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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Jun 04. 2020

경제학은 당신의 목숨값을 계산하지 않는다

[서평]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가 보여주는 경제학의 민낯

'경제학'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해당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마 기업과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며 효율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학자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또는 배우 러셀 크로우가 출연한 영화, '균형 이론'의 창시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존 내시를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연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한 장면. 실존 인물인 존 내시의 삶을 다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앞서 말한 경제학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경제는 도덕과 윤리를 배제할 수 있는 분야이며, 오직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라는 개인이 효율화를 위해 희생되어도 될 '가벼운 요소' 정도로 경제학에서 여긴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그 생각을 유지하게 될까?


2020년 4월 출간된 책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는 현대에 와서 '종교'처럼 사람들이 믿는 경제학의 권위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파헤친다. 지난 역사 속에서 경제학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담아냈는데, 어떤 부분에선 마치 ‘경제학자의 뒷담화’를 우화처럼 코믹하게 풀어내기도 했다.


경제학의 ‘효율 추구’ 계산에서 당신은 어디에 포함될까


헝가리계 수학자 폰 노이만은 여덟 살의 나이에 8자리 수 두 개의 나눗셈을 암산할 정도로 수학에서 천재적인 면을 가진 경제학자였다. 그는 냉전시대에 당시 미국 대통령 중 한 명인 아이젠하워가 자주 만나던 인물이기도 했다. 


폰 노이만은 '치킨게임'의 개념을 경제학에 가져와 '게임이론'을 만들고, 유명한 '제로섬 게임'을 창시한 학자다. '치킨게임'은 배우 제임스 딘이 출연한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나온 자동차 대결로, 마주 달리는 두 차량 중 어느 쪽도 피하지 않는다면 모두 파국을 맞고 먼저 피하는 쪽은 패하는 게임이다.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의 상황은 그야말로 '치킨게임'에 가까웠다. 폰 노이만은 소련이 수소 폭탄을 개발하기 전에 먼저 소련을 폭격해서 초토화해야 한다고 극단적인 주장을 폈다. 소련이 강력한 무기를 개발한 이후에 전쟁을 벌여 대응하려면 너무나 큰 비용이 들 것이므로, 미리 폭격하는 것이야말로 '저비용 고효율'의 방식이라는 얘기였다.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에 따르면, 폰 노이만의 폭격 주장에 당시 미국 공군 장성들은 발칵 뒤집혔다. 


"이거 안 돼! 조종사들이 다 죽는다구!"

"어, 조종사들의 목숨값은 계산에 안 넣었는데요." 

"왜?"

"조종사들의 목숨값은 우리끼리 합의가 안 돼서요." - 본문 7쪽 중에서


경제학자들이 오로지 '효율'만을 중요하게 여겨서, 양국의 전쟁을 앞둔 시나리오에서 미 공군 조종사들의 목숨은 '계산에 포함하지 않았다'니, 가히 충격적인 얘기다. 소수라고 할지라도 누군가의 목숨은 효율을 따지는 데 아예 고려되지도 않았다는 것 아닌가. 


경제학자의 계산에서, 한 번 잃으면 끝나는 우리의 삶과 목숨이 그저 사소한 변수가 되거나 아예 계산 요소에서 빠질 수도 있다니. 책에 따르면 다행스럽게도(?) 아이젠하워 당시 미 대통령은 폰 노이만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후 소련이 결국 수소 폭탄을 개발하면서 그의 '선제 폭격' 주장은 자연스럽게 폐기되었다고 한다. 


'효율'을 중시하는 경제학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들


책에서는 경제학자들이 만든 이론을 다수 소개하는데, 그 중에서 후세의 사상가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되거나 오해돼 잘못 적용되는 개념들도 있다고 전한다. 예를 들면 ‘경제는 윤리적 판단과 별개로 효율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개념도 있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경제학자들도 다수 있었지만, 이런 생각에 동의한 경제학자들이 학계의 주류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오늘날 '경제는 도덕과 별개'라는 개념이 널리 퍼졌다는 이야기도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폰 노이만 같은 인물이 속한 미국 랜드 연구소는 미국의 공군과 정부에 큰 영향을 행사하는 싱크탱크였고, 이후 이 연구소에서만 30여 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배출될 정도로 주류를 차지했다.


책의 저자는 미 케임브리지 대학교 토지경제학과 강사 조너선 앨드리드인데, 현대 주류 경제 이론을 분석하며 경제학의 윤리적 기준에 대해 20년 동안 연구하며 논문을 내고 있다. 그는 법, 정치와 더불어 경제학 또한 전 세계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1960년대 미 법무부 차관에 오른 법경제학파 판사 리처드 포스너는 '부의 극대화가 공정한 기업 행위보다 낫다'는 주장을 폈고, 이런 주장은 경제 주류인 시카고학파의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세월이 꽤 흐른 오늘날에도, 대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논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만약 경제학자가 치과의사 만큼 겸손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면’


지금까지 책 내용에서 정리한 부분만 보자면, 마치 경제학자들은 모두 '인간의 이기심을 부추기고 탐욕을 옹호하는 사람들'로 비칠 수도 있겠다. 물론 저자가 그에 해당하는 경제학자들을 책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기는 했지만, 더불어 그에 대비되는 주장을 하는 경제학자들과 경제학 이론들도 소개했다. 


"부유층에 대한 증세가 경제 성장을 해치지 않고, 인재의 해외 유출로도 이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 복지비 지출을 확대하는 재분배 정책이 글로벌 경쟁에 직면한 경제에서는 바람직하고 현실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져보기 바란다." - 본문 406쪽 중에서


인용한 부분 중 복지비 지출에 대한 시각은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국면에서 한국, 일본 등 각국이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꽤 크게 변하고 있는 듯하다. 이어서 저자는 경제학계를 포함한 세계가 불평등 심화를 막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자 증세도 부당한 '강탈'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통해 부를 축적한 것에 대한 정당한 집행이라고 덧붙인다. 


"국가의 유일한 기능이 경찰 같은 법적 기관을 유지라며 사적 소유권을 보유하는 것이라면, 세율이 무척 낮아도 괜찮을 듯하다. 그러면 부자에 대한 추가 과세는 일종의 절도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해석에는 소득은 사적인 시장 경제에서 땀 흘려 번 것이고, 소유권은 소득을 근거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정부는 이 권리들이 유지되도록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중략) 하지만 이런 묘사도 헛된 공상이다. 현대 세계에서 모든 경제 활동에는 정부의 영향이 반영된다. 시장은 정부에 의해 '필연적으로' 규정되고 형성된다. 정부가 존재하기 전에는 벌어들이는 소득이란 것도 없었다." - 본문 400쪽 중에서


말하자면, 경제학이 경제를 '도덕을 배제하고 효율만 중시하는 학문'이라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에 저자는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의 말 중 "경제학자가 어떻게 해서든 치과의사만큼이나 겸손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는 발언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는 오늘날 여기저기 파고든 경제학의 영향력을 짚는다. '민영화', '무임승차론' 등 인간의 도덕적 가치와 삶의 기준을 바꾸고 일부 타락에도 기여한 경제 이론의 기원을 보여주기도 한다. 별다른 의심없이 믿던 경제학의 권위가 어떻게 쌓인 것인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면,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의 추천사처럼 "우리 사회의 경제와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표지 사진 -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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