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황보름 작가의 책 '난생처음 킥복싱'
매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흔히 '운동'을 새해 목표로 잡곤 한다. 요가, 수영, 웨이트 트레이닝 등 종목은 다양할지라도 목표는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더 나은 몸매를 가꾸고 싶다거나, 체력을 길렀으면 한다는 생각들.
하지만 새해로부터 몇 달이 지나기도 전에 꾸준히 운동하자던 결심은 흐려지고 '작심삼일'이 되곤 한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서 학교나 직장으로 향하고, 하루 종일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도 지치고 피곤하다. 그런데 '거기서 더 땀 흘려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도무지 계속해나가기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운동이 하나의 목표가 된다면, 누구든 부담스럽고 때로 귀찮아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동작 하나하나를 해내는 일 자체를 즐기게 된다면 어떨까. 2020년 4월 출간된 책 <난생처음 킥복싱>에는 한 사람이 점차 운동에 빠져드는 과정, 그리고 '체력이 없어서 체력이 더 안 좋아지는 도돌이표 극복기'도 담겨 있다.
체육관을 유쾌하게 다닐 수 있다면
<난생처음 킥복싱>의 저자인 황보름 작가는 30대가 된 이후 급격히 줄어든 체력을 실감하고 킥복싱을 시작하게 된다. 과거 수영, 달리기 등을 접해본 그가 많고 많은 운동 중 킥복싱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본문에 따르면, 글을 쓰며 지내다 몇 년 만에 다시 운동을 시작하게 됐으니 "과격한 운동"이자 "몸을 마구마구 굴려주는" 종목을 골랐다고 한다.
저자는 글러브를 착용하고 코치와 함께 킥복싱 동작을 하나하나 배우기도 하고, 철봉 또는 버피에 도전하며 차근차근 체력을 늘려간다. 다만 그러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고, 많은 운동 초심자가 겪는 고난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체력을 기르려고 운동하는데, 체력이 부족해 애를 먹는' 것 말이다.
"팔 힘, 코어 힘이 부족해서 그래요."
또 코어다(팔 힘없는 거야 원래 알았고).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뒤로 숨긴 채 얼른 일어나 무릎을 꿇고 앉았다(벌 서는 건 아니고, 내가 즐겨 앉는 자세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체력을 키우려면 버피를 해야 하는데, 체력이 없어서 버피를 할 수 없다면 나는 영원히 체력을 키울 수 없고, 그렇다면 영원히 버피도 할 수 없다는 말 아닌가. 체력이 없어서 체력을 키울 수 없는, 이 무슨 '웃픈' 상황이란 말인가. - 본문 25~26쪽 중에서
저자가 버피 등의 동작을 하다가 지쳐 괴로워하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독자인 나도 과거의 아픈(?) 경험을 떠올리며 숨을 고르게 된다. 잽, 훅, 킥까지 킥복싱 훈련을 섞어 해보던 중 순서를 헷갈리는 대목에서는 '나라도 그럴 것 같은데' 싶어서 움찔하게 된다.
그러다 저자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자신이 킥복싱을 점점 좋아하게 됐다고 느낀다. 체육관에서 쉽지 않은 시간을 견디고 더운 날에도 체육관을 찾아 꾸준히 운동하던 어느 날, 좀처럼 되지 않던 동작에 성공하거나 더 무거운 케틀벨을 들어 올리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로부터 "운동하더니 진짜 쌩쌩해졌네"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전보다 체력이 좋아졌음을 본인도 느끼고, 발전한 걸 지인으로부터 확인받는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내 몸의 변화를 느끼는 실감이다. 내 몸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면, 그 느낌이 진짜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느낌을 믿고 하다 보면 안 되던 게 된다. 하다 보면 된다. 진짜, 하다 보면 되더라. - 본문 152쪽 중에서
"터프한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킥복싱을 배우면서 저자는 다양한 변화를 겪는다. 여성으로서 범죄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기도 하고, '여성은 말라야만 한다'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자신의 몸을 미워하던 생각도 멈추게 된다. '어떻게 보일까'보다 '얼마나 체력을 길러 어떻게 활동할 수 있나'로 관점이 변한 것이다.
몇 개월 동안 꾸준히 하며 운동을 '일상의 일부분'으로 끌어들인 이후에는, 사소하기만 하던 동작들이 삶의 자세에 영향을 준다. 황보름 작가의 글에서는 전혀 모르던 종목에 도전해서 마침내 푹 빠져든 이가 들려주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마음이 조금이나마 무너진 날 체육관에 가면 나는 평소보다 더 공들여 운동을 한다. '나'라는 거대한 관념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박스 스텝을 할 때 발의 속도라든가, 런지를 할 때 다리 너비라든가, 눈에 들어간 땀을 눈 아프지 않게 수건으로 찍어내는 방법 같은 더 작고 디테일한 것에 집중한다. 그렇게 소소한 것에 집중하다가 체육관을 나서면 어둑한 저녁이 기다리고 있다.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어스름한 저녁에 길을 걸으면 내 마음이 내게 들려주는 진솔한 말이 들린다.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이 삶이 참 좋다는. - 본문 225~226쪽 중에서
<난생처음 킥복싱>을 읽다 보면 '내가 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특정 몸무게까지 감량할 필요도 굳이 없고, 기록을 계속 발전시켜야 할 운동선수도 아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운동하는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어느 날은 생각한 만큼 운동 동작이 원활하게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원하는 만큼 좋은 몸매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SNS에 자랑할 만한 근육을 갖지 못했다거나 프로 선수처럼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지 못한다고 해도 아무렴 어떤가. 운동을 계속해나가며 전보다 자신이 더 강해진 걸 느낄 수 있다면, 사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지금 내가 하는 이 경험을 세상 사람들이 다 해보면 좋겠다. 특히, 나처럼 팔씨름 세계의 영원한 꼴찌였던 여자들에게 이 경험을 하게 하고 싶다. 약하게 태어났으니 약하게 살다 죽겠지, 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다. 강해질 수 있다는 걸, 강해져도 된다는 걸 알게 하고 싶다. - 본문 151쪽 중에서
책 표지에는 "터프한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사실 누구나 한 번쯤은 바라는 일이 아닐까. 쉽게 지치지 않는 체력을 얻고, 과거 나의 한계라고 느끼던 지점을 뛰어넘는다면 누구든 '터프'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꾸준히 한 가지 종목에 도전해 재미를 붙이기까지 저자의 감정과 시행착오가 기록된 책 <난생처음 킥복싱>은 '내가 운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작은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