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수 Dec 26. 2018

위안부 생존자·배우·유튜버까지, 여성이 말하는 ‘몸’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당신에게 권하는 이유

매년 연말이 되면 떠올리게 되는 말이 있죠. 새해가 되면 실천에 옮기리라 다짐하게 되는 말. 평소 느슨해졌던 스스로를 다시 다잡아보자는 취지로 되뇌이게 되는 말들.


'아, 다이어트 해야지. 살 빼야지. 내년부터는 꼭 운동해야지...'


내 몸이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혹은 너무 살찐 것 아니냐는 주변의 핀잔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연말 건강검진 결과로 나온 몸무게 수치를 보고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그런데 그러다가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죠. 이게 내가 원해서 운동하고 싶어지는 건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걱정돼 떠밀리듯이 운동하러 헬스장 등에 발길을 옮기게 되는 건지... 그 경계가 너무 애매하고 흐릿하다는 걸.


최근 듣게 된 팟캐스트가 있습니다. 팟캐스트 방송의 이름은 '말하는 몸'인데요. 록산 게이의 책 <헝거>를 출연자가 낭독하고, 이어 출연자가 자신의 몸에 관한 일화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방송입니다. CBS에서 제작 지원을 했고, 매주 2회씩 수요일과 토요일에 다음 방송분이 공개된다고 합니다. 한 회마다 10분 안팎이라 길지 않아서 듣기에 부담도 크지 않아요. 어떤 내용인지 살펴볼까요?


<헝거>를 낭독하고, 자신의 몸에 대해 말하는 여성들의 방송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헝거>는 미국의 칼럼니스트이자 <나쁜 페미니스트>를 쓴 작가 록산 게이의 책입니다. <헝거>에는 저자인 록산 게이가 여성으로 살면서 겪은 일들을 고백한 내용이 담겼는데요. 그는 어린 시절 성폭력을 겪고, 본인의 몸집이 커지면 남성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해질 거라 믿고 먹고 또 먹어 키 190cm에 몸무게 261kg, 그야말로 거구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무난한 나날이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성인이 된 록산 게이는 뚱뚱하다는 이유로 경멸과 혐오의 시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게 그저 록산 게이 한 사람의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성이라서 자신의 몸이 욕망 또는 멸시의 대상이 되는 불쾌한 경험 말입니다. 2018년 들어 페미니즘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고백이 나오는 것도 우연이 아닌 듯합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들어봐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최근 '말하는 몸' 방송 4회에는 영화 <아워바디>의 한가람 감독과 배우 최희서가 출연했습니다. 방송 내용 중 일부를 살짝 다듬어 아래에 옮겨봅니다.


배우 최희서 "저는 언제나 도마 위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기사 사진 한두 개 나가기 시작하면, 제 몸에 대한 코멘트를 많이 듣죠. 난 연기하는 사람인데, 내 개성만으로는 배우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걸까. (중략)


(본인 몸매를 두고 사람들이 하는 코멘트에 대해) '배우니까 당연하지' 하는 얘기가 있지만, 나는 연기하는 사람인데 왜 몸을 완벽하게 가꿔야 하는지 고민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배우 최희서 "20대 때는 몸에 자신이 더 없었는데, 지금은 성장한 것도 있겠지만... 저는 그냥 생긴대로 타고난 몸 그대로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요. 사실 보여지는 잣대로 인해 얻는 병이 더 큰 것 같아요. 그렇게 살기엔 인생이 짧다는 생각도 들고."


<아워바디> 한가람 감독 "영화에서 여성의 몸이 보여지는 방식이, 쉽게 말해 '그냥 야해 보이면 어떡하지' 생각해 촬영 감독과 얘기를 많이 했다. 그보다 '강해 보였으면' 했다. 그래서 등-팔 근육이 나타나게 찍은 거고."


우리가 흔히 하는 것과 비슷한 고민을 영화 배우와 감독도 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몸에 대해서, 특히 여성의 몸에 대해서 우리는 왜 이리도 높은 잣대를 갖고 서로 따져보고 주눅들곤 하는 걸까요.


다양한 신체에 대한 인정의 중요성, 그리고...


다시 록산 게이의 <헝거>로 돌아와 보면, 이 책은 록산 게이가 본인의 몸과 경험에 관해 고백한 책이기도 하지만 또한 오늘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내 몸에서 산다는 일'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내 몸에서 산다는 일은 다른 사람을 향한 공감과 동정의 범위를 넓혀주고 다른 사람들 몸의 진실에 대해 알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또한 다양한 신체의 종류에 대한 포용과 인정의 중요성을 확실히 가르쳐주었다고 할 수 있다." - 록산 게이, <헝거> 332쪽 중에서 

뚱뚱하다고 해서, 혹은 너무 말랐다고 해서 누군가 한 사람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선 그런 식의 잣대가 너무 흔해지진 않았나요. '정상'의 기준을 정해두고, 그 선을 넘어간 것들을 비난하는 일이 드물지 않은 요즘입니다.


그런 상황을 돌아보면,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주위에 더 권하고 싶어집니다. 타인에 의해 평가되고 언급되는 게 아니라, 여성이 스스로 본인의 몸과 경험에 대해 공유하고 스스럼 없이 털어놓는 방송이니까요. 이 방송을 계기로, 여성 외모를 재는 기존의 잣대가 다소 누그러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더 많은 사람이 말하고, 극복하고, 당당해질 수 있다면 말입니다.


지금까지 '말하는 몸'에는 위안부 생존자 이용수씨, <헝거>를 번역한 번역가 노지양씨, '탈코르셋' 유튜버 배리나씨 등이 출연했습니다. 가장 최근에 공개된 5화에서는 재독 작가 하리타씨가 본인이 겪은 성폭력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쉽지 않은 고백에서부터 솔직한 경험담까지, 많은 여성이 참여하는 중인데요. 장기적인 프로젝트라고 하니, 앞으로도 진솔한 이야기가 계속될 거라 기대됩니다.


방송은 팟빵 팟캐스트(링크-클릭)에서 방송을 들을 수 있고, 아이폰 등을 사용하는 분이라면 애플 팟캐스트(링크- 클릭)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말하는 몸' 제작진은 록산 게이의 책 <헝거>를 방송에서 낭독할 독자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들어보시고 관심이 생긴다면,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서 '말하는 몸' 계정(@@myhunger_kor)을 찾아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스쿼트, 꾸준히 1년을 했더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