규는 영상 중반부에서 "내 개가 성격이 안 좋다, 그러면 소형견 대형견 떠나서 입마개 착용해주면 좋다"라며 한 번 더 입마개 착용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공격성'이 있는 강아지는 입마개를 착용하여 사고를 예방해주면 좋다는 뜻이라 타당한 말이다. 그러나 정작 영상에서는 공격성 여부는 살피지 않고 개의 품종이나 외모를 평가하는 장면이 대부분이었다. 영상의 취지와 내용이 서로 충돌하여 자가당착이 된 셈이니, 종에 관한 편견을 담았다는 이유로 비판받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스몰독 신드롬'에도... 중대형견 보호자만 듣는 말


'조심하자는 말이 뭐가 문제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니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니냐'는 뜻이겠지만, 현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실제 상황을 외면한 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남성 여성 서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는데 뭐가 잘못됐냐'는 말이 오랜 시간 여성 혐오와 성차별에 맞서온 사람들에게는 힘 빠지는 소리로 들리는 것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늘 차별받는 쪽이 더 조심할 것을 요구받고 자신의 정당성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더 자주 처하게 된다. 반려견 보호자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진돗개, 중대형견은 입마개 좀 하고 다니라'는 말을 중대형견 또는 진도믹스 보호자는 이유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1년 내내 듣는다. 큰 개가 무조건 사납다거나 사고를 많이 낸다는 근거는 없고, 오히려 소형견일수록 보호자가 통제하지 않고 마냥 귀여워하는 경향 때문에 더 사나워지고 입질을 한다는 연구결과('스몰독 신드롬')가 있는데도 말이다.


▲  유기견 단체에서 입양한 반려견 밤이.


큰 개를 무서워하는 반응 자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과, 그 감정에 기반해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지는 따로 따져야 할 별개의 사안이다.


만약 보행자가 지나가는 개가 커서 무섭다면 '내가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니 줄을 꽉 잡아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반려견이 없는 일행이 '먼저 지나갈 테니 잠시 비켜줄 수 있느냐'라고 묻거나, 반대로 '먼저 지나가라'고 반려견 보호자에게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려견 보호자라면 이를 거절할 이유가 없고, 서로 아무런 문제 없이 가던 길을 가면 된다.


하지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상대에게 강압적인 요구를 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만약 당신이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누군가 다가와서 '당신이 우리보다 덩치가 커서 두렵다. 우리로선 당신이 문제를 일으킬지 아닐지 알 수 없으니, 미리 수갑을 차고 다녀줄 수 있을까'라고 요구한다면 어떨까. 사람에게는 무리한 요구인데 개라고 해서 괜찮은 걸까.


성소수자, 무슬림을 보고 '저 사람들을 보면 내가 무서우니 저들을 격리해달라'라고 하면 문제적 발언이라는 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행동이 아니라 정체성만 놓고 규제한다면 차별이자 혐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근거 없는 규제가 해결책도 아니다. 해외에서는 강아지의 크기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드물고 오히려 한국에서 산책 중 시비가 발생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응도 있다. 이를 놓고 보면 결국 진도믹스, 중대형견에 관한 문제도 입마개 강제 등 규제가 아니라 편견을 바꿔야 할 사안인 셈이다.


미디어가 편견을 퍼트릴 때, 폐해는 약자를 향한다  


유튜브에는 자극적인 영상도 많고, 재미를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시청자에게 편견을 전달하는 문제도 빈번히 지적됐다. 미디어를 통해 편견이 퍼질수록 폐해는 약자를 향하기 마련이다.


교통사고 장면을 다루는 '블랙박스' 관련 영상에서는 안전 운전 상식을 주로 담지만 여성 운전자가 사고의 원인이라며 '김여사'라고 여성을 조롱하는 경우도 있다. 정작 통계에서는 남성 운전자의 사고 발생률이 3.3배 높았다(관련기사 : '김여사' 어쩌구... 한국 남자들 참 찌질하다 http://bit.ly/Pjt0PA)


성범죄 허위 신고가 20~50%에 육박한다는 '꽃뱀' 담론도 유튜브와 각종 소셜미디어에 넘쳐나지만, 실제 통계를 살펴보면 편견이었다(관련기사: 성범죄 18~50%가 '꽃뱀 자작극'이라고? https://omn.kr/ooxd).


노키즈존이 당연한 처사라며 여성 혐오('맘충')나 아동 혐오를 담은 영상도 유튜브에 많지만, 경찰청이 2016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종업원에 대한 폭언과 영업방해 등 '갑질 횡포' 가해자의 89.6%는 남성, 특히 전체 중 96.2%는 성인이었다고 한다.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의 사회자인 설채현 수의사는 2021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진돗개가 다른 견종에 비해 개물림 사고가 독보적으로 높다는 통계가 없"고 "행동학적으로 더 많은 문제를 보이느냐. 이것도 아무런 통계가 없"다고 말했다. '큰 개는 사납다'는 편견을 큰 고민도 근거도 없이 담아 비판받은 '존중냉장고'가 다음 편에서는 사회의 편견을 깨는 시도를 부디 보여주길 바란다. 반려견 문화에서만 하더라도 여성 보호자가 강아지 산책 때 듣는 막말, 품종견이 아닌 믹스견을 보는 사회의 시선 등 방송 소재로 꼬집어 볼 편견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  유기견 단체에서 입양한 반려견 밤이. 엘리베이터 탑승시 구석에 앉아 기다리는 연습은 도심에서 살아가기 위해 강아지에게 필수적이다. 누구나 그렇듯 연습을 통해 배워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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