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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Jan 14. 2018

'우울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편견에 의한 판단, '우울할 만한 사람'과 '안 그럴 사람'의 경계

"이런 농담이 있다. 어떤 남자가 의사에게 가서 우울하다고 했다. '삶은 냉혹하고 잔인해 보여요.' 남자는 의사에게 이 위협적인 세상에서 자신이 혼자인 것만 같다고 했다.


의사는 처방이 단순하다고 했다. '위대한 광대 팔리아치가 마을에 왔습니다. 가서 그를 보세요. 위로가 될 겁니다.'


남자는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생님... 제가 그 팔리아치입니다.'"


영화 <왓치맨>에 나오는 대사다. 여러 방식으로 인용되곤 하는 부분인데, 나는 이 대사를 두고 '우울할 만한 사람'을 나누는 사람의 경계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


어느덧 내가 우울증으로 정신과에 다닌 지 2년이 넘었다. 짧고도 긴 시간이었다. "저 정도면 병원에 꽤 오래 다닌 편인가요" 하고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그런 편"이라고 답해주셨다. 그리고 "속도나 시간이 중요한 건 아니다"라고 선생님은 덧붙이셨다. 우울증은 재발이 잦은 만큼, 짧은 시간에 상태가 좋아지는 것에 중점을 두진 말자고.


지난해 수면제 복용 1년 만에 완전히 수면제 복용을 끊고, 이후 가을이 되는 동안 항불안제 복용량을 줄였다. 지난해 겨울이 되기 전에는 항우울제도 복용량을 점차 줄이고 있다. 당분간은 현재 투약량을 유지하다가, 겨울이 지나 봄이 된 후 상태를 보고 나서 조금 더 약을 줄이는 쪽으로 하자고 상담했다. 2018년의 최종 목표는 약을 완전히 줄이고 상담만 가끔 받는 정도로 지내는 것이다.


우울증 약 복용이 나쁘다고 생각해서 줄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제 약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증세가 완화됐다는 판단 하에 의사와 상담하며 약을 줄여가는 중이다. 약에 관한 편견으로 인해 사람들이 회복할 수 있는데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우울할 만한 사람'과 '아닌 사람'의 경계, 그런 건 어디에도 '없다'


많은 우울증 환자들은 사람의 시선이 두려워 가면을 쓰고 일상을 살아간다

다시 처음 얘기하던 '팔리아치' 광대 얘기로 돌아가 보자. 의사는 우울하다는 남자에게 처방으로 '광대를 보고 웃어보시오'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실 병원에 온 그 남자가 광대 팔리아치라는 건 어떤 걸 말할까.


흔히 '우울할 만한 사람'과 '그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말하곤 한다. 내가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닌다고 솔직하게 고백할 때도, 누군가는 "넌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혹은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닌다니, 전혀 몰랐어"라고 말하곤 했다.


그 사람들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우울할 사람'과 '우울하지 않을 사람'을 나누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글을 쓰게 됐다. 그런 경계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우울할 것 같은 사람은 평소 침울한 표정이 드러나는 사람이고, 우울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은 평소 밝게 웃고 대화를 잘 나누는 사람 정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이 웃고 밝게 지내던 사람도 사실 우울증을 앓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이미지를 깨기 싫어서 애써 내색하지 않다가 상태가 악화될 수도 있다. 사실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주던 배우 로빈 윌리암스마저도 우울증을 앓다가 세상을 떠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많은 우울증 환자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가면을 쓰고 일상을 살아간다. 나도 그랬다. 지난 글에서 털어놨듯이, 잠을 못 자고 밤새 울다가도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웃음을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지내려고 애썼다. 우울증 환자를 바라보는 편견이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다. 힘들 때 힘들다고, 우울할 때 우울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 골든디스크에서 음원 부문 대상을 받은 가수 아이유도 고인이 된 종현을 애도하며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한 바 있다.


"기쁘면 기쁘고 슬플 때 슬프고 배고프면 기운 없고,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당연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티스트가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인 만큼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프로의식도 좋지만 사람으로서 자신을 돌보고 아꼈으면 좋겠습니다. 내색하지 않다가 병드는 일이 진심으로 진심으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중 앞에 나서는 뮤지션의 고충을 털어놨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발언이었다. 나는 더 나아가서 뮤지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기쁘면 기쁘고, 슬플 때는 슬프고, 힘들 땐 힘들어하는 모습이 당연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색하지 않다가 병들고, 그 병마저 혼자 힘들게 끌어안고 살아가는 일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그저 내가 우울증을 겪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디선가 혼자 슬픔을 감당하고 있을지도 모를 다른 사람이 떠올라서다.


우울할 때는 우울하다고, 힘들 땐 힘들다고 말해보세요. 하다 못해 트위터나 페이스북, 주변 사람에게라도 털어놓길 바랍니다. 말한다고 해서 당장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심정의 부담은 조금 덜어낼 수 있을 겁니다. 부디, 혼자 앓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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