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길보라·이현화·황지성이 쓴 '우리는 코다입니다'
'코다'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아는 사람은 아마 아직은 많지 않을 듯하다. '코다'라는 말보다 '농인'이나 '청각장애인'이 비교적 더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코다'는 'children of deaf adults'에서 앞글자를 따와 만든 단어로, 청각장애인을 부모로 둔 사람들을 뜻한다.
음성언어를 주로 주고받는 '청인'들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농인, 혹은 코다는 다소 낯선 존재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코다는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의 삶을 살면서 이미 한국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2월 2일, 문화체육관광부 정례 기자회견 당시 문체부 측은 수어 통역사를 통한 동시통역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또한 차후에도 정부 발표시 수어 동시통역을 늘려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문체부 수어 통역을 맡은 통역사도 '코다'라고 한다.
코다, '침묵의 세계'를 읽어내는 사람들
지난 2015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에서 이길보라 감독은 청각장애인 부모의 삶,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가족 구성원의 관계를 되짚었다(관련 기사 : 침묵 가득한 결혼식장, 그럼에도 모두 행복했다 http://omn.kr/djl9). 제목인 '반짝이는 박수소리'는 손뼉을 부딪혀 박수를 치는 대신, 같은 의미로 손을 들어 '반짝반짝'을 표현하는 제스처처럼 손바닥을 앞뒤로 돌려 보여주는 수어 동작을 뜻한다.
2019년 11월 말 출간된 책 <우리는 코다입니다>에는 이길보라 감독, 수어 통역사이자 언어학 연구자 이현화씨, 장애인 인권 활동가이자 여성학 연구자 황지성씨, 그리고 한국계 미국인 코다 수경 이삭슨씨가 쓴 글이 담겼다.
책에도 영화처럼 이들이 코다로 살며 겪은 경험, 농문화와 청문화의 경계에서 부딪혀야 했던 일들 등이 진솔하게 실렸다. 그 안에는 사람들의 편견에 상처를 입은 사건들도 있지만 농문화를 통한 고유의 경험 또는 코다들과의 만남에서 비롯된 따스한 기억도 녹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코다'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자 자라온 환경과 직업이 모두 다르지만, 청각장애인 부모와 함께 자라면서 겪은 일들이 '코다'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만나게끔 했다는 것이다.
"코다라는 정체성은 어느 정도는 환경을 통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부모의 농은 그들을 사회에서 분리한다. 그런 부모들에게서 농문화와 수어를 배우고 더불어 음성언어 세계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두 세계 '사이를' 횡단한다. 어떤 이들은 코다가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른 이들은 양쪽 모두에 속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둘 다이면서 둘 다 아니다." - 본문 374쪽 중에서
그러니까 '코다'는 음성언어를 쓰는 청인, 수어를 쓰는 농인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코다입니다>의 책 부제처럼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 사이에서' 지내는 셈이다. 이들은 어릴 적 수어로 옹알이를 한 일화, 청인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어린아이일 때부터 부모와 세상 사람들 사이에 서서 '집 보증금' 문제 등을 통역하느라 일찍 철이 들어버린 경험 등을 책에서 고백한다.
"엄마는 내게 수어를 가르쳤다. 검지를 코 오른쪽에 댔다가 떼며 검지를 접고 새끼손가락을 폈다. '엄마'라는 뜻이었다. 나는 수어로 옹알이를 하며 부모의 언어를 습득했다. 수어는 나의 모어가 되었고, 나는 손과 표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 본문 121쪽 중에서
코다의 이야기를 직접 기록한 이유
저자들이 코다의 이야기를 당사자의 입장에서 직접 기록한 계기는 무엇일까? 한국 사회에서 청각장애인의 삶이 시혜적 시선으로 쉽게 타자화되거나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듯이, '코다'로 사는 이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책에서는 농문화가 청문화와 단순히 '다른 것'이 아니라 '청문화만큼 충분하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도 편견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최근에야 '장애인-비장애인'이란 말이 쓰이고 있지만, 불과 멀지 않은 과거에 '장애인'의 반대말로 '정상인'이 거론됐다. 지난 시간 동안 한국에서 장애인은 '정상 혹은 표준이 아닌' 존재로 치부되곤 했던 것이다.
또한 본문에 따르면, 코다를 향해서도 편견의 시선이 쏟아진다. 장애인을 부모로 둔 이들을 두고 동정하는 듯한 말이 먼저 나오거나, 부모가 생계를 꾸려나가는 데도 '너희가 장애인인 부모님을 모시고 보살펴야 하지 않느냐' 같은 참견을 듣는다거나. 그 때문에 이들은 방송국에서 취재 문의가 올 때도 '연민의 시선'으로 코다와 가족을 다루거나, '장애를 극복해낸' 서사로 촬영하지는 않는지 살펴야 했다고 한다.
"한국 사회의 '단일 민족'이라는 정체성은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문화를 바탕으로 삼아야 가능하다. 이 사회에서 나와 다른 사람은 틀린 사람으로 취급되고, 그 범주에 장애인도 포함됐다.
농인은 농사회 안에서는 장애인이 아니지만 청인 사회와 만나는 순간 장애인이 된다. 결국 다양성이 공존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난 농인은 취약층이 된다. 대물림되는 가난과 농인 가족에게 쏟아지는 부정적인 시선들 속에서 코다가 코다로서 서 있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 본문 84쪽 중에서
코다 코리아, 코다 인터내셔널,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설명해줄 코다라는 정체성을 알게 된 후, 저자들은 세계 각국의 코다들이 만나는 자리 '코다 인터내셔널' 콘퍼런스를 방문하기에 이른다. 거기서 "사회에서 늘 이질적인 존재로 살아오다가 나와 딱 맞는 곳에서 느끼는 안식과 그로 인해 무장 해제되는 감정들"을 느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코다 인터내셔널'의 존재를 듣고서, 세상에 농부모의 문화를 물려받고 자란 코다가 많다는 것과 자신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저자들. 이후 이들은 2014년경부터 한국 코다들의 모임 '코다 코리아'를 설립해 함께하게 됐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부모의 장애에 관해 대신 설명해야 했다. 비장애인은, 청인은 자신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몸에 맞추어진 환경은 그들이 굳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도록 보조해준다. (중략)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실존 그 자체부터가 질문과 해명의 대상이다. '농인이 어떻게 애를 키우지?', '농인이 어떻게 일을 하지?', '농인이 어떻게 복잡한 의사소통을 하지?'" - 본문 278쪽 중에서
책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차별과 혐오를 직면한 코다들의 삶을 당사자의 고백으로 읽을 수 있다. 코다로 자란 이들이 훗날 장애인 인권 운동을 위해 활동하거나 페미니즘을 접하고 소수자의 권리에 목소리를 내게 된 부분은 사회적 소수자간의 연대, 그리고 정체성의 '교차성'(인종, 성별, 국적, 성적 지향 등 개인의 정체성이 하나로 규정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로 교차될 수 있다는 개념)을 생각하게 만든다.
본문에서 저자 중 황지성씨는 코다를 "서로에게 가장 절실한, 불완전함으로써 완벽한 사람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파편화된 개인의 고통을 나누며 서로 동료가 되어가는 코다들의 이야기에는, '정상성'의 경계를 허물면서 삶과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뭉클한 과정도 담겨 있다.
더 다양한 개인을 포용하는 사회로 변화하는 오늘날, <우리는 코다입니다>에 담긴 논의 지점과 고민들은 코다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것들이 아닐까.
(이 글은 오마이뉴스 기사 http://omn.kr/1lyl8로도 발행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