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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Jan 22. 2020

'알라딘'은 천만 관객인데, 왜 난민은 '혐오의 대상'

제국주의에 의한 탄압,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눠야 했던 내전, 분단, 그리고 독재와 민주화 운동...

하나 같이 지난 100년의 역사 동안 한국이 겪었던 슬픈 사건들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에 한반도는 격변의 근현대사를 거쳤다. 한국은 때로 다른 국가로부터 도움을 얻기도 했지만 스스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고, 민주화와 직선제를 이루며 아시아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발돋움했다.

한국으로서는 과거가 되어가는 일들이지만, 2020년으로 접어든 오늘날에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내전과 분단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독재에 맞선 민주화 운동 또한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지난날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처절한 현실이다.

지난 2019년 11월 출간된 <낯선 이웃>은 바로 내전·분단·민주화운동 때문에 자국을 떠나 한국으로 오게 된 난민들을 다룬 책이다. 저자인 이재호 <한겨레 21> 사회팀 기자는 지난 2018년 한국을 떠들썩하게 흔들었던 예멘 난민 사태 전후로 약 1년간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난민들을 직접 만나 취재했다.


'알라딘'은 1000만 관객 넘는데, 왜 난민에는 부정적일까

2018년, 한국에 486명의 예멘인들이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하자, 일각에서는 이들이 '가짜 난민'이라며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난민 수용 거부'의 내용을 담은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5일 만에 20만 명이 동의하기도 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난민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범죄를 일으킬 수도 있다'면서, 이들의 출신 국가가 예멘이라는 걸 이유로 삼아 난민 대다수가 범죄자인 양 표현한 혐오발언도 나왔다.

<낯선 이웃>의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중동 아랍권의 고전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알라딘>, 그리고 밴드 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국에서 천만 관객 이상 동원한 것을 거론한다. 실존인물이자 퀸의 보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는 난민 2세 성소수자였고, '알라딘'역을 맡은 배우 메나 마수드는 예멘인과 외모가 비슷한 이집트계 캐나다인이었다. 그런데도 두 영화 모두 흥행한 것을 보자면, 한국 관객들이 이들에 대해 이질감을 크게 느끼진 않은 듯하다.
       

▲ 영화 < 알라딘 >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낯선 이들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도 있다. 다만 '예멘 난민 사태'가 1년 넘게 지나고 있는 현재, '예멘 난민 사태'를 되돌아보며 이런 물음은 던져볼 수 있을 듯하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한국에 다가왔을 때는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현실에서 '난민 신청'을 한 경우 거부감을 느낀 건 어째서일까.

저자는 난민을 향한 가짜뉴스를 팩트체크하면서, 잘못된 정보를 믿게 된 과정을 돌아봄으로써 한국 사회 구성원들과 난민을 함께 이해하려 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혐오한다면, 그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일 것"이라는 헤르만 헤세의 문장을 인용하며, 저자는 우리가 난민들로부터 '신분 상승'과 '이주'의 욕망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혐오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불평등한 한국 사회를 평등하게 만들기는 어려우니, 불안 해소를 위해 난민을 밀어내려 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왜 하필 한국으로 오려는 거야? 난민이 없어도 한국은 충분히 가난하고, 불안해."


우리는 스스로 가난하고 불안함을 인정했습니다. 난민에 대한 혐오의 말이 동시에 자기혐오의 고백으로도 읽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혐오의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까지 혐오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평범한 노동자, 해가 지면 안전하게 귀가할 것을 고민하는 여성, 제도권 교육을 충실하게 이수하고도 취업에 실패한 청년, 각종 강력범죄 보도를 보며 자녀의 안전을 걱정하는 부모 등 우리 공동체의 평범한 구성원이었습니다. - 본문 10쪽 중에서


'가짜뉴스'라는 건 결국 대중의 불안을 자극할 때 쉽게 퍼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지난 2018년 '예멘 난민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우리에게 난민을 이해할 만큼의 이야기와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낯선 이웃>은 한국에 와 있는 난민들을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책이다. 저자는 내전을 겪은 후 제주도에 찾아왔던 예멘인들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난민 신분이 돼 한국행을 택한 이들을 직접 만났다.


그들이 '난민' 된 이유, 한국 근현대사와 닮았다


책에는 태국·카슈미르·이집트·시리아·수단·민주 콩고·로힝야 등 다양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가진 난민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태국 군부정권에 '민주주의'와 '공정한 총선'을 요구했다가 무자비하게 체포됐던 차노끄난의 경우, 비슷한 고통을 겪은 5·18기념재단이 광주에 온 그녀의 난민 신청 과정을 도왔다고 한다.


