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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Dec 17. 2019

"없어져야 할 건 성차별이지, 페미니즘이 아니다"

[서평] 권김현영이 쓴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16년 한 남성이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던 여성을 살해한 일이 벌어졌고, ‘강남역 살인사건’은 한국 사회에 하나의 큰 계기가 됐다. 많은 사람이 현장에 애도의 말을 1000여 개의 포스트잇으로 남겼고, 그중 ‘살아남았다’라는 말은 여성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었다.


이후 피해자들이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이어지면서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라는 평가도 나왔다. 통계상 성폭력과 여성혐오 범죄가 끊이지 않는 시대에, 지난 몇 년간 터진 사건들은 여성들로 하여금 ‘더 이상은 안 된다’는 목소리를 끌어내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2019년이 끝나가는 현재, 성평등을 말하는 정치인도 늘어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페미니즘을 논의하는 장이 계속되고 있다. 문화계에서도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일본과 중국, 프랑스 등 전 세계에 수출됐고 영화로도 개봉해 수백만의 관객을 동원했다. 많은 이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느낄 만큼 성평등을 중심으로 변화의 물결이 계속되는 셈이다.


성평등에 관한 논의는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들을 낳았지만, 페미니즘을 접한 개인도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을 느끼고 있을 듯하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이 쓴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는 최근 각 분야의 젠더 이슈를 담으면서, 개인과 사회에 영향을 미친 일련의 흐름을 포착한 책이다.


2019년, 여전히 페미니즘이 필요한 현실


2019년 10월 출간된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는 권김현영이 2003~2019년까지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아 엮은 것이다. 각 글에서는 강남역 살인사건과 버닝썬, 영화 <캡틴 마블> 등 사회·문화계를 넘나드는 사안을 통해 여성주의를 말한다.


그 예 중 하나로,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저자는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라는 문장이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전업주부에 대한 혐오가 정당화” 된 한국의 세태를 짚으면서 “사회적 혼란 속에 던져진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겪고 있는 이야기를 구현”했다고 평가했다.


“어머니마저도 여성혐오의 대상에서 예외가 되지 못한다면, 가부장제 사회가 요구하는 성역할을 아무리 성실하게 수행하더라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욕을 당한다면, 그 역할에 몰두할 이유가 더는 없지 않겠는가. (중략) 자꾸 다른 여성으로 빙의하는 김지영씨를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뭘까. 이것이 이 소설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고 김지영의 처지에 깊은 동질감을 느낀 동시대의 여성들은 그 대답을 페미니즘에서 찾았다.” - 본문 103쪽 중에서


▲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컷


또한 최근까지 여러 매체에서 보도되며 알려진 성관계 영상을 온라인으로 불법 유통하는 웹하드 카르텔도 책에서 거론된다. 이를 두고 저자는 “유출 영상을 돌려보며 “그러게 누가 떡치고 헤어지래?”(2018년 7월 29일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에 올라온 글)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대체 성폭력이 아닌 섹스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빈번하게 차별과 디지털 성범죄,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한국의 현실은 곧 페미니즘, 성평등이 시대적 화두가 된 이유를 보여준다.


‘페미니즘 없이 민주주의 없다’


저자는 어느 토크쇼에 출연한 배우 윤여정이 “인간은 너무 다양해. 그래서 민주주의가 어려운 거야”라고 한 말을 인용하며 “페미니즘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열린 촛불집회에서 여성혐오 가사로 논란이 된 그룹 DJ DOC가 가사를 바꾼 후에야 무대에 올랐던 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리가 아니라 여성성을 조롱하는 팻말 등을 언급하며 권김현영은 당시 광장에 여성 시민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없어져야 할 것은 성차별주의이지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덧붙인다. 여성도 인간이고, 민주주의는 모두를 위한 것이니 페미니즘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명쾌한 얘기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지운 민주주의는 모순적인 것일 테고, 배우 윤여정의 말처럼 ‘그래서’ 민주주의가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다만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성평등도 민주주의를 위한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권김현영 지음. ⓒ 휴머니스트


앞서 인용한 것 외에도 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저자의 노력은 책의 다른 부분에서도 엿보인다. 우선 책의 1장 첫 부분에 적은 것이 과거 트랜스젠더 혐오를 고백한 저자의 글이라는 게 인상적이다.


“모든 운동과 이념이 특권을 성찰하지 않는 순간 억압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배웠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본문 22쪽 중에서


 이후 본문 여러 부분에서 기혼 여성을 향한 혐오, 성소수자 관련 차별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볼 수 있다. 책에 실린 권김현영의 글에서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깊은 고민, 그리고 문제를 섬세하게 논의하려는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이런 시선은, 최근 많은 이슈에서 ‘골치 아픈’ 생각 없이 소수자를 일단 배제하고 보자는 듯한 혐오 진영의 목소리에 대비돼 큰 울림을 준다.


책의 제목인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장은 저자가 성소수자 혐오를 깨닫게 된 일화에서 나온다. 하지만 책의 전체적인 내용, 지난 16년 동안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 사례와 그게 왜 문제인지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짚은 것을 함께 놓고 보면 그 의미가 확장된다. 여성혐오를 비롯한 소수자 혐오와 차별, 대상화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알게 되면 누구라도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지 않을까.


(위 글은 <오마이뉴스> 기사로도 발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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