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황두영씨의 책 외롭지 않을 권리'
2018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은 일반적이지 않은 형태의 가족을 보여준다. 언뜻 보기엔 노인, 중년 남녀, 청년과 아동 두 명으로 구성된 평범한 가족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실제로는 이들 중 누구도 혈육으로 연결된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비록 피가 섞이지 않았고 혼인관계로 엮인 사이도 아니지만, 이들이 서로에게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란 걸 담아낸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이들의 사이에 끼어든 일본 공무원과 경찰은 '법적인 가족'이 아닌 이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다. 마치 혈육이 아니니 당사자들이 원하더라도 함께 지내선 안된다는 듯이.
이런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영화 <어느 가족>은 관객에 질문을 던진다. 혼인신고, 출생신고로 만나야만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는 거냐고. 이들처럼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더라도, 법적인 제도 바깥에 있는 사이라면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것이냐고 말이다.
2년이 지난 2020년, 이런 질문을 더 깊게 파고든 책이 나왔다.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내용이 담긴 책인데, 지난 3월 출간된 황두영씨가 쓴 <외롭지 않을 권리>다.
2020년 한국에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한 이유
저자 황두영씨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진선미 국회의원의 보좌진으로 일하면서 생활동반자법, 투표시간 연장법안, 소라넷 폐지 등을 기획했다. 그러다가 생활동반자법을 다룬 책 <외롭지 않을 권리>를 쓰기 위해 일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외롭지 않을 권리>에서 그는 "논의의 핵심은 고독"이라면서, 폭증하는 1인 가구의 고독 해결을 위해 결혼이 아닌 관계도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생활동반자법'을 소개한다. 살면서 누구나 서로 돌볼 사람 또는 안정적인 주거환경이 필요한데, 한국의 복지-주거 정책 등은 법적 혼인 상태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설정돼 있기에 공백이 크다는 것이다.
"1인 가구의 돌봄 공백은 IMF 이후의 가족 정책, 노동 정책, 복지 정책의 실패가 총체적으로 모여 있는 골짜기다. (중략) 결혼 포기, 사별, 저소득으로 인한 이혼으로 만들어진 중노년 1인 가구는 자녀 부양, 결혼 등 '정상 가족' 제도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카드 뭉치에는 정상 가족을 넘어서는 상상력이 없다." - 본문 74쪽 중
책 내용에 따르면 생활동반자법이 적용되는 대상은 성애적 관계에 국한되지 않으며, 친구나 동료 등 다양한 관계를 포괄한다. 사실혼 관계지만 서로 수술동의를 하거나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는 이들의 실제 사례를 거론하면서, 저자는 현대 가족 제도의 함정을 짚는다. 그리고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국가가 더 폭넓게 보장하려면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책에 거론된 통계 중 "2000년에 1인 가구는 222만 가구로 전체 가구 수의 15.5%를 차지했는데, 2017년에는 562만 가구로 전체 가구 수의 28.6%가 되었다"는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다. "2015년 이후 1인 가구는 대한민국의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라는데, 결혼 장려 정책에도 비혼 1인 가구가 늘어가는 상황이라면 정부 차원에서 그 이유를 제대로 살펴야 마땅하다.
'외롭지 않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하면, 결혼과 출산을 '재생산'의 수단으로만 연결 짓지 말고, 정부와 지자체가 사회 구성원의 행복한 삶을 더 우선시해야 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특히 정부나 지자체가 출산 자체에만 매달리는 듯한 경우를 볼 때면, 결국 정책 방향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면서 저자의 주장에 상당히 수긍하게 된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은 우리 사회가 어떤 외로움을 중대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준다. 농촌 미혼 남성의 어려움은 출산을 통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것과 연관된 외로움이다. (중략) 출산과 무관한 외로움은 그 자체로 해결과제가 되지 못한다. (중략) 출산과 상관없는 여성의 삶, 결혼 밖의 친밀한 관계에 대한 상상력은 차단된다." 본문 92~93쪽 중
저자는 주거권, 적용대상 등 다양한 부분에서 생활동반자법이 가져올 효과와 구체적인 방안을 정리했다. 그뿐만 아니라 동반자의 사망, 동거 중단시 재산분할, 가정폭력 발생 등 문제에 따른 대책과 보완점도 덧붙였다. 차근차근 정리한 내용 속에서, 저자가 법안을 위해 깊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 법이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될 것인지 여러 사례를 언급한 본문을 읽다 보면, '평등한 개인끼리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물으며 책을 써내려간 듯하다. 국가가 보장하는 동거 계약인 '생활동반자법'은 현실의 벽 때문에 결혼하지 못하고 동거하는 청년들, 성소수자, 장애인, 중장년 1인 가구 등 많은 이가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줄 듯하다. 지난해 화제가 된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동거하는 비혼 여성 동료 2인도, 생활동반자법이 시행된다면 적용 대상이 되지 않을까.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통해 책임 있는 동거 관계에 어떤 권리와 의무를 부여할지 논의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저자는 "생활동반자법은 우리 사회가 새로운 차원의 평등, 자유, 존중으로 나아감을 보여주는 상징"이라 표현한다.
더 이상 '4인 가족'이 보편적 삶의 형태가 아니게 된 2020년 한국. 결혼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사회가 끌어안으려면 '생활동반자법'이 좋은 해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외롭지 않을 권리'는 국민 누구에게나 있고, 많은 이가 그 권리를 실현하도록 법이 제도적으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