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수 Feb 04. 2019

실수하더라도 자기혐오하지 않기

일을 망치고 혼나더라도 자책을 덜어내는 법

지난 연말, 드디어 운전면허를 따게 됐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해 천천히 주말, 휴가 등의 시간을 이용해서 필기시험, 장내 기능시험, 도로주행 시험 과정까지 무사히 마쳤습니다. 


사실 내가 면허를 따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평생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는 자기혐오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난 면허를 따지 못할 거야, 운전 같은 건 아마 제대로 해내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하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우울증을 앓은 지 2년 10개월 가까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스스로 하는 일종의 시험이라고도 생각했고요. 30대가 되어 면허 따는 게 쉽지 않으려나 싶기도 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주위에 비슷한 시기에 면허 따신 분들도 있었거든요.



운전이라는 게, 운전을 배우는 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다른 많은 분야의 일도 그렇지만, 처음 무언가를 접하는 중에 '혼나고 쩔쩔매면서 배우느냐'와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 조언을 들어가면서 배우느냐'의 차이로 재미를 붙일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갈릴 듯합니다. 운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어요.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해 수강하면서, 친절한 강사도 만났지만 제가 실수를 하자 언성을 높이고 반말을 하는 강사도 만났거든요. 친절하고 여유롭게 조언해주는 강사 옆에서 도로 주행을 할 때는 운전하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자신감도 생겼는데, 다그치고 혼내려는 사람 옆에서 운전하니 긴장해서 정신도 없고 그저 순간순간 상황 대응하기 바빠지더군요. 새해 들어서는 운전면허 학원을 통해 도로주행 연수를 받는 중인데, 이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날 만난 강사는 본인도 느긋해서 운전을 배우는 저도 마음 놓고 운전할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어느 날은 몹시 다그치는 타입의 강사였습니다. 마음이 급해지자 반말로 운전 지시를 하고, 상황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다 싶으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더군요. 


운전석에 앉고 연수 초반부터 시작된 상황이라 불쾌하고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강사의 지적이 나라는 사람을 향한 것이라기보다 내가 행동에 옮긴 운전방식을 향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날엔 지적이 어디를 향하는지 판단해 나의 감정을 분리하는 게 잘 됐는데, 우울증이 심하던 시기엔 이게 잘 안됐습니다. 업무를 하다가도, 혹은 일상생활에서도 지적을 받거나 충고를 들을 때 나라는 인간을 향한 비난으로 착각하기 쉬웠습니다. 심하게 우울하고 자기혐오가 심할 때는 자책이 쉽게 머릿속으로 번집니다.  


그 순간에 즉각 행동이나 말을 고쳐나가면 되는 상황인데도, 나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회의로 돌아설 땐 심각하게 일상생활이 무너지게 됩니다. '난 역시 무능한 인간이야. 민폐나 끼치고...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을 텐데' 하는 생각까지 금방 진행될 때도 있습니다. 


본인의 감정 소모를 줄이고 일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타인의 충고에 마음 다치지 않고 상황을 부드럽게 넘어가려면 때로 한 발자국 떨어져서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 나를 향한 지적이 나라는 사람을 모욕하려는 건지(보통 그런 경우가 아닌데도 그렇게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그저 나의 행동을 교정하길 원해서 해주는 조언인 건지 말이죠. 


물론 실제 상황에선 말처럼 늘 잘 되지는 않습니다. 타인의 상황은 곧잘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도 그게 나의 상황이 되면 침착하기 어려우니까요. 다만 살면서 꾸준히 연습해나가야 할 일 같습니다. 이건 저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입니다. 여전히 서툴지만 최근 운전연수를 받으면서 겪은 일로 느낀 점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울증이 심한 상태라면 너무 본인을 스스로 몰아세우거나 자책하는 버릇에 빠지지 않길 바랍니다. 저도 그런 상태에 빠져 이십 년 넘는 시간 동안 나라는 인간을 미워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여전히 나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나를 덜 미워하고 어느 정도 스스로와 화해하는 과정에 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자책하는 게 습관이 되지 않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보다, 무언가를 못 해내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더 강인한 건지도 모릅니다. 


기껏 이렇게 글로 적었지만 막상 저도 언젠가 다시 실수에 당황해 자책하는 순간을 맞이할지 모릅니다. 중요한 건, 거기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 거겠죠. 우울이나 불안을 느끼더라도 너무 오래 그늘에 머무르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 믿습니다.


이전 11화 너무 심한 자책은 우울을 부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