카슈미르 독립운동가 리즈완은 2016년 10월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현재는 영어를 못하는 난민을 돕고 있다. '섬유계의 보석' 캐시미어로 유명한 카슈미르 지역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으로 인해 영토가 세 동강으로 나뉘었다. 민족의 학살 위기 앞에서 변호사 일을 포기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그의 일화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커피 원산지'로 유명한 에티오피아의 경우, 한국에서 미얀마에 이어 두 번째로 난민 인정자가 많다고 한다. 과거 한국전쟁 당시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유엔군 편에 서서 참전한 국가였으니, 서로 도울 이유가 충분했기 때문일까. 그야말로 '역지사지'라는 말이 떠오를 법하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는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500여 명의 난민들은 우려와 달리 한국인을 상대로 강력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오히려 어느 난민은 67만 2천 원이 든 지갑을 주웠다가 경찰서를 통해 주인에게 돌려주기도 했다. 본문에 따르면 그는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남의 돈이라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누르가 지갑 주인을 찾아준 다음 날인 6월 6일 새벽 1시, 또 다른 예멘인 압둘라(가명)는 제주 시내 패스트푸드 가게 앞에서 길에 떨어진 지갑과 스마트폰을 발견했다. 당시는 라마단 기간이어서 낮에 음식을 먹지 않았고, 해가 진 뒤 허기를 해결하려고 나선 참이었다. (중략)


압둘라는 이렇게 말했다. "지갑은 잃어버린 사람에게 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 예멘인들은 한국의 법과 문화를 가르쳐 주기만 하면 다 따르고 평화롭게 지낼 것이다." 제주에 체류 중인 예멘 난민이 분실물을 찾아준 사례는 누르와 압둘라 말고도 최소 두 건 더 있었다. (중략) 예멘 난민과 관련된 범죄 신고는 없었다." - 본문 216~217쪽 중에서


하긴 예멘이 전쟁터가 된 상황이니, 난민들이 가장 두려워할 일들 중 하나가 '난민 신청국에서의 추방'이나 '자국으로 송환'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난민 신청을 위해 법무부에 자신의 모든 정보를 전달한 난민이 쉽게 범죄를 일으킬 것이라는 추측은 결국 현실과 다른 얘기인 셈이다.


가짜뉴스, 자국 떠나온 난민들이 한국에서 좌절하는 이유


유엔난민기구(UNHCR)의 특사인 안젤리나 졸리가 2018년 11월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서울사무소를 찾아 한국의 난민정책과 전 세계 난민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낯선 이웃>에서는 '난민이 범죄를 일으킬 것'이라는 편견에 '한국인의 범죄율보다 난민의 범죄율이 낮다'는 통계로 반박한다(관련 기사 : '혐오표현의 자유'라는 망상 http://omn.kr/1m748). 책에는 난민 범죄율 통계 자료에 대해 "난민에 따로 범주를 설정하는 행위 자체가 반인권적이기 때문에 스웨덴 같은 선진국에서는 아예 난민 범죄 통계를 집계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고 밝힌 유엔인권기구 관계자의 말이 인용되기도 했다.


저자는 '제주도의 예멘 난민을 지원하느라 국가 예산 파탄 난다'는 소문도 확인했다. 우려와 달리 오히려 한국의 난민 지원 예산은 난민 수에 비해 부족해 제대로 된 생계지원이 어렵다고 한다. 본문에 따르면, 난민 신청자는 체류 기간이 6개월 넘어야 취업 가능하기 때문에 스스로 돈을 벌기도 쉽지 않아 이중고를 겪게 된다.

저자가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과거 내전·민주화를 겪은 나라라는 점을 듣고 한국에 온 난민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좌절한다.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OECD 국가 평균보다 낮고, 난민을 위한 제도적 지원도 넉넉하지 못한 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면접 중 난민 신청자가 하지도 않은 말인데도 '일해서 돈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라고 통역인이 난민 신청 사유를 거짓으로 기재한 일이 2018년 7월에 드러나기도 했다(관련 기사 : "일 때문에 한국 왔다?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난민 불인정" http://omn.kr/s08d).

"불평등하고 불안한 우리는 혐오의 말에 잘 휘둘린다. 혐오의 말은 계속해서 세상을 가른다. 우리와 그들, 정상과 비정상으로. 난민과 국민을 갈랐던 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가르고, 다음에는 성소수자, 그다음에는 이주 노동자, 모든 외국인,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 장애인, 여성... 문장으로 세계를 나누는 사람들은 저쪽이 아닌 이쪽에 자신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계속해서 나누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좁게 만들 뿐이다.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 본문 181쪽 중에서

저자인 이재호 기자는 2018년 난민과 더불어 기록적 폭염으로 숨진 사람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노동자 김용균씨, 사회적 낙인 때문에 어렵게 살아가는 정신장애인, 홍콩 시위 현장 등을 취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책에서 "한 사회의 인권 수준은 그 사회에서 가장 배제된 사람들을 통해서 가늠해볼 수 있다"며 "2018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차별받은 사람은 단언컨대 '난민'이었다"라고 적었다.

현재 한국에 온 난민들은, 한국이 지나온 역사적 사건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국가 출신들이다. 과거 한국의 누구도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민주화 운동을 향한 탄압을 원하지 않았을 것처럼 이들 또한 불가피한 이유로 자국을 떠나 난민 신세가 됐다.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는 심정으로, 2020년 난민들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변화의 시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배제의 언어를 내려놓고 난민이 사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일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일로 충분할 것이다.
       

▲ 이재호 <한겨레 21> 사회팀 기자가 쓴 책 <낯선 이웃> 표지 사진 ⓒ 이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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